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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5 추락 위험 '트레일러 구출작전' 현장에 직접 가봤더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73)
  2. 2009.04.15 오픈카의 원조 삼발이차의 세바퀴 질주를 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8)


산골 마을의 비포장 신작로 도로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산세가 험난해서 낭떠러지도 많습니다. 게다가, 도로가 좁고 구불구불한 모퉁이나 절벽도 많아 차량 운전자들의 시야를 좁게 합니다. 첩첩산중에는 일반 자동차가 다니는 광경도 보기 드문 곳입니다.

그런데, 고추밭에 가족들과 다녀오는 길에 트레일러 차량 두 대가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근처에 광산이 생겼는데 거기서 나오는 트레일러(일명 추레라)라고 합니다. 트레일러 한 대는 노란색의 암석 분쇄기를 싣고 이동 중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장면이라 신기했습니다.

고추밭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대형 차량들도 이동하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타고 있던 자동차에 도보로 이동하던 3명의 젊은이들을 태우기도 했습니다. 광산에서 일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은 트레일러가 삼거리 부근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험에 처했다고 말했습니다. 삼거리는 부모님이 살고계신 집과 논에서 가까운 바로 인근 지역이었습니다.


▲비포장 도로인 산작로 산길을 따라 여러 트레일러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목격되곤 했다.

집에 도착한 후 트레일러 사고 현장에 동생들과 함께 가봤습니다.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고추밭에서 봤던 트레일러였습니다. 트레일러가 비포장 도로의 모퉁이를 돌다가 뒷바퀴 하나가 걸려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 했습니다. 지반이 약한 도로의 모퉁이 부분은 이미 무너져내린 상태였습니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트레일러를 도로 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수억원대 트레일러와 암석 분쇄기가 도로가 무너져 절벽으로 추락할 위험에 처해

다음 날 귀경해야 하는데 자동차를 운전할 수 없을까 노심초사 걱정도 됐습니다. 산골 마을의 교통 수단인 버스 운행도 어려워 주민들의 발이 묶일까 우려도 했습니다. 과연 엄청난 무게의 암석 분쇄기를 실은 트레일러를 무사히 구출할 수 있을까? 트레일러 사고 현장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사고 현장의 인부에 의하면 트레일러 차량은 전체의 가격이 약 2억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더욱이, 수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암석 분쇄기도 싣고 있어 만일 트레일러가 낭떠러지로 전복했다면 엄청난 손실을 당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일단 트레일러가 전복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스런 일인 것입니다.

▲육중한 무게의 대형 트레일러가 암석 분쇄기를 싣고 낭떠러지로 추락할 위험에 처했다.

얼마 후 크레인 한 대가 사고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광산에 마침 일을 하러 왔던 크레인이 있었는데 사고가 나자 곧바로 달려온 것입니다. 크레인은 도로에 차량을 고정시키는 장치를 견고하게 부착했습니다. 크레인으로 차량을 끌어올릴 때 엄청난 무게로부터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후, 크레인 차량은 기중기 역할을 하는 상단 타워 부분을 한 바퀴 돌려 사고 트레일러에 강력한 철근 로프를 묶었습니다. 전봇대의 전깃줄을 피해 크레인을 트레일러와 고정시킨 것입니다.


▲크레인을 지지대로 고정시킨 후 트레일러 사고 차량의 후미와 연결해 끌어올릴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크레인이 사고 트레일러 차량의 후미를 공중으로 살짝 끌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육중한 트레일러 대형 차량이 쉽게 들어올려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트레일러 차량은 놀랍게도 낭떠러지에서 조금씩 벗어났습니다. 크레인은 몇번에 걸쳐 조금씩 도로 위로 트레일러를 위치 이동시켰습니다. 아래 사진을 통해 크레인이 육중한 무게의 트레일러 차량을 들어올려 도로 위로 옮기는 장면을 차례로 보시기 바랍니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 드문 장면입니다.

▲크레인이 육중한 무게의 트레일러 사고 차량을 끌어올려 조금씩 도로 위로 옮기는 장면.

크레인은 트레일러 대형 차량은 안전한 도로 위로 끌어올려 옮긴 후 로프를 풀었습니다. 그 후 크레인은 다시 처음의 위치로 상단 타워를 원위치시켰습니다. 사람들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습니다. 트레일러가 낭떠러지로 추락하지 않을 것도 다행이지만 신속히 트레일러 사고를 수습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근처 광산에 크레인이 당시 하루동안 일하러 오지않았다면 트레일러 구출은 당장 힘들었을 상황이었습니다. 천만 다행인 것입니다.


▲크레인은 트레일러를 끌어올려 도로 위에 안전하게 안착시킨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도로가 정상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살펴보니 삼거리 사고 현장에는 여러 차량들이 집결해 있었습니다. 광산에서 온 듯한 유조차도 있었고 요즘 볼 수 없는 소위 딸딸이로 불리는 트럭도 보였습니다. 이 또한 산골에서는 신기한 장면이었습니다.


▲트레일러 사고 도로 현장에는 위험 표시줄을 설치했고 인근에는 유조차와 딸딸이도 출동했다.

트레일러 사고는 지반이 약한 도로가 무너지면서 생긴 일입니다. 좁은 비포장 도로를 주행하는 트레일러의 무게가 약한 도로의 지반과 만나면서 무너진 것입니다.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인명 사고나 트레일러 차량의 파손도 없이 신속히 사고가 해결됐습니다.

사고는 신속히 해결했지만 산골 오지의 도로 보수 및 주민 편의시설 확충 필요해
 
사고 현장에서 트레일러를 구출하고 여타 사고를 신속히 방지한 것은 행운도 있었지만 광산 관계자들이 사고 발생 즉시 문제 해결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애쓴 것을 더 칭찬할 만 합니다. 만일 사고를 방치했다면 다른 차량들의 이동은 물론 주민들의 불편이 컸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광산 현장의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신속한 조치는 평가받을만 합니다.

그러나, 비가 자주 오는 여름철 비포장 도로는 언제라도 위험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산골 마을의 주민 편의를 위해 비포장 도로는 철저한 보수공사가 필요합니다. 사고 인근 도로가 꺼져 있거나 다리도 흔들거리는 상태였습니다. 아직도 50년전 비포장 신작로 도로가 그대로 존재하고 도로 보수 공사가 안돼 지반이 무너지는 위험에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길은 군데군데 자갈밭이고 푹 파인 물웅덩이가 도로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정부는 물론 전남도와 장흥군은 산간 오지의 주민들을 위한 도로 및 편의시설 확충에 적극 나서야 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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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주말에 자유로를 드라이브하고 있는데 낯선 오픈카 한 대가 앞질러 갔습니다. 어린 시절에 목격하던 앞바퀴 하나, 뒷바퀴 두개의 삼발이차였습니다. 한마디로 '세바퀴'인 셈입니다. 겉 모습은 보잘 것 없는 삼발이차가 시속 70킬로를 넘는 속도로 달렸습니다.

삼발이차를 다시 따라잡았더니 어떤 남자 분이 헬맷도 쓰지않고 다소 위험한 세바퀴 질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고급 오토바이의 엔진으로 개조한 차인지 모르겠지만, 네발 자동차 사이를 당당하고 유유히 달리는 삼발이차는 옛 추억을 되살리게 했습니다. 삼발이차는 삼륜차인데 과거에는 일명 '딸딸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시골에서는 차가 귀하던 지난 1970년대 시절에는 비포장 신작로에 삼발이 트럭 한 대라도 흙먼지를 날리며 지나가면 손을 흔들어 히치하이킹하고 했습니다. 지나가는 자동차를 공짜로 얻어타는 히치하이킹(hitchhiking)은 시골 아이들의 재미 중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마음씨 좋은 운전사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이들을 태워주는 것을 당연시 했습니다.

버스도 없던 시골 산골마을에서 약 10리(4Km) 정도의 거리는 걸어다니던 아이들에게 지나가는 트럭의 뒷 칸에 올라 타 오픈카처럼 달리는 기분은 짜릿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까만 고무신을 신고 어깨에 책보를 매고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풍경은 정겹기만 했습니다.
 


[세바퀴의 삼발이차가 네발 자동차 사이에서 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모습]

당시에는 양말은 거의 못신고 다니다보니 뛰다가 고무신이 미끄러지고 벗겨져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고무신을 아끼기 위해 벗어서 들고 맨발로 걸어다니기도 했습니다. 운동화를 신는 것이 꿈인 시절이었습니다. 트럭 아저씨는 그런 아이들을 위해 아무런 사례도 없이 태워주는 넉넉한 마음이 넘치는, 가난 속에서도 인정미가 넘쳤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직도 일부 시골 마을의 도로에서는 어르신들이나 아이들을 태워주는 경겨운 풍경은 남아 있습니다. 

까만 고무신과 신작로의 트럭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입니다. 요즘의 도회지 아이들도 시골에 가서 경운기 뒷칸에 타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지난해 여름에 시골에 갔을 때 아이들이 경운기를 탄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늘상 타는 자동차이기 때문인지 할아버지가 태워주는 경운기가 더 재미있다고 합니다.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은 덜커덩 거리며 달리는 경운기가 제 맛인가 봅니다. 

[1970년대 삼발이차에 탄 사람들과 현대의 경운기 타는 아이들]

삼발이차의 원조는 기아자동차입니다.
 일본에서 '삼화제작소'라는 기업의 경영을 이끌었던 '김철호' 옹은 해방 직전 귀국하여 1944년 12월 '경성정공'을 설립한 후 1952년 3월 한국 최초의 국산 자전거 '3000리호(삼천리 레스포 자전거의 모체)'를 생산했던 것입니다. 1959년 일본의 '혼다'와 '동양공업(마쓰다의 전신)'과 제휴하여 1961년 모터싸이클 '혼다 C-100'(대림 혼다의 모체)를 생산했습니다.

그 후 1962년 1월  일명 '딸딸이'라 불리는 3륜 화물차 'K-360'을 생산하면서 1962년 10월 상호를 '기아산업'으로 변경했던 것입니다.
당시 삼륜차는 2기통 577cc 엔진을 장착하였고, 그 후 몇가지 개량형 모델이 나오며 1974년까지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삼발이차가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삼발이차는 안정성이 부족해 코너에서 넘어지기 쉽고 속도를 내는데 한계가 있었던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도 삼발이차는 중국을 비롯한 저개발 국가들에서는 우리의 1970~1980년대와 같은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수도인 북경에서도 가끔 삼발이 화물차를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삼발이차가 현대에 맞게 세련된 형태로 새로 나오기도 합니다. 삼발이차도 과거와 현재가 공준하는 세계인 셈입니다.
 

[중국 북경의 삼발이차 모습과 Panther Motors ScootCoupe의 삼륜차]
[삼륜차 형태로 만든 스위스의 전기 자동차]

삼발이차를 보고나서 어쩌다보니, 옛 추억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우리나라 삼륜차의 유래와 중국의 삼륜차, 그리고 새로 개발되는 현대 컨셉의 삼륜차에 이르기까지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삼발이차는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라져가는 추억의 풍경이지만 예전에는 시골 사람들이나 도시의 서민들에게는 애환이 담긴 소중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집집마다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고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 교통수단들이 발달되어 있어 불편함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과거의 어려운 시절에도 불굴의 투지와 도전정신으로 열심히 경제발전에 매진한 결과 우리가 보다 나은 환경을 갖게 된 것임을 잊지말아야 겠습니다. 최근의 경제불황에 시름이 깊지만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앞으로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말고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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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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