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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8 대학생 전방입소 거부, 연병장서 시위 그 후... by 진리 탐구 탐진강 (54)
  2. 2009.02.18 블로거뉴스가 20년전 전우들을 찾아주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


1980년대 대학가는 매일 최루탄 가스가 자욱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시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던 시절입니다. 당시는 공포의 군사독재 정권 시대였습니다.

대학생이 된 이후 그들은 엄청난 갈등을 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배웠던 사실들이 엄청나게 달랐던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알면서 부조리와 불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정의감이 불타오르던 시기였습니다.


대학가 시위에는 무차별 최루탄 난사와 백골단의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전투경찰과 달리 백골단은 하얀 헬맷을 쓰고 몽둥이를 들고 가장 앞으로 뛰어나와 공격을 했기에 백골단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은 최루탄이아 백골단 마저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만일 잡혀가면 엄청난 구타와 폭력이  행해졌던 시절임을 생각하며 겁없던 젊은 대학생들이었습니다.

대학생들은 당시 1학년 때 문무대에 입소해 군사훈련을 받았고, 2학년 때는 최전방 부대에서 전방 입소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군사독재 시절의 군사교육에 대한 거부감이 컸습니다. 1986년에는 서울대 학생이던 김세진 이재호 열사가 민주주의 쟁취 및 전방입소 거부를 외치며 분신 자살을 하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당시 폭압적 정권은 회유와 협박을 통해 대학생들의 전방입소를 강제화했습니다. 거부하면 강제로 입대를 시켰고 교련과목 학점이 주어지지 않았고 군복무 단축 혜택도 없었습니다. 

전경들이 대학생들에게 최루탄을 쏘고 있고 뒤에는 하얀 헬맷을 쓴 백골단이 서 있다.

그 다음 해인 1987년은 역사적인 민주화 항쟁이 전국 대학생들은 물론 시민들이 대거 참여해 일어난 해입니다. 그런데 그 해에도 대학생들의 전방입소 거부 움직임은 계속 벌어졌습니다. 입소가 몇일간 지연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방 입소를 하면서도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났고 반독재 구호가 난무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도 교내 운동장에서부터 반독재 구호와 함께 시작된 시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학생들은 태운 버스가 최전방 군부대의 연방장에 멈췄습니다. 완전 무장 군인들이 연병장에 내린 대학생들을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사단장이 대학생들이 나와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연병장에서도 연좌농성을 하면서 반독재 구호를 외쳤고 민중 가요를 다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군사독재라는 이유로 사단장과의 악수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두려움을 모르는 대학생들이었습니다. 군대에서 그것은 순진한 행동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내 군인들과 조교들의 폭력과 얼차려가 시작됐습니다. 군대에서 반항은 가차없는 폭력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자유와 진리를 추구한다는 상아탑은 아니었던 시절이었고 군대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고분고분해질 수 밖에 없었던 셈입니다. 기선을 제압한 조교가 크게 외쳤습니다.
"여기가 어딘 줄 아나?"
"...(침묵)..."

"여긴 그 악명높은 삼청교육대다. 어디에도 도망갈 곳이 없다. 도망가면 사살이다."
"...(허걱)..."

대학생들은 놀랐습니다. 삼청교육대라면 1980년 신군부가 정권을 무력으로 장악한 후 사회정화라는 명목으로 시민들을 불법 군대 입소시켜 무자비한 폭력과 훈련을 시켰던 곳입니다. 인권은 전혀 없던 곳이었습니다. 가장 악명높은 강원도 최전방의 삼청교육대가 바로 거기 였습니다. 가장 험준한 산악지대인 강원도 양구의 백두산부대였습니다. 기가 눌린 대학생들은 온통 까마득한 산으로 둘러싸인 연병장에서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삼청교육대 시절의 훈련방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훈련이었습니다. 

인권이 말살된 시절의 삼청교육대 훈련은 무자비했다

실제 소위 휴전선 철책에서 야간 근무도 이루어졌고, 비무장지대 내 최전방 GP에도 들어가야 했습니다. 4월의 강원도 산악은 너무 추었습니다. 실제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군사적 대결의 분위기에서 대학생들에게 극도의 긴장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난생 처음 최전방에서 훈련받는 대학생들은 가족들과 친구들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나이의 군인들과 대학생들이 같은 내무반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해야하는 암울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로서 공감대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깊은 산 속에서 자유를 잃었지만 결국은 다가 올 희망과 미래였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런 전방입소 훈련이 끝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지긋지긋한 강원도 양구의 전방입소가 끝나고 친구들에게 한마디했습니다. "강원도 양구를 향해 오줌도 누지 않겠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내 5월이 오고 6월이 다가왔습니다. 5월은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달이라 대학가는 다시 뜨거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해 6월은 전국에서 들불처럼 민주화항쟁이 일어났습니다. 대학생들을 필두로 시민들이 대거 동참했습니다. 군대라는 특수성을 이용해 장기 군사정권을 획책했던 독재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전방입소 군사훈련이 결국 대학생들에게 아무런 특효약이 되지 않았던 셈입니다.

그 다음 해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이제 군대도 많이 좋아졌겠지 하는 기대도 했습니다. 처음 입대해 준비하는 곳은 춘천 102보충대였습니다. 하필이면 강원도 춘천이란 말인가. 그 후 실제 훈련을 받는 부대가 배치됐는데 강원도 양구 백두산부대였습니다. 이런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춘천 소양호를 건너 배를 타고 더블백을 물고 산을 넘어 백두산부대에 도착했습니다. 조교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얼차려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전 해 대학생 전방입소에서 받았던 그 연병장이었습니다. 이미 기선을 제압한 조교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OO대학 출신 손 들어! 어서!"

저는 손을 들었습니다. 다른 몇 명도 손을 들었습니다. 다시 조교의 비장한 한 마디가 들렸습니다.
"너희들은 죽었다고 복창한다. 작년 여기 연병장에서 기억나는가? 앞으로 튀어 나와!" 

삼청교육대란?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군부대 내에 설치한 기관으로 대상자들을 검거하기 위한 군경 합동작전의 명칭이 '삼청작전'이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국보위는 1981년 1월까지 4차에 걸쳐 6만 755명을 불법으로 강제 체포했습니다. 피검거자들은 보안사령부를 비롯한 심사위원회에서 A B C D 4등급으로 분류되어 A급 3,252명은 군법회의 회부되었고, B급과 C급 3만 9,786명은 각각 4주교육 후 6개월간 노역과 2주의 교육 후 풀려나야 했습니다.

정통성이 없던 군사정권이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했지만 삼청교육 입소자들 가운데는 반체제 인사를 비롯해 억울하게 검거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들의 4주간 교육은 군부대 연병장 둘레에 헌병을 배치하고 엄중한 총기 무장 감시 속에서 무차별 구타와 폭력이 자행되면서 진행되었습니다. 현재 밝혀진 것만으로도, 당시 삼청교육대에 끌려 가 5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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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제 군대시절 땅굴발견해 받은 참모총장상을 찾아보니 라는 글을 블로거뉴스에 포스팅했는데 메인에 떡하니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놀랍게도, 블로거뉴스가 20년만에 군대 시절의 그리운 전우들을 찾아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중에는 같은 21사단 백두산부대 출신 선후배 전우들은 물론 제4땅굴 발견과 특수 작전에 투입되었던 수색대, 공병대, 3군단, 육군본부 시추대 등 수많은 분들이 당시의 추억 속으로 달려왔습니다. 또한, 군대에 복무 중이거나 제대한 여러 예비역들이 같은 부대가 아니더라도 군대생활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대를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군대와 관련 다양한 분들의 댓글도 눈에 띄었습니다. 존경받는 참군인이신 당시 이준 사단장님의 자제분도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어떤 여자 분은 남자 친구를 21사단 수색대에 보낸 후 걱정했지만 용감하고 훌륭한 임무를 수행하는 남친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계기로 생각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가장 보람있는 것은 당시의 몇몇 전우들과 다시 재회를 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수색중대 동기들과 선후배들의 연락처를 많이 알게 되었고 전화를 통해 안부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선후배들이 별도의 카페도 운영 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전우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예전 전우들을 만나고 싶어도 연락처도 없어 별다른 도리가 없었는데, 블로거뉴스가 20년만에 전우들을 찾아주다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많은 도움과 영감을 주신 zinicap님, 따뜻한 카리스마님, 해피아름드리님, 머니야머니야님 등 여러 블로거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반갑다, 전우야." "고맙다, 블로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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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