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10.09.04 장진영-김영균 마지막 1년 감동이 나를 울렸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5)
  2. 2010.05.15 직접 만난 강원래, 우정과 사랑의 감동이 스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27)
  3. 2010.01.08 사랑의 낚서, 눈 세상에 쓰는 남녀의 심리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44)
  4. 2009.09.03 장진영 남편, 영화같은 결혼과 마지막콘서트 by 진리 탐구 탐진강 (74)
  5. 2009.08.23 김대중 노무현 김수환, 민주주의 순교자였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8)
  6. 2009.07.17 헤어진 첫사랑을 다시 만나선 안되는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73)
  7. 2009.06.16 노홍철 장윤정 열애, 놀러와 유재석 일등공신 by 진리 탐구 탐진강 (55)
  8. 2009.06.12 공공장소에서 지나친 애정행각 문제없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158)
  9. 2009.06.04 여친과 만남 100일 이벤트 구경해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37)
  10. 2009.05.22 200억 자산 골드미스 공개구혼 사실일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42)


너무나 아름답고 슬픈 영화같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후 주루룩 한 줄기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러 내렸습니다. MBC스페셜 '장진영의 마지막 1년'을 시청한 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쉽게 만났다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 사랑과 헤어짐이 너무나 많은 우리네 현실을 돌아보면 장진영과 남편 김영균의 사랑과 이별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MBC스페셜 '장진영의 마지막 1년'편은 2009년 9월 1일, 서른일곱의 짧은 생을 마감한 배우 장진영의 사망 1주기를 맞아 여배우로서 가장 절정의 순간, 우리 곁을 떠나버린 그녀를 추억하고자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는데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수작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만남에서 이별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니 지금도 장진영의 곁을 지키고 있는 지고지순한 남편 김영균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나, 장진영이 위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김영균은 항상 그녀 곁에서 극진한 간호를 하더군요. 사실 결혼도 안한 사이에 나 몰라라해도 그만일 수 있지만 김영균은 장진영을 향해 더 불타는 사랑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들이나 주위의 반대가 심할 것을 우려해 마련한 2009년 7월 26일 라스베이거스에서 단지 지인 몇명만 초대해 둘 만의 결혼식을 올리는 동영상 모습이나 사망하기 몇 일 전인 8월 29일 혼인신고서를 냈던 당시를 회상하는 김영균을 보면서 영원한 사랑의 의미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시한부 장진영을 위한 김영균의 아름답고 슬픈 결혼식

                장진영과 김영균의 영화보다 더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가 가슴뭉클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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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보기를 열면 장진영과 김영균의 결혼식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김영균이 혼인신고를 했다고 말했을 때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장진영의 마음은 얼마나 가슴아프고 슬펐을까요? 김영균의 당시 회상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진영이한테 제가 얘기를 했어요. 혼인신고 했다고 그랬더니 깜짝 놀라요. 놀라면서 울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왜 우냐고, 너 오늘 내 와이프 됐는데 너 기뻐야 되는 거지. 그랬더니 자기가 몸이 이렇게 됐는데 미안하다고..."

장진영의 마지막 1년 주요 내용

2009년 9월 1일, 서른일곱의 짧은 생을 마감한 배우 장진영. MBC스페셜 <장진영의 마지막 1년> 편은 배우 장진영의 사망 1주기를 맞아 배우로서 가장 절정의 순간, 우리 곁을 떠나버린 그녀를 추억하고자 한다. 함께 작품 활동을 했던 김명민, 박해일, 김승우 등 동료 배우들과 가족, 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배우 장진영의 열정과 인간 장진영의 삶을 담아본다.

세상을 떠나기 전 장진영의 마지막 1년! 남편 김영균씨와의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 아름다운 사랑을 했던 그들의 이야기. 마지막까지 그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그녀가 회복을 위해 떠났던 미국과 멕시코에서의 투병기를 현지 촬영을 통해 소개한다. 또한, 미국에서 그녀를 간호했던 김영균씨 누나의 인터뷰 및 2009년 7월 26일 라스베이거스에서의 결혼식 동영상을 최초로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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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영화배우 장진영이 하늘나라로 떠난 일은 물론 배우 최진실 장자연 등 안타까운 죽음에 이어 사회적으로 사회 저명인사들의 사망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국가적으로 명망있는 사회지도자들의 서거도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었는데 국민들의 뇌리에 남는 배우들의 죽음 또한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결국은 우주의 작은 먼저처럼 사라져 갈 인생이기에 늘 살아있음에 대해 감사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의 사람들과 하루를 보다 의미있고 보람있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 사회를 보면 여전히 작은 이익과 욕심을 탐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나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정치인을 비롯 사악한 인간 군상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장진영과 김영균의 영화같은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별 이야기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울림이 크다 하겠습니다. 한편 장진영과 김영균의 이야기는 영화 '국화꽃 향기'와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국화꽃 향기'의 여자 주인공은 장진영이었고 그 이야기는 바로 자신의 삶 자체가 되었습니다. 영화가 현실이 된 슬픈 이야기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 더 가슴아프게 했습니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그녀를 하늘나라도 시샘해 일찍 데려간 것일까요.


영화 '라스트 콘서트' 이야기는?

MBC 스페셜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지만, 2009년 5월 장진영은 김영균과 함께 가수 김건모의 전국투어 전주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갔었다고 합니다. 마치 영화 '마지막콘서트'처럼 사랑하는 두 남녀는 그렇게 둘 만의 애틋한 사랑을 끝까지 간직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장진영이 이승에서 가본 마지막 콘서트가 되었습니다. 장진영은 김건모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바도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마지막 콘서트였던 셈입니다.

장진영과 김영균의 콘서트 이야기는 이탈리아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감동을 떠올리게 하게 했습니다. 미국의 컨트리 팝가수 존 덴버 주연의 영화 '션샤인'과 더불어 불치병 환자와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피아니스트 리처드(리차드 존스 분)가 백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스텔라(파멜라 빌로레시 분)를 위해 '스텔라에게 바치는 곤첼로'를 작곡하여 파리 교향악단에 초연을 하게 됩니다.



그 음악은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리처드에게 순수한 소녀 스텔라가 보내준 용기와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스텔라는 갈채로 뒤덮힌 무대의 객석에서 리처드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는 영화입니다. 마지막 콘서트에서 '스텔라를 위한 곤첼로(스텔라를 위한 협주곡)'은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지금도 영화와 음악은 커다란 울림으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남자친구 김영균과의 가슴 뭉클한 결혼 사연

장진영의 남편 김영균도 고등학교 시절 기타와 드럼을 치던 음악 로맨티스트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마지막 콘서트는 김영균이 장진영을 위한 배려와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 김영균 씨는 제15대 국회 부의장 출신인 김봉호 전 국회의원의 차남으로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공부를 많이 할수록 더 이기심이 많아지는 우리사회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김영균의 순수한 사랑은 물질만능주의 세상에 커다란 파문을 던져주는 듯 합니다.



장진영을 향한 김영균의 그녀의 사랑은 죽음 앞에서도 막을 수 없었고 더욱 불타올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좋아한 로맨티스트 김영균의 순수한 사랑이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슬프게 했습니다. 2008년 1월, 지인의 소개로 장진영과의 만남을 갖게 된 김영균씨는 그녀를 본 순간 첫 눈에 반했습니다. 장진영 역시 그에게 점점 호감을 느꼈고, 8개월 동안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 왔습니다. 모든 것이 행복하고 웃음만 가득했던 시간들. 그러나 그 해 9월, 거짓말처럼 그녀에게 위암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영화 보다 슬픈 순애보 이야기이자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는 그 때부터 또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영화 보다 슬픈 순애보와 진정한 사랑의 의미

그러나 슬픈 운명은 장진영을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김영균은 "내가 곧 그녀, 그녀가 곧 나였습니다. 혼자 보내게 된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장진영이) 가는 길에 힘이 되고 싶었고 가슴 속 담아두고 싶었습니다. 현실에서 못다한 사랑, 하늘에서나마 아름다운 결혼 생활로 이루고 싶었습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미 죽음을 예견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힘이 되어주고 꿈 속에서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계속 사랑을 하고 싶어 둘 만의 결혼식을 했다는 것에 가슴이 아려옵니다. 김영균은 작년 장진영의 사망 당시 재산 상속도 장진영 부모에게 위임했고 상주도 장진영 아버지가 맡은 바 있습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김 씨 같은 순수하고 애절한 사랑도 드문 일인 것 같습니다.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여주인공 민희재에게 남편 인하는 라디오에 보낸 사연을 통해 말합니다. 장진영을 향한 남편 김영균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여 또한 가슴이 아픕니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보고 싶어하고 당신을 그리워했는지. 나만의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 삶이 살아 있는 시간은 당신과 함께할 때 입니다"

MBC 스페셜 시청자 게시판에는 눈물과 감동의 게시글들들이 폭주했다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끝까지 장진영과 함께 하고 있는 김영균의 한결같은 마음이 하늘나라의 장진영에게 닿아 MBC 스페셜의 감동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보다 더 슬퍼서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준 장진영이었습니다. 비록 이승에서 못다한 꿈과 사랑을 하늘나라에서는 이루기를 바랍니다. 김영균도 용기를 잃지말고 살았으면 합니다.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 우리 모두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는 오늘 하루가 되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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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따리 샤바라~ 빠빠빠"

지금도 귓가에 어른거리는 곡조가 떠오릅니다. 바로 클론의 노래입니다. 1990년대 최고의 남성 듀엣 가수였던 강원래와 구준엽의 클론. 심지어 클론의 인기는 지상렬과 염경환이 '클놈'이란 개그맨 듀오를 결성해 활동하는 계기를 만들 정도였습니다. 당시 '쿵따리 샤바라'는 분위기를 업시켜주는 노래방 최고의 인기곡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강원래를 만났습니다. 저녁에 평범한 식당에서 회식이 있었습니다. 잠시 바람을 쐬러 건물 밖으로 나가려다 TV에서 봤던 누군가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강원래도 인사를 했습니다. '여기 왜 왔는지' 궁금해 물었더니 아는 분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왔다고 합니다.

사실 길거리나 건물에서 연예인을 만나면 신기합니다. 실제 연예인들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만나 본 강원래는 그야말로 소탈한 이웃집 친구나 동생같이 느껴졌습니다. 몇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사진을 찍어도 되는 물었더니 재미있는 포즈를 취해주더군요. 그리고, 블로그에 올려도 되는지 물었더니 쿨하게 답변하더군요.
"보신 그대로 쓰세요. 그것은 (블로거의) 자유잖아요."


대개 연예인이라면 좋게 써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편하게 이야기해주는 강원래가 다시 보였습니다. 게다가 사진을 찍는 저에게 익살스런 포즈까지 취해주어 고맙기도 했습니다. 강원래는 당시 저녁 식사와 함께 반주를 했는지 다소 혈색에 화기가 돌았는데 사진찍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포즈까지 취해주었기에 더욱 인상이 깊었습니다.

강원래하면 클론 시절 인기 가수로서 기억도 있지만 불법 유턴 차량에 의한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된 사연이 떠오릅니다. 인기 절정의 댄스 가수가 하반기 마비로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강원래는 아무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댄스 가수의 길을 지금도 걷고 있습니다. 비록 휠체어에 의지해 댄스를 선보여야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향해 열정과 의지를 보여준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친구 구준엽과 부인 김송이 곁에 있었습니다. 물질이 지배하는 현대 문명사회에 감동을 준 우정과 사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준엽은 당시 친구를 위해 클론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가수로도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클론은 쿵따리 샤바라 이외에도 난, 초련 등 최고의 히트곡을 내놓으며 인기 절정의 시기였다는 점에서 구준엽의 우정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한 우정은 곧 강원래가 구준엽과 그 만큼 평소 절친하게 잘 지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우정 뿐만 아니라 강원래를 사랑하는 김송도 감동 스토리였습니다. 뜻하지 않는 사고로 장애인이 된 강원래를 간병하며 결혼까지 한 김송의 모습은 숙연하게 하기도 합니다. 쉽게 헤어지고 만나는 보통 사람들에게 김송의 극진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했습니다. 강원래는 장애를 딛고 다시 무대에 서서 자신의 아내를 위한 노래 '내 사랑 송이'를 불러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강원래는 요즘 장애인들과 함께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강연이나 공연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법무부 명예보호관찰관으로 활동하며 수원보호관찰소에서 법원으로부터 수강명령을 받은 상습 음주운전자, 무면허운전자 등 교통법규 위반자와 소년 보호관찰 대상자 50여명을 대상으로 준법운전 특별강연도 했다고 합니다. 강원래 자신이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장애인이 된 후 좌절과 시련 그리고 극복과정을 통해 느낀 점을 설명하며 일반 사람들도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으니 항상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키는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었지요.

어떤 인터뷰에서 강원래는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심한 셈입니다. 온전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도 길을 가면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왜 오토바이를 타서 그렇게 됐냐고 하세요. 저는 교통신호 준수하며 가고 있었지만 지나가던 트럭이 불법 유턴하던 저를 들이받은 거에요. 저로써는 어쩔 수 없이 사고를 당한 거죠. 근데도 저에게 왜 그랬냐고 하시는 분들을 보면 아직도 힘들 때가 많아요. 못생긴 사람에게 너 왜 그렇게 못생기게 태어났느냐고 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사고라는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뿐더러,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는 거잖아요. 근데 그걸 너무 죄 인양 무슨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매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화가 나기도 해요."
                <꿍따리 유랑단은 강원래 단장과 장애인들로 구성돼 세상의 희망을 만들고 있다>

"제게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준 사람은 장애인이에요. 어떻게 보면 나쁜 거죠. 나보다 가난한 사람보고 ‘아, 난 부자다’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니깐요. 그래도 나보다 힘들게 사는 장애인들을 보면서 힘을 얻었어요. ‘아,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저렇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구나. 저 사람들도 열심히 사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보자’라고 생각하며 제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됐죠."

강원래를 만나본 후 여러가지 상념이 오버랩되어 스쳐지나 갔던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좌절하고 희망을 잃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강원래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희망을 향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희망에는 우정과 사랑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강원래 자신이 가장 강한 의지와 집념을 가졌겠지만 기꺼이 그의 곁을 지켜준 친구 구준엽과 아내 김송의 모습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강원래가 앞으로도 건강하고 꾸준한 활동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전해주기를 바랍니다.

강원래가 어디선가 한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환경이 좋든 나쁘든, 그것을 바라보는 생각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꿈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간다면 어떤 환경이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살아가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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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눈 세상입니다. 갑작스런 폭설과 한파로 교통대란과 일어나고 크고 작은 사건 사고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눈 세상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함박눈과 싸리눈과 같이 눈이 내리는 날,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강아지와 개라고 합니다. 개와 강아지의 눈은 색맹이라서 눈 내리는 풍경이 매우 생소하고 특이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 컬로 색상을 보는 사람의 시각과는 차이가 있는 셈입니다. 색맹인 개에게는 하늘에서 하얗게 쏟아지는 눈발은 그야말로 장관으로 보일 것입니다.

강아지가 눈내리면 좋아하는 이유는?

눈이 내리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하는 것은 그 만큼 생경하고 이채로운 풍경을 즐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들의 눈은 녹색과 검은 회색은 일부 알아보지만 검은 색과 흰색의 흑백사진처럼 세상을 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개들은 근시라서 멀리 있는 사물을 식별하는 능력은 떨어지지만 움직임에는 매우 민감해서 흩날리는 눈송이들이 자극을 준다는 것입니다.

특히 어둡고 캄캄한 밤중에 하얗게 반짝이는 백색의 눈송이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하늘이 불꽃놀이처럼 더욱 자극적인 풍경이라고 합니다. 하얀 눈이 만들어낸 세상은 개들에게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인 셈입니다. 흑백세상이 준 선물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 만큼 순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산 비탈에서 비닐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인공 눈썰매장 보다 재밌다

아이들이 산비탈 비닐포대 썰매를 더 좋아하는 이유?

또한 눈이 내리면 어린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눈썰매도 탈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만큼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가 함께 하는 세상입니다. 아무리 춥더라도 동네 꼬마 녀석들은 세상사 근심 걱정없이 순수의 동심을 쏟아내며 행복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은 인공 눈썰매장과 비탈길의 비닐 포대 썰매 중 어떤 것을 더 좋아할까요? 실제 실험을 해봤는데 아이들은 그냥 산비탈에서 즐기는 비닐 포대 썰매를 더 좋아합니다. 이유는 자유롭게 오래 탈 수 있고 그들만의 세상이고 더 스릴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골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다면 아이들에게는 겨울철에 큭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눈 내린 순백의 세상 풍경에는 연인이나 청춘 남녀들에게 사랑과 낭만을 함께 그리고 있다

연인들이 모래사장이나 눈밭에 사랑을 표시하는 이유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가 되면 함께 모래사장이나 해변을 거닐어 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모래성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모래밭에 사랑의 하트 모양을 새겨보기도 합니다. 순수함과 낭만이 있는 풍경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닷물에 휩쓸려간다고 하더라도 둘이 함께 한 순간의 영원은 함께 하고 있어 행복할 것입니다.


저도 아내에 의하면 젊은 시절에 바다 해변의 모래사장에 하트 모양을 그린 적이 있다는데 기억도 가물가물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마도 당시 남들이 해변이나 모래사장에서 그런 장면을 연출하거나 영화와 같은 곳에서 연인들이 보여주는 낭만의 모습이 한번 나도 해볼까 하는 심리로 작용한 듯 합니다.

연인들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경우의 사랑과 낭만과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서 모래사장에 그런 사랑의 그을 그리기도 합니다. 이 경우는 짝사랑 또는 외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간절함일 수 있겠습니다.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지만 앞으로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염원하는 표시인 셈입니다. 오승희 시인의 모래 위에 새겨진 사랑은 그러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래 위에 새겨진 사랑 


 시인/오승희

모래위에 새겨진 사랑이라서
야멸친 파도 끝에
씻겨질 수밖에 없었나보다

왜 그렇게 지워내려
안간힘을 쓰는지

난 그저 아파할 뿐인데
내 눈물까지 보듬느라
얼마나 버거울까

몇 만 번을 씻겨내도
한사코 젖어드는 사랑인 것을
그대는 아직도 모르나보다
바닷물이 짠 이유를

야멸친 파도로
가슴을 쓸어내는
그대를 모르듯이

눈 쌓인 공원이나 눈밭에 사랑의 하트나 표현을 담은 그림을 자주 보게 됩니다. 연인이 함께 그린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간절한 염원인지 모르겠지만 모래 위에 그린 사랑이나 유사할 것입니다. 시인 이효녕의 시 '눈 위에 쓴 편지'는 아스라한 그리움과 사랑을 애절하게 담고 있습니다.

눈 위에 쓰는 편지

시인/이효녕


눈이 내리는 이 계절
나는 그리운 사람에게
눈 위에 편지를 씁니다

그대는 내 안에 매일 살고
지난 가을 쓸쓸하던 내 가슴 위로
낙엽이 떨어져 이리 저리 뒹굴다가
그리움 눈꽃으로 피어나는 이 계절
기다림으로 편지를 쓰는 것이
너무도 행복합니다

차가운 바람에 골짜기가 된 마음
따뜻한 사랑 너무 그리워하며
저미는 내 가슴을 뚫고
하얀 눈벌에 피는 붉은 동백꽃
그대가 내 가슴에 자리 잡고 있어
그리워하는 것도 행복입니다

커피 한 잔을 끓여놓고
창문을 열고 바라보면
그대가 눈길을 걸어오는 듯하여
너무나 보고 싶은 마음에
눈 덮인 우체통 위에 편지 쓰면서
맨 마지막은 사랑한다고
하트 안에 마침표를 찍는 마음
그리움이 눈으로 계속 내립니다


그것은 간절함을 넘어 이제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추억의 한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지나간 겨울 날의 추억이라 하더라도 청춘 남녀와 연인들의 사랑과 낭만은 여전히 깊게 남아있었나 봅니다. 이를 보면 남자에 비해 여자의 감성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남자는 단지 순간적인 재미나 즉흥성이 강하다면 여자는 감성과 분위기를 오래 품고 있는 것입니다. 모래와 눈 위에 쓴 사랑과 추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편린인 셈입니다. 모래 위나 눈 위에 잠시 머물다 사라진 사랑의 표시가 사람들에게는 평생 남아서 영원히 추억하는 페이지인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순수함과 열정이 가득한 시기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에 못잊는 것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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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영화배우 장진영이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배우 최진실 장자연 등 죽음에 이어 사회적으로 또 하나의 잔잔한 파장을 주고 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충격적인 사망 소식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수환 노무현 김대중 등 국가적으로 명망있는 사회지도자들의 서거도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었는데 국민들의 뇌리에 남는 배우들의 죽음 또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결국은 우주의 작은 먼저처럼 사라져 갈 인생이기에 늘 살아있음에 대해 감사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의 사람들과 하루를 보다 의미있고 보람있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곤 합니다. 

장진영의 사망은 영화같은 사랑과 결혼을 한 남편 김영균 씨가 있어 사람들에게 더욱 안타깝고 가슴 뭉클하게 합니다. 영화 '국화꽃 향기'는 여자 주인공은 장진영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어 또한 현실 속의 슬픈 이야기로 남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희 이모부는 국화꽃 향기의 이야기 처럼 이모가 아이를 낳은 직후 사망한 후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고 있어 남의 일 같지가 않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영화 '라스트 콘서트' 이야기는?

그리고, 장진영은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 김영균과 함께 가수 김건모의 전국투어 전주 콘서트를 지난 5월 마지막으로 갔었다고 합니다. 마치 영화 '마지막콘서트'처럼 사랑하는 두 남녀는 그렇게 둘 만의 애틋한 사랑을 끝까지 간직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장진영이 이승에서 가본 마지막 콘서트가 되었습니다. 장진영은 김건모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바도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마지막 콘서트였던 셈입니다.

한편 장진영의 사연은 이탈리아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감동을 떠올리게 하게 했습니다. 미국의 컨트리 팝가수 존 덴버 주연의 영화 '션샤인'과 더불어 불치병 환자와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피아니스트 리처드(리차드 존스 분)가 백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스텔라(파멜라 빌로레시 분)를 위해 '스텔라에게 바치는 곤첼로'를 작곡하여 파리 교향악단에 초연을 하게 됩니다.



그 음악은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리처드에게 순수한 소녀 스텔라가 보내준 용기와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스텔라는 갈채로 뒤덮힌 무대의 객석에서 리처드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는 영화입니다. 마지막 콘서트에서 '스텔라를 위한 곤첼로(스텔라를 위한 협주곡)'은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지금도 영화와 음악은 커다란 울림으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남자친구 김영균과의 가슴 뭉클한 결혼 사연

장진영의 남편도 고등학교 시절 기타와 드럼을 치던 음악 로맨티스트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마지막 콘서트는 남편 김영균이 장진영을 위한 배려와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 김영균 씨는 제15대 국회 부의장 출신인 김봉호 전 국회의원의 차남으로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건설 분야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장진영을 향한 남편 김 씨의 사랑은 죽음 앞에서도 식을 줄 모르고 더욱 불타올랐던 것 같습니다. 음악을 좋아한 로맨티스트 김영균의 순수한 사랑이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남편 김 씨는 지난해 9월 처음 만난 후 장진영의 생일인 지난 6월 14일에 프러포즈를 한 후 지난 7월 26일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지난 8월 28일 혼인 신고를 마쳤다고 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도 없이 둘만의 결혼식이 마지막 여행이 되었던 셈입니다. 어쩌면 영화 보다 슬픈 순애보 이야기인 듯 합니다. 한편으로는 눈물겹고 한편으로는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로 다가왔습니다.

영화 보다 슬픈 순애보와 진정한 사랑의 의미

남편 김 씨는 "내가 곧 그녀, 그녀가 곧 나였습니다. 혼자 보내게 된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고인의) 가는 길에 힘이 되고 싶었고 가슴 속 담아두고 싶었습니다. 현실에서 못다한 사랑, 하늘에서나마 아름다운 결혼 생활로 이루고 싶었습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이미 죽음을 예견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힘이 되어주고 꿈 속에서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계속 사랑을 하고 싶어 둘 만의 결혼식을 했다는 것에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김 씨는 재산 상속도 장진영 부모에게 위임했고 상주도 장진영 아버지가 맡게 된다고 합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김 씨 같은 순수하고 애절한 사랑도 드문 일인 것 같습니다.


배우 장진영의 죽음은 지난 2003년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위암으로 죽은 여주인공 민희재와 놀랍게 흡사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영화 속 남편 인하는 라디오에 보낸 사연을 통해 "내가 얼마나 당신을 보고 싶어하고 당신을 그리워했는지. 나만의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 삶이 살아 있는 시간은 당신과 함께할 때 입니다"라며 슬퍼했듯이 말입니다. 현재 장진영의 남편 김 씨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끝까지 장진영과 함께 한 남편 김 씨가 용기를 잃지말고 살았으면 합니다.


영화 보다 더 슬퍼서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준 장진영이었습니다. 비록 이승에서 못다한 꿈과 사랑을 하늘나라에서는 이루기를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진영의 입관식에 참석한 남편 김씨의 비통한 모습(좌)과 장진영과의 결혼 커플 반지를 낀 모습(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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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09년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슬픈 역사의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사 민주주의 역사의 큰 별들이 하늘나라로 떠났기 때문입니다. 큰 별들의 서거와 선종에 비통해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 만큼 그들의 삶이 주는 울림이 컸다는 반증입니다. 그 슬픔과 눈물은 국민들의 상실감을 바로미터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거목이자 큰 별이었습니다. 이들 3인의 서거는 '시대의 어른이 없다'는 상실감과 안타까움으로 국민들의 마음이 심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기고 간 유지와 의미는 그대로 남아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빛과 소금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지난 1987년 6월은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국민들의 열망이 폭발한 해입니다. 당시 저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전두환 군사 독재가 호헌을 통해 장기집권을 획책하던 시기였습니다. 서슬퍼런 군사 통치 시대였지만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전국의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목놓아 '군사독재 타도, 민주주의 쟁취'를 외쳤습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당시 명동성당 모습(좌)과 2008년 서울시청 앞 촛불시위 장면

야만적인 군사 독재 정권의 탄압과 고문 그리고 대학생들의 죽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국민들은 오직 민주주의를 원했습니다. 군사 정권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민주화항쟁에 무력 강경 진압에 나섰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의 무차별 무력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울 도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무장 전경들에 쫒겨 명동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배수의 진을 쳤습니다.

명동성당을 완전 포위한 전경들은 당장 성당에 진입해 무력 진압에 나설 태세였습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은 절대 야만의 군대가 성당에 진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명동성당은 민주주의의 성지였습니다. 독재시절 언론은 정권의 꼭둑각시나 다름없었습니다.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폭도로 매도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이 죽은 시대에 진실을 알리는 노력은 계속 되었습니다. 손으로 직접 쓴 대자보가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과 전실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국민들은 군사정권의 앵무새가 된 방송과 신문을 믿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현장에서 들려주는 진신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명동성당은 끝까지 독재정권의 회유와 협박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의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독재정권의 무자비한 무력 진압이 거세질수록 더욱 항쟁의 기운이 불타올랐습니다. 수십만명이 서울의 종로와 시청 서울역 충무로 등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은 물론 심지어 제주에서도 민주화 항쟁이 매일 계속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행동하는 양심'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지 않았던가. 매일 군사정권의 전경들에 의해 시민들이 쓰러지고 붙잡혀가더라도 또 다른 사람들이 거리로 거리고 나섰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명동성당의 비장함으로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독재정권은 6.29 선언을 통해 항복했습니다. 시민들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민주주의 승리가 아닌 반쪽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기만적인 군사독재의 일당들은 살아남아 권력을 연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명동성당이 민주주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독재정권의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는 김수환 추기경의 담대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탄압받는 국민들에 대한 종교적 신념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명동성당과 김수환 추기경이 없었다면 1987년의 민주화 항생은 꽃을 피우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언제나 고통받는 민주주의 역사 현장과 함께 한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포기하지않고 거리에서 외칠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과 노무현과 같이 실제 행동으로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그냥 방 안에 틀어박혀 마음 속으로만 생각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간절히 소망하고 그 열정을 바쳐 행동하는 양심을 실천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우리 앞에 희망의 햇살을 비추는 것입니다.

현대사의 큰 별 3인, 민주주의 역사와 함께 영원하다

2009년 2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습니다. 민주주의 성지 명동성당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그를 애도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보호자였던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은 슬프면서도 한편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민주주의 성지 순례와 같은 사람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어 지난 5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역주행하는 반민주 시대의 정치적 타살이나 다름없는 일었습니다. 다시 사람사는 세상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일이었습니다. 봉하마을은 민주주의 성지가 되었고 전국에서 자발적인 시민분향소가 만들어져 5백만명 이상의 추모객과 함께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를 생각하며 다짐을 했습니다.

김대중 전 태통령이 지난 8월 18일 서거했습니다. 인동초 김대중의 삶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했습니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정권의 탄압과 박해 그리고 납치 감금 사형에 이르는 고난 속에서도 결코 불의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독재의 회유와 협박에 굴복해 변절한 사람들이 많지만 김대중은 언제나 올바른 한길을 갔습니다. 독재 절대군주에 굴복하지않고 죽음을 선택한 영국의 성인 토머스 모어의 세례명을 갖고 있는 김대중은 어쩌면 성인의 삶과 닮아 있습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김대중의 친필일기는 어쩌면 인생과 역사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일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 역사의 큰 별들이 나란히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큰 별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순교자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국민들은 연이은 황망함에 더 이상 슬퍼할 기운도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3인의 순교자가 남긴 사람 사는 민주주의 세상, 사랑과 평화를 향한 나눔의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큰 별이 된 3인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우리를 지켜주고 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 시대를 연 영웅 3인을 떠나보내는 추모의 눈물은 비통하면서도 한편으론 훈훈하고 경건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따뜻한 사랑과 나눔의 여운이 있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의 소중함이 함께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위대한 지도자의 박애정신과 무한한 존경심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인자한 할아버지와 같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간적인 형님 처럼 친근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든든한 큰 어른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3인의 서거 앞에서 슬픔과 함께 상실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제 그들은 모두 떠났습니다. 이 땅을 사는 인동초와 같은 사람들 만이 남아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하늘나라로 떠나는 순간까지도 남북화해와 평화,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행동하는 양심이고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몫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영결식이 국장으로 거행되고 그는 이승을 떠나지만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인동초가 모진 겨울을 이기고 끝내 꽃을 피우듯이 민주주의 역사도 그렇게 꽃을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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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첫사랑은 풋풋하고 아름답습니다. 남자와 여자로 태어나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것이 첫사랑인지 아닌지 모를 때도 많습니다. 첫사랑을 어떻게 정의할지도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자기자신에게 의미있는 이성과의 첫기억 또는 애틋한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 첫사랑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는 풋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첫사랑 또는 풋사랑의 추억을 더듬어가면 너무 이른 나이입니다. 당시 네살이었습니다. 이웃집의 여자 아이 N은 세살이었습니다. 첫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나이가 어립니다. 산골마을에서 바로 옆집에 살았습니다. 부모님이 농사 일을 나가면 저는 N과 하루종일 소꿉놀이를 했습니다. "나는 신랑, N은 신부" 그런 놀이였습니다.

네살 신랑과 세살 신부는 항상 집 앞의 뜰에 나와서 놀았습니다. 소꿉놀이 도구는 자연에 널린 돌과 풀이었습니다. 돌은 밥이 되고 풀은 국과 반찬이었습니다. 세살 신부는 돌과 풀로 밥을 짓고 국을 만들었습니다. 네살 신랑은 나무와 풀을 뜯어왔습니다. 나무는 밥을 지어야 할 용도이고 풀은 나물도 만들고 소에게 먹일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어른들은 소꿉놀이하는 저와 N을 보면 장난스럽게 물었습니다.
"애들아, 너희들 결혼할 거니?"
"네. 결혼할 거예요."

"그래, 나중에 결혼해 잘 살아라. N아 언제 결혼할 거니?"
"....(수줍음)....어른이 되면."

그렇게 저는 N과 늘 함께 놀았습니다.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저는 이웃 마을로 이사를 갔습니다. N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N은 슬퍼했습니다. 저도 슬펐습니다. 헤어짐은 늘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N도 도시로 이사를 갔습니다. 영영 저는 N과 헤어졌습니다. 몇 년 후, 저도 도시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둘은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습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시골 마을에 방학 때 갔습니다. 어머니가 느닷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너, 시골에서 소꿉놀이 친구였던 N 기억하겠냐?"
"N이요." 

"내가 밭일 가면 옆집에서 N과 놀았는데."
"아, 어렴풋이 기억나요. 신랑 신부하면서 놀았던 것 같아요."

"그래, 맞다. 근데 N이 시골에 놀러 왔단다. 만나 볼래? 이쁘게 컸더라."
"음. 세월이 너무 지났네요. 궁금하지만..."



그렇게 네살 그리고 세살 때 소꿉놀이 신랑 신부가 만났습니다. 너무나 세월이 지나 서로는 당시의 모습을 자세히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서먹한 기분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린 시절의 소꿉놀이 부부였지만 너무나 많은 시간들이 지난 후 만남은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저와 N은 이미 당시의 추억이 아닌 20대의 시절로 만났기에 현실이 어색할 뿐이었던 것입니다. N은 어머니와 예전에 살던 마을에 놀러왔다 저를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와 N의 어머니는 서로 친분이 깊어 소꿉놀이 부부의 만남을 주선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둘은 각자의 삶의 현실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저는 N과 만나지 말았어야 합니다. 아주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저 신비로운 추억만을 간직하며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고이 간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N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의 첫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듯 합니다. 그러나 그 추억을 만나는 순간부터 그 아름다운 첫사랑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서울로 초등학교 시절에 전학을 했습니다. 참기름집에 사는 여자 아이와 눈길을 마주치곤 했습니다. 한번은 같은 반이되었습니다. 마을에 살고 있어 서로는 스스럼없이 친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반이 갈리면서 영영 못만났습니다. 그러다 아이러브스쿨이 유행일 때 친구의 권유로 가입했는데 놀랍게도 Y가 저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서로 몇번의 메시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Y는 저를 잘 기억하는데 저는 기억못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만날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만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어린 시절에 N과의 추억을 간직하지 못했던 이유에서 입니다. 첫사랑이든 풋사랑이든 추억은 소중하게 간질할 때 영원히 아름답습니다. 나이가 들어 동창회를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첫사랑이든 소중한 친구와의 만남이든 사심이 들면 그것은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의 풋풋하고 때묻지 않은 시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사랑은 추억할 때 아름답습니다. 가슴 속의 첫사랑은 만나는 순간 그 추억은 사라집니다. 첫사랑은 만나지 않고 가슴에 묻어두고 추억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당시의 예쁜 추억만을 간직할 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만나는 순간부터 상상 속의 신기루가 바로 사라집니다.

첫사랑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사랑입니다.
첫사랑은 아름답지만 추억으로 간직할 사랑입니다.
첫사랑은 영원토록 소중하고 순수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행복한 사랑입니다.
헤어진 첫사랑과 만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그 행복한 추억 속 사랑을 잃어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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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성이면 감천"

예로부터 사람의 마음이 간절하면 하늘도 감동한다고 했습니다. 사랑과 결혼도 얼마나 간절하게 생각하고 실제로 순수한 간절함으로 실행하고 다가서느냐에 따라 결국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달 대만 갑부의 딸과 브라질에서 만나 결혼한 친구의 이야기를 전한 바 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 남자가 매일 밤을 꼬박 새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동이 트면 한국 남자는 자전거를 타고 대만 여자가 묵고있는 숙소에 편지를 놓고 돌아오는 일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대만 여자는 한국 남자의 순수함과 간절함에 감복해 연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남자는 대만 여자가 갑부의 딸인지는 전혀 모르던 상태였습니다. 나중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녀의 신분을 알게되고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였습니다. 순수한 한국 청년의 간절한 마음과 실행은 언어와 국경을 넘어 부부의 인연이 된 것입니다.
(참고 :  대만 갑부의 딸과 결혼한 친구의 비결 '편지'(1부) )

노홍철과 장윤정의 러브스토리가 MBC '놀러와 가족의 짝꿍을 소개합니다'라는 코너에서 공개되었습니다. 노홍철과 장윤정은 '사랑과 우정사이'라는 팀으로 함께 출연해 서로 친구로서 만남을 가지면서 사랑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밝혔습니다. '놀러와'가 녹화되던 시점은 노홍철이 장윤정에게 본격적인 연인이 되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지난 8일 노홍철이 열애 사실을 실토하기 1달전에 녹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놀러와에서 만나 절친으로 사랑 굳혔다

그러나 노홍철과 장윤정이 '놀러와'에 출연해 밝힌 사실들을 들어보면 이미 장윤정의 마음도 노홍철에게 많이 기울어져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방송이라고 하지만 결혼할 나이의 선남선녀가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한 팀으로 출연해 둘 사이의 만남과 데이트 과정을 소개한다는 것은 이미 우정은 넘어 사랑의 감정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노홍철은 장윤정에 대해 "2년 전 장윤정이 '놀러와'에 출연하면서 엄청 가까워졌다" "당시 장윤정이 출연해 힘들고 외로운 모습을 많이 내비췄다. 에너지를 나눠주고 싶고 인생을 즐기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녹화 후 대기실에서 장윤정의 번호를 알아내 연락했다" "이후 절친한 친구가 되서 내 모든 걸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둘의 만남을 소상히 설명했습니다. 이같은 노홍철의 이야기는 단순한 친구가 아닌 사랑하는 연인으로 만났다는 것을 반증해 줍니다. 

장윤정도 노홍철과 출연을 사실상 열애 고백의 자리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장윤정도 "처음 만났을 때 노홍철과 친해지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당시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선지 노홍철이 말하는 당시 상황을 기억조차 없다"고 이야기해 단순히 친구인 것 처럼을 일단 연막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절친 퀴즈를 통해  한 밤 중에 삼청각과 자동차 극장에서 둘 만의 은밀한 데이트를 공개했습니다. 두 사람이 녹화 전에 어느 정도 열애인 점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지 않고서는 퀴즈에서 그러한 문제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이 연인 만이 풀 수 있는 문제를 맞추고 깡총깡총 손을 잡고 좋아하는 장면도 이미 친구가 아닌 연인이라는 점을 확연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유재석 '놀러와' 통해 만남과 열애 발표 계기 됐다

결국 노홍철과 장윤정은 2년전 '놀러와'에서 친구로서 만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고 이번 '놀러와 '절친'에서 연인을 공개한 셈이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놀러와' 프로그램은 MC 유재석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홍철이 장윤정이 마음에 들었을 때 연락을 권유한 것도 유재석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유재석이 사람의 메신저 역할을 한 셈입니다. 유재석이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노홍철이 장윤정과의 만남의 계기가 된 '놀러와'에 2년만에 다시 출연해 우정을 넘어 연인을 사실상 공개한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유재석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 두 사람이 연인임을 처음 밝히는 자리로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노홍철과 장윤정은 가장 절묘한 방법으로 유재석에게 보답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홍철의 순수한 간절함이 장윤정을 감동시켰다

노홍철은 장윤정의 팬클럽 이름과 생일 등도 모두 알고 있어 얼마나 간절하게 장윤정에 대한 흠모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노홍철은 오래 전부터 장윤정 팬클럽에 가입해 실제 정확한 정보를 얻기도 했다고 합니다. 노홍철은 5년전 시상식에서 장윤정을 처음 봤고 이후 팬이 됐다고 말한 바도 있습니다. 노홍철은 '골드미스가 간다' 프로에 출연해서 "장윤정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관련이 없는 정보가 많이 나와 팬카페에 가입했다했다" "팬카페의 정보를 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회원 등급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노홍철은 장윤정에게 "윤정아, 나 널 보면 심장이 자꾸 뛰는데 왜 그러지?" "그건 널 좋아해서 그런 것"이라고 솔직하게 밝힌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노홍철의 마음을 단순히 친구로만 생각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노홍철은 이미 장윤정에게 가장 감동적인 이벤트로 '집 안 가득 하트 모양의 풍선으로 장식해' 준 적이 있었는데 장윤정은 너무 고마워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이미 노홍철과 장윤정은 오래 사귀면서 마음이 통했던 셈입니다.

사실 장윤정에게 흑심(?)을 품고 접근하던 수많은 남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윤정은 노홍철을 선택했습니다. 장윤정은 '행사의 여왕'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 돈을 잘 버는 여가수입니다. '국민 며느리'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로 며느리감으로 가장 인기가 많습니다. 그런 장윤정이 노홍철과의 결혼을 결심한 것은 노홍철 만이 언제나 변함없이 순수한 간절함으로 자신에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노홍철은 오래 전부터 장윤정이란 여자만을 사랑했던 남자였던 셈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성이면 감천'이란 속담의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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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에 다정한 10대 남녀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을 봤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횡단보도에 서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마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로 보였습니다. 네거리 대로변 길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신호등의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학생은 여학생의 어깨를 안고 서있었습니다.

요즘 10대들은 예전에 비해 확실히 애정 표현도 대범해진 듯 합니다. 오래된 뉴스이지만, 어르신들 앞에서 키스를 하던 10대 남녀가 이를 타이르던 60대 노인에게 "무슨 상관이냐?"며 말대답을 하자, 이에 격분한 60대 노인이 이들 10대 연인을 폭행해 입건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뉴스는 인터넷에서 잘잘못을 두고 뜨거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10대들에 비해 20대 초반은 더욱 과감한 것 같습니다. 오늘 퇴근 길에도 공공장소 길거리 벤치에서 남녀가 뒤엉켜 있는 것을 봤습니다. 맨살에 짧은 초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남자의 다리 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남자를 더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길은 퇴근 길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남녀의 애정행각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습니다.

10대들의 애정은 방송드라마에서도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종영된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드라마의 오명을 들었지만 시청률은 최고였습니다. 특히 10대를 비롯한 젊은이들과 여성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한 바 있습니다.

'꽃보다 남자'는 10대 남녀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였습니다. 그런데 10대 남녀는 과감한 키스신을 보여주는 등 기존 방송 드라마에서 볼 수 없던 파격적 장면도 연출되었습니다. 이것이 세태를 반영하는 것인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전국민들이 시청하는 공중파 방송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입니다.

과거의 잣대로 10대들의 애정 문제를 판단하는 것이 옳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공장소에서 과도한 애정행각은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젊은이나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공공장소와 같은 공간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노출의 계절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해변이나 수영장 등 여러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간에서 눈살을 찌푸릴 만한 연인들의 애정행각과 같은 일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찔한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남녀들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은밀한 부위를 더듬는 장면 등 민망한 일이 자주 발생한다고 합니다.

초여름 날씨를 보이면서 이미 개장한 캐리비안베이 등 인공 해수욕장(?)에서는 선정적인 노출이나 애정행각을 보이는 '꼴불견'족들이 출몰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공공장소에서 지나친 애정 표현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이러한 공공의 공간은 아이들은 물론 어르신들과 가족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동의 장소라는 점에서 누구나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절제된 수준의 자연스런 애정의 표현을 한다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을 만한 지나친 행동까지도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굳이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농도짙은 애정 표현을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예의범절의 문제일 것입니다. 가족들 단위의 사람들도 많은 장소라는 점을 감안해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빵집에서 10대 남녀 학생이 만나는 것도 조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에서 보면 너무 엄격했던 시기였습니다. 소위 '남녀칠세부동석'이란 유교적 사상이 강한 사회의 단면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예전과는 달라진 세상입니다. 그래서 남녀가 자연스럽게 교제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사회 공동체의 상식을 지키는 기본은 필요할 것입니다.

아침에는 10대 커플의 모습을 보면서 출근하고 저녁에는 20대 커플의 지나친 애정행각을 보면서 퇴근한 날이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이같은 꼴불견 모습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유가 길거리의 방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유에는 그 만큼의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둘 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 사회 공동체입니다. 공공장소에서 지킬 것은 지키는 시민의식이 필요할 듯 합니다. 

**  참고 : 사회통념을 고려해 공공장소에서 너무 민망하고 지나친 애정행각 사진은 게재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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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아파트 뒷편에는 작은 어린이 놀이터를 지나가는데 등나무덩굴 쉼터에 밝은 촛불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열심히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쁜 촛불을 이용해 사랑의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에게 궁금해 물어봤습니다.

"신기한데요. 여기에 왜 촛불을 만들고 있나요?"
"제가 여자친구와 만난 지 오늘이 100일째 되는 날이거든요."

그리고 젊은이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정성껏 촛불 하나 하나를 연결해 하트 모양을 완성한 것을 보면서 '참으로 멋진 이벤트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에게 지금까지 특별한 이벤트 하나라도 해본 적이 없었던 제 자신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희 세대에는 마음을 표현하는데 있어 요즘 세대와 같이 적극적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 젊은이의 여자친구에게는 100일 이벤트를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은 놀이터의 등나무 쉼터 아래 사랑을 담은 하트 모양의 촛불들이 그 마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값비싼 선물이나 고급 레스토랑 보다는, 오히려 정성과 배려가 담긴 사랑의 마음이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성을 다해 마음을 담은 촛불들을 하나씩 켜서 사랑의 하트 모양을 완성한 모습이 어름답습니다.

도시의 콘크리트 빌딩 숲 속에서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고급 선물을 주고받는 것 보다는 진심어린 배려의 마음이 더 사랑과 복을 전하는 듯 합니다.


다소 화려하게 이벤트를 해주는 카페도 있는데 소박하지만 직접 준비한 정성 보다는 못한 느낌입니다.

무뚝뚝하게 살아왔던 제겐 오늘 젊은이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겨졌습니다. 너무 물질만능주의로 흐르고 있는 세태 속에서 살아가다보면 우리네 사람들에게 더 소중한 가치들을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진정어린 마음과 정성이 소중한 이유겠지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여자의 마음을 잘 모르겠지만 과연 어떤 이벤트가 더 마음을 움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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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혼정보회사가 '200억 자산 골드미스, 그녀의 특별한 공개구혼'이라는 타이틀로 스페셜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200억'이라는 돈과 '공개구혼'이라는 단어를 내세워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여러 언론에서는 이같은 화제성 사실을 그대로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내용에 대해 정말 사실인지, 과도한 상술은 아닌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우선 공개구혼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봅니다. "사업 성공, 이제는 연애 성공을 꿈꾸는 골드미스! 그녀의 배우자가 될 스페셜 남성을 찾습니다."라는 제목부터 심상치가 않습니다. 게다가 세부 소개 내용은 굉장히 사실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공개구혼녀는 "49세. 개인사업에 매진해서 200억대 자산을 보유한 성공한 사업가"라고 나이와 직업을 당당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아한 외모와 늘씬한 체구의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는 분. 운동과 여행을 즐기며, 리더십을 갖춘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로서 "대학 대신 사회로 나가 열심히 일했고, 어느덧 혼기를 훌쩍 넘겼습니다. 지금이라도 좋은 사람 을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여러분들 앞에 섰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녀가 원하는 이상형의 남성은? "완벽 연하남?"
"동갑부터 10살 연하의 미혼 남성"이어야 한답니다. 연상의 남성은 일단 자격이 없습니다. 또한 "4년재 대학 이상의 학력, 안정된 직장, 서울/경기권 거주자, 활달하고 호방한 성격의 마음 따뜻하고 진실한 남성."이라는 단서도 달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한 수준의 남성 조건인 듯 합니다. 사실상 그녀는 엘리트 남성을 원하는 셈입니다.


특히, 본인이 직접 작성해 보내준 글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결혼정보회사가 '공개구혼'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인증샷과 같은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장치를 둔다는 것이 다분히 의도적인 느낌도 드는 뭔가 좀 찜찜해지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녀는 "배려심이 많고 포용력이 있는 따뜻하고 진실한 남성. 틀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로서 저보다 젊은 남성이면 좋겠습니다." 직업은 회사원이나 전문직을 원하고 있는데, 자신의 취미가 운동과 외국 여행이라는 점도 밝히고 있습니다.



과연 200억대 자산가의 공개구혼은 사실일까?

결론적으로 대체적인 주요 내용은 사실일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돈과 일부 사실은 다소 포장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과정상에서 살펴보면 사전에 어느정도 조율이 된 내용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공개구혼 이전에도 이 결혼정보회사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깜짝 이벤트'를 몇차례 실시한 바 있습니다. 지난 2007년 6월경에 1000억 원대 자산을 가진 한 60대 갑부가 소위 '데릴사위' 후보를 공개모집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었습니다.

당시 이 60대 갑부는 ‘연봉 6000만 원 정도의 전문직에 본인 재산만 20여억 원, 외국 석사학위를 갖고 있는 38세 딸’에 대한 결혼상대인 사윗감의 조건을  제법 까다롭게 내세웠습니다. 사위의 조건은 ‘딸에 버금가는 학력을 소지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자립적인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는, 신체  건강하고 올바른 가정에서 자란 기독교인’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장남보다는 부모 봉양이나 가계를 이어갈 부담이 덜한 '차남이나 막내'라는 조건도 붙었습니다. 거의 완벽한 남자의 조건인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과 돈의 노예냐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단 몇일만에 약 270명의 엘리트 남성들이 후보로 지원해 조기에 마감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이후 결혼정보회사는 바로 신랑감을 구하지 못했지만, 몇달 후 회원이 아닌 남자를 소개시켜주어 양가 상견례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1997년 9월경 이 회사는 150억대 47세 여성 사업가가 배우자를 찾는다는 이벤트 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즘같이 언론이나 사람들 모두가 두 눈을 켜고 지켜보는 세상에, 자칫 잘못하면 사업의 존폐는 물론 형사상 범죄가 될 수 있는 공개 이벤트를 거짓으로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런 이벤트의 당사자들이 제대로 결혼까지 성사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어 의문은 남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한 결혼을 꿈꾸는 남자와 여자의 꿈이 돈과 욕심 앞에 나약해지는 세상이다

돈을 내세운 결혼정보회사의 상술은 아닌가?

이 같은 '데릴사위 공모'의 전례나 이번 골드미스의 공개구혼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은 듯 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인륜지대사로 불리는 결혼이 그 숭고한 의미를 잃어버린 채 '돈이나 조건'을 앞세우며 상업적으로 변질되어 간다는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기 때문입니다.

또 '사랑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결혼을 '로또'처럼 신분상승이나 인생역전의 발판으로 여기는 세태에도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이  공모는 일각에서 결혼정보회사 측의 의도된 이벤트나 고품격 회원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한 일종의 ‘광고’나 과도한 마케팅 상술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실제 모 결혼정보회사에 근무했던 지인은 이번 회사가 다소 심하게 마케팅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결혼정보회사가 당사자를 만나서 사전에 마케팅적인 논의를 하는 방식일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결혼정보회사에서는 하지 않는 과도한 상술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 한 대목입니다.  이 결혼정보회사는 이 같이 돈을 내세운 공개구혼 이벤트를 여러차례 실시한 바 있어 상술 마케팅이 아니냐는 논란은 가속화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상품화한 결혼정보회사의 이야기도 세간에 떠돌고 있습니다. 이들 결혼정보회사들이 회원을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하는 소위 '심사기준표'에는 회원의 직업과 학벌, 외모와 재산 등이 기본적으로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남성의 경우 직업(30점) 학벌(20점) 집안배경(20점) 재산(20점) 외모(10점), 여성의 경우 외모(30점) 집안배경(20점) 직업(20점) 학벌(20점) 재산(10점) 식입니다. 놀라운 것은 회원 개인에 대한 신상뿐만 아니라 집안과 부모의 이력까지 평가등급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결혼상품으로 등급 판매되는 듯 하여 씁쓸해집니다.

결혼의 소중함은 사라지고 돈과 조건, 그리고 결혼정보회사의 광고성 이벤트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돈이냐, 사랑이냐'를 주제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신파극이 아니더라도 항상 우리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듯 합니다. 그리고 사랑없는 결혼이 과연 행복할까, 재산이 결혼에서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결혼정보회사의 돈을 부각시킨 마케팅 상술은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등과 같이 여러가지 결혼과 세태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져보게 되는 이슈인 듯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참고] 벨기에 70대 갑부의 '한국 신부' 공개모집 결과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배우자감을 공개모집한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지난 2001년 다른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70대 벨기에 갑부의 신부를 공모한 일이었습니다. 연간 수천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벨기에 노인은 "절제된 동양적 신비감을 지닌 한국 여성의 자태에 매료됐다"며 공개구혼을 요청해 온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가 내세운 조건은 '40세 이하의 매력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는 여성이어야 한다. 2세를 출산할 강한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하며 영어와 불어 스페인어 등 한 가지 언어에 능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남성은 자신이 내세운 까다로운 조건에 걸맞게 '맞선 한 번에 500만 원을 지불하고 3개월 이상 교제시 별도의 사례비를 결혼회사 측에 지급하겠다'는 약속까지 내걸었었다고합니다. 

그런데, 당시 이 남성의 공개구혼에는 실제로 20~40대의 전문직 여성들을 포함, 1000여 명이 지원해 성황을 이뤘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면부지의 70대 외국인 갑부의 신부감을 자처하고 나서는 이들 여성들에게는 ‘결혼을 인생역전이나 신분상승의 기회로 이용하려 한다’는 거센 비난도 뒤따랐습니다. 결국 이 벨기에 갑부의 신부 공모는 적합한 상대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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