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7.19 여자친구가 맞선본다 했다, 어떡해야 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70)
  2. 2009.05.31 노무현과 원칙과 가치 지킨 유시민의 눈물 생각해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56)
  3. 2009.05.30 노무현 노제 현장의 사람들과 역사를 사진에 담아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11)
  4. 2009.05.29 노무현 영결식과 노제 '민심은 천심이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28)


남자와 여자의 연애나 결혼에 있어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친구의 약 20년전 이야기입니다. A군은 군복무를 제대한 후 대학 3학년에 복학해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추적추적 비가 내렸습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A군은 머리를 식히고 싶었습니다. 잡자기 어디론가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서울역으로 가서 야간 기차를 탔습니다. 좌석은 매진되어 입석표였습니다. 빈좌석에 무작정 앉았습니다. 기차 창밖으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A군이 앉아있던 좌석의 곁을 한 여자가 잠시 주춤하다가 지나갔습니다. A군은 좌석의 주인이 나타난 것은 아닌가 가슴이 조마조마 했습니다.

당돌한 직장 여자와 대학 복학생, 기차에서 만나다

조금 후 지나갔던 한 여자가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창밖을 보고있던 A군에게 여자가 말했습니다.
"여기 자리 있어요?"  
"모...르겠는데요."

A군은 앉았던 자리 옆의 책가방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놨습니다. 자리에 앉은 여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몇학년?"
"삼~ 삼학년"

"몇학번?
"팔육 학번"

"나랑 같은 학번이네. 난 B양이야. 우리 친구하자. 넌 이름이 뭐니?"

당돌한 B양이었습니다. A군은 B양이 당돌하고 신기했습니다. 처음에 무뚝뚝하던 A군은 B양의 나긋나긋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A군과 B군의 만남이 시작됐습니다. 둘 다 기차 입석표를 샀는데 좌석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A군과 B양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B양은 기차가 대전역 부근에 도착하자 우표 5개를 핸드백에서 꺼냈습니다.
"난 여기서 이제 내려야 해. 넌 의무적으로 나에게 우표 5개 만큼 편지를 해야 해."
"알았어. 잘 가"



서울의 A군과 대전의 B양은 그 후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A군은 학보가 나오면 편지를 함께 넣어 보냈습니다. B양은 자주 편지를 학교로 보냈습니다. 직장인이었던 B양은 주말에는 A군이 공부하던 대학 도서관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B양은 식사를 사주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A군의 B양의 호의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가난한 자신이 B양에게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A군은 4학년이 되었습니다. B양은 서울에 올 때 마다 A군이 공부하던 도서관에 나타났습니다. B양은 A군에게 늘 용기를 주는 말을 했습니다. A군은 B양의 마음이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취업 시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A군이 노리던 정부투자기관 입사에 실패했습니다. A군은 입사를 하면 B양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A군은 취업에 실패하고 다른 기관에 도전해야 했습니다. A군은 B양에게 미안했습니다. B양은 A군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A군은 대학 졸업 후에도 백수였습니다. 경쟁이 치열하던 정부투자기관 시험에 낙방 후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실시된 시험을 봤습니다. 시험이 끝나자 B양이 대전에 잠시 와달라고 했습니다. B양은 직장을 그만 두고 유치원을 개업하기로 했는데 개업 준비를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던 A군은 B양의 유치원 개업 준비를 돕기로 했습니다.

가난한 대학생과 부잣집 딸의 슬픈 이야기의 결말은?

그런데 유치원 개업 준비를 돕기 위해 A군이 가보니 B양과 그녀의 남동생 그리고 친척 동생들이 와 있었습니다. A군은 쑥스러웠지만 열심히 일을 거들었습니다. 저녁에는 B양의 남동생과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B양과 저녁에 데이트를 했습니다. B양은 말을 꺼냈습니다.
"나 내일 선본다."
"그래."

B양이 선본다는 말에 A군은 잠시 당황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아직 백수인지라 B양을 위해 뭐라 해줄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B양은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B양과 남동생에게 별도로 아파트를 얻어주었습니다. 그 날 밤 A군은 B양의 남동생의 방에서 함께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A군은 대전역으로 갔습니다. A군이 떠나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역 앞에서 B양은 다시 말했습니다.
"여기 근처에서 선보기로 되어 있어."
"그렇구나. 좋은 사람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A군과 B양은 역에서 헤어졌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A군은 자신의 초라한 처지가 슬펐습니다. 그래서 B양의 맞선을 단념시키지도 못했습니다. A군은 서울에 올라 와 모 대기업 입사시험을 봤습니다. 대기업은 가기싫었지만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그 후 대기업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녀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려고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군에게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그 우편물은 B양의 결혼식 청첩장이었습니다. A군은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B양은 그 당시 선본 남자와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B양이 선본다고 했을때 붙잡지 못한 자신이 후회되었습니다. 아직 백수인 자신의 입장에서 B양에게는 불행할 수도 있어 B양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직하면 B양을 다시 만날 것이라 다짐했었던 것입니다.

A군은 곧바로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입사원 연수 마지막 날이 B양의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결혼식 장소가 수원이었습니다. A군의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A군은 퇴소식 날 고민했습니다. A군의 연수원 버스는 수원역에 내려주었습니다. B양의 결혼식을 곧 앞두고 있었습니다. A군은 결국 B양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운명은 그렇게 A군과 B양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A군과 B양은 왜 결혼할 수 없었을까?
남자는 직장을 먼저 구해 여자친구를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선보다는 것이 단지 미팅 정도로만 다소 가볍게 잘못 생각했습니다.
여자는 맞선본다는 고백이 자신에게 프로포즈를 해달라는 마지막 요청이었을 수 있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남자는 자존심 상 초라한 자신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맞선본다고 했을 때 붙잡았어야 했지만 남자는 여자의 행복을 위해 그러지 못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힘으로 가정을 일구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자존심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적극적이고 당돌한 모습에 다소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자는 한 남자와의 결혼이 사랑이 먼저일 것이지만 결국 현실 앞에 나약해질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바라보는 맞선의 차이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의 차이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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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변치않고 '정치적 가치'를 공유하며 노무현과의 의리를 끝까지 지킨 사나이, 유시민. 저는 유시민과 일면식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올곧은 정신과 의리에 대해 탄복하곤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위기에 처하고 어려울 때 언제나 함께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곧바로 달려와 펑펑 눈물을 쏟던 유시민을 생각하니 대학시절의 기억이 뚜렷하게 떠오릅니다.

제가 유시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23년전 대학 입학 이후 였습니다. 대학 신입생이었던 저는 도서관에 책을 빌리기 위해 갔습니다. 여러 책들을 구경하다가 어떤 책 속에 꽂혀있던 수십 장의 종이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였습니다.

그리고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단번에 읽었습니다. 20대 청년이 이토록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동받았고 당시 군사독재의 진상을 알게 되었던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는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금기시 되었던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몰래 그 글을 읽어야 했습니다. 정당성과 도덕성이 없던 군사정권은 정권에 불리하면 무조건 금지시켰던 시기였습니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중에서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형량의 과중함을 호소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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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7년이 지난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배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소년이 포악한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지난 7년간 거쳐온 삶의 여정은 결코 특수한 예외가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학생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경험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시대의 모든 양심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에 비추어, 정통성도 효율성도 갖지 못한 군사 독재 정권에 저항하여 민주 제도의 회복을 요구하는 학생 운동이야말로 가위눌린 민중의 혼을 흔들어 깨우는 새벽 종소리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오늘은 군사 독재에 맞서 용감하게 투쟁한 위대한 광주 민중 항쟁의 횃불이 마지막으로 타올랐던 날이며, 벗이요 동지인 고 김태훈 열사가 아크로폴리스의 잿빛 계단을 순결한 피로 적신 채 꽃잎처럼 떨어져 간 바로 그날이며, 번뇌에 허덕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이 성스러운 날에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에 몸바치고 가신 숱한 넋들을 기리면서 작으나마 정성들여 적은 이 글이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을 기원해 봅니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것 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985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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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이유서는 서울대 프락치사건에서 유시민은 주동자로 몰려 구속되면서 쓴 글이었습니다. 그 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네크라소프의 시구를 인용한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얼마 전 유시민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봉하마을을 찾아 조문하면서 서럽게 울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 노무현과 유시민은 어쩌면 닮아 있습니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원칙도 소신도 없이 철새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따라 움직일 때 노무현과 유시민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국민과 민주주의 편에서 원칙과 소신을 지켰던 것입니다.

유시민에 대한 기억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국회에 의한 탄핵 시도에 오열하고 울분을 토하던 그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썪어빠진 환경에서 정치를 하기에는 너무 올곧은 사람이었던 노무현과 '원칙과 소신의 지향점'을 지켜냈던 유시민이었습니다. 수많은 정적들의 비난과 편견들에 맞서싸우며  그 고난을 받아내고, 노무현 후보가 대한민국 대통령을 만들어냈던 그였기에 탄핵시 울분은 그 누구보다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시민의 눈물은 진정성의 산물이었습니다.

▲지난 2003년 3월 국회에서 탄핵 당시 오열하던 유시민 의원의 오열 모습

정치적 원칙과 소신 보다는 배신과 야합이 난무하던 우리나라의 후진적 정치무대에서 유시민과 같은 정치인이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노무현의 정치적 꿈과 이상은 아직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에서 앞서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노무현의 삶과 죽음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한단계 발전하는데 있어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정치적 자산과 가치를 공유하던 유시민이 있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시민은 단심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민주주의 가치와 원칙을 공유한 인물이다

유시민을 생각하면서 문득 백원우 의원이 오버랩되어 지나갔습니다.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백원우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 내외의 헌화가 시작되자 '사죄하십시오'라고 외치다 경호원들에게 끌려간 일이 있었습니다. 경호원에게 입이 틀어막힌 백원우 의원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입이 틀여막힌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백원우 의원이 서울역 분향소에서 쓴 글이 있어 소개해 봅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죄인의 심정으로 지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지켜드리지 못한 죄인입니다.

그래서 목놓아 소리내어 울고 싶어도 울지못하는 죄인입니다.

그저 줄서서 조문하는 분들에게 물한잔 대접하고 싶어도 어찌하지 못하는 상주일뿐입니다.

마음속 눈물이 강물이 되어 바다에 이르고 있지만 소리내어 울지 못하는 머리속은 하얀 백지장이 되어 버리고 혀가 꼬이고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저는 그저 죄인입니다.

조문오시는 분들에게 하염없이 죄송하고 너무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2009년 5월 26일 서울역에서 국회의원 백원우

유시민의 눈물을 생각하면서 지난 1980년대부터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이르기까지 많은 상념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순간은 속일 수 있어도 수십년에 걸쳐 속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거짓말과 위선에 속아 왔습니다. 이제는 진정으로 국민과 민주주의를 위해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았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들이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비열하고 야비한 정치인은 걸러내고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은 지켜내는 감시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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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영영 이 세상의 육신이 아닙니다. 영혼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제(30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노제는 수십만명 이상의 사상 최대 인파가 몰려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습니다. 세계 역사상 이토록 자발적으로 모여 애도하는, 장엄한 광경은 처음일 듯 합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도 몇시간 동안을 기다리며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고인이 이 땅에서 못이룬 꿈을 하늘나라에서는 이룰 것을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고인의 꿈이었던 '사람 사는 세상'을 받들어 이 땅에서 이룰 것을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었던 노제의 현장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에 담아 추모하며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저 마다 함께 하는 장면들입니다.

노제가 시작되지 몇시간 전부터 서울광장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도착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노란 모자를 쓰고 햇살을 막으면서 상당히 무더운 날씨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고인의 뜻을 기리고 영면하기를 기원하는 만장이 하나 둘씩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제를 기다르는 동안 사람들이 노란 풍선을 하늘 높이 날려 보내고 있습니다.

노제가 열리는 장소를 좀 더 가깝게 보기 위해 사람들이 일부 구조물 위에도 올라가 있습니다.

드디어 노제의 시작을 알리는 크레인이 하늘로 올라가고 김명곤 전 장관이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여러 준비나 사진 촬영을 위해 별도 차량도 눈에 띄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올라가 있습니다. 차량 위 어떤 사람이 들고있는 '오늘은 철야입니다'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시민들이 준비한 추모 차량인 듯 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차 앞유리에는 '우리는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방송 카메라가 하늘 높이 높게 달려있는데 MBC 방송 카메라였습니다.

시청 지하철역 부근에도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노제가 끝나고 지나가는 장면을 보기위해 남대문 서울역 방향에도 사람들 인파가 모여 있었습니다.

태극기를 노란 풍선이 달린 깃대와 함께 들고 지나가는 사람도 보입니다.

외국인도 이 날은 많이 참석해 역사적인 장면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가로수에는 줄로 연결해 수많은 노란 풍선들이 계속 달려 있었습니다. 노란색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징색이었습니다.

길거리 인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노제가 끝나고 운구차가 지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멀리 보이는 건물 계단이나 담벼락 위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뒤에 보이는 건물에는 사람들이 각 계단의 층 마다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한 건물의 옥상에는 노란 펼침막을 걸치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운구차가 지나갈 예정인 도로 주변에도 사람들이 꽉 차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도 함께 했습니다. '파견법은 노예법, 즉각 폐기하라'

자동차 뒷 유리에 붙어있는 문구입니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노란 비행기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날리곤 했습니다.

만장과 함께 운구차가 지나가는 듯 합니다. 너무 사람들이 많아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삼성 본관 앞 부근의 빌딩 계단에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날 사람들 관심이 노제에 쏠린 사이 삼성은 대법원에 의해 이재용 3세 시대를 공식 승인받은 날과 같았습니다.

남대문 시장 부근의 숭례문 복원 현장을 만장과 사람들이 지나고 있습니다.

어떤 만장에는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여러 차도가 모이고 넓어지는 숭례문 도로 전체가 사람들로 빽빽하게 들어 서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운구차가 매우 느리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숭례문 복원 현장을 지나가는 길목에 사람들이 운구차의 행렬을 사진에 담고 있습니다.

도로 뒷편의 작은 길에 YTN 중계 차량이 서있고 차량 위에는 여기자가 서 있었습니다.

서울역 부근인데 고가도로 위에도 사람들이 몰려 있습니다. 위에도 '독재 타도'를 위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앞을 운구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만장의 행렬이 집중해 지나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죽봉을 반대해 그 대신 PVC 파이프로 만들었습니다.

서울 역 앞의 KBS 중계석입니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불공정 방송을 심하게 질타했습니다. 이병순 사장과 경영진이 문제인데 잘못된 경영진 때문에 말단 기자들과 아나운서가 고초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운구차 뒤에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함께 뒤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 가는 날, 함께 하신 분들이나 TV를 통해 애도를 표하신 분들이나,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접한 모든 분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듯 합니다. 고인이 남긴 '사람 사는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고인의 뜻과 가치를 잊지말고 생활 속에서 각자 실천하면서 열심히 살아야 겠습니다.

역사 속에 남아버린 서울광장에 모인 사람들이지만 가슴 속에 비석 하나씩 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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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가 서울에서 열립니다.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날입니다. 이미 고인의 가신 길에 하늘이 울고 땅도 울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슬퍼하고 노여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가도 정승이 죽으면 문상 안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추모의 행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민심이고 천심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대목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고인의 삶과 진정성이 온 나라 국민들의 가슴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적시게 한 것입니다.

'민심이 천심'이란 것을 보여주는 추모의 대장정

어떤 못난 왕정승은 자신이 죽어도 국민들이 슬퍼해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일지 모르지만 고귀한 죽음 앞에서는 잊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깁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는 이름을 남기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 하늘도 땅도 울었습니다. 장대비 속에서도 추모의 대장정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민주주의2.0의 성지가 되어버린 봉하마을과 시작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은 '민주주의2.0'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노무현은 민주주의1.0을 이루어냈지만 진정한 민주주의 완성인 민주주의2.0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좌절했습니다. 그 좌절은 우리네 인간들의 탐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물질 만능주의 앞에 한없이 나약했던 우리들 모두의 허망함이었습니다. 물질 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사람'이라는 가치였습니다. 노무현의 서거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를 되찾게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곧 민주주의2.0이자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이제는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루어가야 할 노무현의 유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가 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운구 행렬에 참여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만든 대서사시 '장엄한 추모 행렬'

마지막 가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기 위해 봉하마을에 모인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을 앞세운 운구가 시작되자 통곡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노란 종이비행기를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그것으로도 모자란 사람들은 운구차를 뒤따라 차량 행렬의 장관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구상의 어떤 인물이 이토록 장엄한 장례식을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고 있는 대서사시입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행해 끝없이 이어졌던 봉하마을 추모 행렬에서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봉하마을로, 그리고 서울 광장으로 모여들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네 마음 속에 잠자던 민주주의와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열망을 일깨워 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봉하마을의 신 새벽. 애도객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즐겨 불렀던 '상록수' '타는 목마름으로' '아침 이슬' '작은 연인들'을 목놓아 불렀습니다. 발인제가 시작되자 봉하마을은 마지막 떠나는 님을 그리면서 수만명이 함께 통곡하는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살아오는 저 푸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나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떨리는 노~여움이. 신 새벽에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타는 목마음으로 2절 중에서 -"

서울 경복궁에서 시청 광장의 노제로 이어지는 슬픈 진혼곡

이번 경복궁 영결식과 서울광장 '노제'의 총감독은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입니다. 영결식의 컨셉은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에 한 말입니다. 김명곤 님은 "고인은 언제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몸을 바쳤고, 싸웠고, 분노했고, 도전하며 살아오셨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비전이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비판과 비난과 조롱과 저주에도 꿋꿋이 버터 오셨습니다. '사람'에 대한 겸손한 존중심과 높은 윤리관과 엄격한 도덕율이 있었기에, 그 드높은 이상에 상처를 입힌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부엉이바위 아래 몸을 던지신 겁니다."라 그 취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서울 경복궁의 영결식에 이어 서울시청 광장의 노제는 지금까지 추모 행렬 보다 더 많은 최대의 인파가 될 것입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시청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습니다. 주부들도 대학생들도 마지막 가는 길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은 회사에 휴가를 내고 참석하거나 외근을 해서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누가 오라고 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 역사상 최대의 추모 인파가 될 것입니다. 서울 시청 광장에서 울려퍼질 슬픈 진혼곡 '상록수'는 국민들의 가슴을 비장감으로 적실 것입니다. 상록수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불렀던 양희은이 다시 부를 예정입니다.

사람들이 밤을 새워 목놓아 울고 신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고 서울 광장에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민심은 천심'이라는 교훈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광장으로 나아갑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추가> 시청 앞 광장에서 거행된 노제에 다녀왔습니다.
경찰 발표 18만명(숫자가 영 저질?)이라고 하는데 실제 100만명은 되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있어 지난 월드컵 축구 당시(경찰발표 135만명 발표와 너무 차이나 나죠) 보다 밀도가 훨씬 높았고 광화문에서 서울광장 그리고 남대문에 이르기까지 꽉차 있었습니다. 경찰 발표는 축소하기 급급한 것 같습니다. 온 국민이 보고 있는데 고인의 가는 길 마저 거짓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딱하기 그지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손녀가 할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에 나서고 있다.
▲고인의 운구 차량 행렬과 연도에 늘어선 수많은 사람들

아래는 양희은이 부른 '상록수'입니다.

상록수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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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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