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28 순결한 배꽃과 왕의 남자(?) 이조년의 이화 by 진리 탐구 탐진강 (28)
  2. 2009.04.14 하얀 싸리꽃 여심과 사월의 단정한 사랑 by 진리 탐구 탐진강 (7)


주말농장으로 가는 길은 즐거움이 많습니다. 예전에 과수원이 즐비하던 곳이라서 지금도 과수원의 흔적들이 자주 발견됩니다. 특히 배나무밭이 많습니다. 지난 주 배나무밭에는 배꽃이 한창 순백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봄비가 온 후라 배꽃은 거의 지고 없을 듯 합니다. 주말농장 가는 길의 배꽃을 사진에 담아보니 배꽃에 얽힌 사연이 담긴 시가 생각납니다.

우리들은 대개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일품인 '과일의 으뜸' 배를 상상할 수 있지만, 실제 배꽃을 바라보면 매우 하얗고 순결한 그 아름다움에 더욱 감탄할 것입니다. 배꽃은 떠나간 임을 그리워하는 시에 자주 등장할 만큼, 봄바람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곤 합니다. 꽃말은 온화한 애정, 그리움 등 입니다.

배꽃은 한자로는 이화(利花)라고 부르는데 이조년의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로 유명합니다. 보통은 배꽃은 그리운 여성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배꽃은 흡사 순결한 여성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화에 월백하고' 시조를 생각하면 '떠나보낸 여인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은 남자의 마음이 아닐까 착각하게 됩니다. 실제는 어떨까요?

이화하면 또 떠오르는 것중 하나가 이화학당입니다. 이화학당은 감리교계 선교사 스크랜튼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고등교육기관입니다. 이화(梨花)라는 교명을 사용하게 된 것은 고종황제가 "학생들이 배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뜻"을 담아 하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순백의 배꽃 이미지가 있는 이화라는 학교명은 서울의 많은 남학생들의 마음에 고결하고 아름다운 여학교의 이미지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이화여대는 여화여고와 어떤 관계일까? 두 학교는 1886년에 설립된 이화학당에서 갈라져 나온 일종의 자매학교입니다.

[이화학당 초기의 모습 : 자료 사진]


이화에 월백하고
- 이조년 -

 이화(利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시조의 뜻풀이]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휘영청 달이 밝으니, 배꽃은 더욱 희고 달빛은 더 교교하다.
그것도 밤은 깊어 자정 무렵 천지가 고요할 시간, 그 고요를 깨뜨리듯이 소쩍새가 우는데,
물오르는 배꽃가지의 꿈틀거림 같은 마음을 소쩍새가 어이 알 수 있으랴마는,
이렇게 정이 많은 것도 내 마음의 병이라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고려 말의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이조년(李兆年·1269~1343)이 남긴 이 시조는, 언뜻 보면 남녀간 사랑의 정을 읊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남녀간의 사랑의 정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임금을 섬기는 충신의 지극한 마음이 담긴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조년은 충렬왕 12년에 문과에 급제, 왕을 모시고 원나라에 다녀오기도 했으며, 충선왕 모함 사건에 연루돼 무고하게 유배갔다가 풀려났습니다. 1340년 폐위되었던 충혜왕이 복위하자, 대제학이 되어 성산군에 봉해졌고, 그 후 충혜왕의 황음(荒淫 함부로 음탕한 짓을 함)을 수차례 간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내어놓고 물러났습니다.

이조년은 충혜왕이 간언을 수용하지 않아 벼슬자리를 물러났지만, 그래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성으로 밤잠 설치며 고결한 정신을 배꽃에 담아 걱정한 것이 이 시조라는 것입니다. 충혜왕은 정사를 돌보지 않다가 결국 원나라로 귀양 가던 중 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왜 왕을 그리워 하며 시조를 짓나? 왕의 남자인가?

우리가 선입견없이 시조를 읽어보는 것과 실제 이조년의 시조 의미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조년은 신하로서 왕을 생각하며 시조를 지었던 것입니다. 한편으로, 이조년은 음탕한 짓을 일삼던 왕을 무슨 마음으로 이런 시조를 지어야만 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외국인들은 이러한 시조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왜 왕을 그리워하는 시를 짓느냐며. 이조년은 왕의 남자일까요?

차라리 그리운 여인을 생각하며 시조를 지었다면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나 그리움은 당연한 인간의 본성인데 시조 마저 '충신의 절개'를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 정치적인 아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요. 그리고 시대상을 반영한 해석일 수 있겠지만, 시조의 해석을 후대에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그냥 남녀간의 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시라고 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배꽃 날리는 날

- 시인 김정호 -


시방 온 시상*이 난리제

왜 그렇게 천지가

바람난 옆집 여편네 속살처럼 희다냐

희다 못해 실핏줄이 다 보인다냐

아니여! 저건, 필경

철쭉이 온산에 불타오르도록

쑥떡 하나 먹지 못하고

힘든 보리 고개를 넘겨 그런 거여

그래, 푸른 보리 이파리만 보아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꽃잎 오사게* 피었다가

비가 내리면 힘없이 지는 거여

내 가슴

새까맣게 타는 줄 모르고 


봄비에 배꽃 하염없이 지는 날

오일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혼자 말처럼 내뱉는 울 엄니가

참 시인이다


* 시상 : “세상”의 전라도 사투리

* 오사게 : “아주 많다”의 전라도 사투리



배꽃은 이쯤되면 '바람난 옆집 여편네의 속살처럼 흰' 꽃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희다 못해 실핏줄까지 보이는' 하이얀 꽃, 배꽃입니다. 배꽃은 이토록 다양한 시를 닮은 여인의 향기입니다. 순결한 순백의 배꽃은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하가 왕을 그리워하는 충신의 절개가 담겨 있습니다. 어느 것이 배꽃의 진실일까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난 주말에 제천에 다녀오면서 발견한 하이얀 꽃이 참으로 청순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노래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점심 식사하러 지나가는 길가에 햇살을 이고 꽃이 활짝 피었는데 화려하지는 않지만 청초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무슨 꽃인지 처음에는 몰랐는데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 분이 싸리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나중에 싸리꽃에 대해 찾아보니 조팝나무 꽃이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싸리꽃의 꽃말이 '단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청아하고 아름다운 첫사랑의 향기처럼 느껴지면서도 특이하고 이채롭습니다.

봄꽃하면 진달래, 개나리, 벚꽃, 철쭉, 산수유 등 흔히 알려진 꽃들을 생각하게 되지만, 우리 주변에서 청초하고 단정하게 피어있는 싸리꽃과 같은 봄꽃에도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싸리꽃은 학명상 조팝나무꽃이라고 하는데 조팝나무에 대해 소개해 봅니다.

조팝나무란 이른봄 그 꽃이 좁쌀을 튀겨놓은 듯하여 조밥나무라고 불렀고, 이것이 강하게 발음되어 조팝나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일명 싸리꽃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따사로운 봄볕이 비치는 산길 가장자리나, 논뚝에 피어나는 조팝나무의 흰 꽃들은 백설보다 더 희고 눈부시게 피어납니다. 유명한 봄꽃나무들이 많이 있지만, 이 조팝나무처럼 소박하고 순결한 아름다움을 지닌 나무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조팝나무는 봄에 흰눈이 소복히 쌓인 듯이 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신비스러움을 자아내는 나무입니다.

싸리꽃이 길가의 담벼락에 기대어 하얀 꽃잎들을 눈꽃갗은 환한 미소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꽃에 이끌린 처제가 다가가 싸리꽃 사진을 찍었습니다. 첫째 딸아이도 싸리꽃이 신비하고 예쁜지 한참동안 다소곳이 쳐다보고 있습니다.


싸리꽃, 또는 조팝나무꽃은 '슬픈' 사랑의 시(詩)에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허경운 시인의 '싸리꽃'이나 도종환 시인의 '수선화와 조팝나무의 사랑'은 꽃말처럼 단정한 사랑이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이별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사월에는 바쁜 일상과 찌든 도시의 콘크리트 숲을 벗어나 모처럼 시를 노래하는 풍경 속으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싸리꽃

 - 시인 허경운 -

그렁그렁한 눈으로
차마
말 못한 가슴
돌아서 눈씻고 보니 그대는 없네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닌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고 기쁨이던
그대는 떠났네

많은 날을 그대 생각에
그리고 그대 내 안에 살았음을
그대여 아시는가

손이라도 잡아볼 걸
언제쯤 만날수 있냐고 물어나 볼걸

눈물의 바다 위를
노저어 가다보면
아름다운 섬
그곳에서 그대 만날 수 있으려나

추억의 숲속 헤매다보면
그대 오두막집 창가에서
날 기다려 주려나

그대를 닮은 앞산을
눈이 아프도록 바라보니
찬란한 햇살 아래
산기슭마다
그리움이 하얗게 일어나네



수선화와 조팝나무의사랑

    - 시인 도종환 - 

우리사랑 이세상에선 이루어질수 없어

물가의 수선화처럼 너 적막하게 꽃피어 있을때

나또한 그 옆에 창백한 조팝나무처럼 꼼짝못하고 서서

제가 내린 제숙명에 뿌리에 몸이 묵인채

한평생 바라보다만 갈것 같은데

 

오늘은 바람이 이렇게 불어

니허리에 기대어 니꽃잎을 만지다가도 아프고

네살에 스쳤던 내살을 만지다가도 아프다.

 

네 잎새 하나씩 찟어 내있는 곳으로 던져야

내게 올수 있고

가지부러지는 아픔을 견뎌야

네게 갈수 있다 해도

 

사랑은 아픔이라고

사랑하는것은 아픔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너를 사랑할때마다 깨닫고 또 깨달아도

 

그보다 더 아픈것은

우리사랑 이세상에선 이루어질수 없는것

내마음의 십분의 일

내몸의 백분의 일도 네게 주지 못한것 같은데

너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하다 돌아서야 하는것

 

바람은 불어 나 노을속에 이렇게 서서 나부끼고

바람은 불어 나 물살에 얼굴 묻고

너 돌아서 있어야 하는 것.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