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09 땡칠이 황구의 사진 본능 '심오한 개 시리즈 최후판(?)' by 진리 탐구 탐진강 (46)
  2. 2009.04.15 오픈카의 원조 삼발이차의 세바퀴 질주를 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8)


시골 집에는 똥개 한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인적이 드문 산골에서 똥개는 집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방문하거나 지나가는 차량이 있으면 카랑카랑하게 짖어대는 개. 똥개라지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셈입니다. 시골 마을에서 개는 사람과 공존하는 가족과 같은 존재입니다.

예전부터 시골집에서는 항상 개를 키웠습니다. 백구, 황구 등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곤 했습니다. 지금은 황구 한 마리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황구는 대문도 담벼락도 없는 외딴 집에서 개는 가족의 안전도 지켜주는 경호원 역할도 해줍니다. 인적이 드문 산골에서 산짐승이나 도둑으로부터 집안을 보호하는 책임도 도맡아 하는 것입니다.

황구는 여름휴가를 맞이 해 사람들이 붐비자 반가운 모양입니다. 이미 휴가차 방문시 우리들을 몇번 봤던 터라 황구는 짖지는 않았습니다. 황구도 가족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키웠던 백구는 거의 오리(약 2Km) 밖에서도 사람을 알아보고 뛰어 올 정도였습니다. 당시 백구는 목줄도 없어 마음껏 산과 들을 뛰놀았는데 지금의 황구는 묶여있어 아쉽기도 합니다.

시골집 앞의 풍경입니다. 대문도 울타리도 없습니다. 지금도 시골 마을은 대문이나 울타리가 없는 집이 많습니다. 오른쪽에 황구가 사는 개집이 있습니다.

황구가 앞발 펴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원하게 몸풀기를 한 황구가 사람이 다가오자 반가워 합니다.

황구가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합니다. 유행하던 '심오한 개시리즈'로 치자면 '개 메롱' 정도의 제목일 듯 합니다. 그렇지만 일어서서 앞발을 들고 자세를 취한 것이니 일반 '개 메롱' 보다는 높은 '개 고난도 메롱'이라 할 만 합니다. 한편으로 땡칠이가 된 황구의 모습입니다.

황구가 카메라를 향해 앞 발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황구가 일어서서 앞 발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더 이상 '심오한 개 시리즈는 없다'라고 선언하는 듯 합니다. 자신의 머리를 가린 황구의 모습이 마치 부끄러워 얼굴 가린 사람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그래서 카메라 촬영을 포기했습니다. {추가} 댓글에 보니 '개인촌'이란 표현을 제안했는데 얼핏 괜찮은 듯 합니다.(^^)

시골집의 또 다른 식구인 황구의 모습은 언제나 아이들의 친구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황구와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순한 황구는 개구쟁이 아이들의 등쌀에도 항상 즐겁게 놀아줍니다. 어린 시절에는 백구나 황구는 어른이 되어서도 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곤 합니다.

이제는, 보너스로 '심오한 개 시리즈'의 주요 몇 장면을 소개합니다. 이미 본 사진이겠지만 모르는 분을 위해 서비스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개에 대한 풍자와 해학이 담긴 것들입니다.
개낑겨
 개헌터
 개판

 개굽신

 개그네

 개념상실

 개부끄

 개졸려
 개이불
 개홍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개탈모

개티즌

개수녀

개코스

 개바라기

 개사자

개타짜

사용자 삽입 이미지개극상

사용자 삽입 이미지개돼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개이클

 개랠리

 개간지

 개장사

 개팔자

 개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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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주말에 자유로를 드라이브하고 있는데 낯선 오픈카 한 대가 앞질러 갔습니다. 어린 시절에 목격하던 앞바퀴 하나, 뒷바퀴 두개의 삼발이차였습니다. 한마디로 '세바퀴'인 셈입니다. 겉 모습은 보잘 것 없는 삼발이차가 시속 70킬로를 넘는 속도로 달렸습니다.

삼발이차를 다시 따라잡았더니 어떤 남자 분이 헬맷도 쓰지않고 다소 위험한 세바퀴 질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고급 오토바이의 엔진으로 개조한 차인지 모르겠지만, 네발 자동차 사이를 당당하고 유유히 달리는 삼발이차는 옛 추억을 되살리게 했습니다. 삼발이차는 삼륜차인데 과거에는 일명 '딸딸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시골에서는 차가 귀하던 지난 1970년대 시절에는 비포장 신작로에 삼발이 트럭 한 대라도 흙먼지를 날리며 지나가면 손을 흔들어 히치하이킹하고 했습니다. 지나가는 자동차를 공짜로 얻어타는 히치하이킹(hitchhiking)은 시골 아이들의 재미 중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마음씨 좋은 운전사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이들을 태워주는 것을 당연시 했습니다.

버스도 없던 시골 산골마을에서 약 10리(4Km) 정도의 거리는 걸어다니던 아이들에게 지나가는 트럭의 뒷 칸에 올라 타 오픈카처럼 달리는 기분은 짜릿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까만 고무신을 신고 어깨에 책보를 매고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풍경은 정겹기만 했습니다.
 


[세바퀴의 삼발이차가 네발 자동차 사이에서 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모습]

당시에는 양말은 거의 못신고 다니다보니 뛰다가 고무신이 미끄러지고 벗겨져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고무신을 아끼기 위해 벗어서 들고 맨발로 걸어다니기도 했습니다. 운동화를 신는 것이 꿈인 시절이었습니다. 트럭 아저씨는 그런 아이들을 위해 아무런 사례도 없이 태워주는 넉넉한 마음이 넘치는, 가난 속에서도 인정미가 넘쳤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직도 일부 시골 마을의 도로에서는 어르신들이나 아이들을 태워주는 경겨운 풍경은 남아 있습니다. 

까만 고무신과 신작로의 트럭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입니다. 요즘의 도회지 아이들도 시골에 가서 경운기 뒷칸에 타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지난해 여름에 시골에 갔을 때 아이들이 경운기를 탄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늘상 타는 자동차이기 때문인지 할아버지가 태워주는 경운기가 더 재미있다고 합니다.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은 덜커덩 거리며 달리는 경운기가 제 맛인가 봅니다. 

[1970년대 삼발이차에 탄 사람들과 현대의 경운기 타는 아이들]

삼발이차의 원조는 기아자동차입니다.
 일본에서 '삼화제작소'라는 기업의 경영을 이끌었던 '김철호' 옹은 해방 직전 귀국하여 1944년 12월 '경성정공'을 설립한 후 1952년 3월 한국 최초의 국산 자전거 '3000리호(삼천리 레스포 자전거의 모체)'를 생산했던 것입니다. 1959년 일본의 '혼다'와 '동양공업(마쓰다의 전신)'과 제휴하여 1961년 모터싸이클 '혼다 C-100'(대림 혼다의 모체)를 생산했습니다.

그 후 1962년 1월  일명 '딸딸이'라 불리는 3륜 화물차 'K-360'을 생산하면서 1962년 10월 상호를 '기아산업'으로 변경했던 것입니다.
당시 삼륜차는 2기통 577cc 엔진을 장착하였고, 그 후 몇가지 개량형 모델이 나오며 1974년까지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삼발이차가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삼발이차는 안정성이 부족해 코너에서 넘어지기 쉽고 속도를 내는데 한계가 있었던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도 삼발이차는 중국을 비롯한 저개발 국가들에서는 우리의 1970~1980년대와 같은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수도인 북경에서도 가끔 삼발이 화물차를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삼발이차가 현대에 맞게 세련된 형태로 새로 나오기도 합니다. 삼발이차도 과거와 현재가 공준하는 세계인 셈입니다.
 

[중국 북경의 삼발이차 모습과 Panther Motors ScootCoupe의 삼륜차]
[삼륜차 형태로 만든 스위스의 전기 자동차]

삼발이차를 보고나서 어쩌다보니, 옛 추억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우리나라 삼륜차의 유래와 중국의 삼륜차, 그리고 새로 개발되는 현대 컨셉의 삼륜차에 이르기까지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삼발이차는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라져가는 추억의 풍경이지만 예전에는 시골 사람들이나 도시의 서민들에게는 애환이 담긴 소중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집집마다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고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 교통수단들이 발달되어 있어 불편함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과거의 어려운 시절에도 불굴의 투지와 도전정신으로 열심히 경제발전에 매진한 결과 우리가 보다 나은 환경을 갖게 된 것임을 잊지말아야 겠습니다. 최근의 경제불황에 시름이 깊지만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앞으로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말고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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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