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5.20 결혼 후 남자가 장모님 잘 모시면 편한 이유 '딸이 부모 모시는 시대 왔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38)
  2. 2010.05.08 강호동 아들 사진 오보 소동, 무책임한 언론 탓 뿐일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24)
  3. 2009.10.20 군대 간 아들, 아버지와 어머니 눈물의 차이 by 진리 탐구 탐진강 (66)
  4. 2009.10.04 추신수 20호 홈런 축포, 20-20 클럽과 3할 타율의 의미 by 진리 탐구 탐진강 (39)
  5. 2009.02.12 군대 간 아들이 사준 장갑을 찾는 모정 by 진리 탐구 탐진강 (7)


얼마 전, 막내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형, 애 낳았어."
"축하한다. 너도 아빠가 됐구나."

"고마워. 딸인데 애가 너무 예뻐."
"잘 키워라. 애 엄마에게 서운하지 않게 잘 보살펴라."

"친정에 한 달 정도 몸조리하러 갈 거야."
"그러냐. 한달 동안 독수공방하겠네."

그 후 막내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막 탄생한 아이의 사진이었습니다. 막내는 너무 신기한 듯 연신 애 자랑을 하면서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이제 막내도 결혼 후 애까지 낳았으니 가족들끼리 모이면 더욱 화기애애할 듯 합니다.

막내 삼촌부부가 애를 낳았다는 소식에 기뻐한 것은 부모님 뿐만 아니라 저희 두 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희 두 딸을 제외하고 그 동안 동생들이 전부 아들만 낳았던 터라 막내가 딸을 낳았다는 소식에 더욱 좋아했습니다. 두 딸아이는 가족 모임을 하면 자신들이 아이와 놀아주겠다면서 즐겨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막내의 아내, 제수씨가 친정에 한달간 머무른다는 이야기에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막내, 너도 모계사회의 일원이 되는구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도 장모님이 첫 애를 보살펴 주셨습니다. 지금도 장모님은 저희가 사는 아파트 바로 인근에 살고 계십니다.

어제 지인들과 점심 식사를 하면서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였습니다. 선배 C는 근처에 처가가 있다고 했습니다. 선배 C는 미혼인 후배 K에게 결혼생활을 편하게 하는 법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내에게 장인장모 식사를 사주라고 말하면 좋아."
"왜 그렇죠?"

"결혼 생활의 지혜인데 아내에게 잘 하는 것도 좋지만 장모님에게 잘하면 자연스럽게 아내도 좋아하게 돼. 지금은 다시 모계사회가 된 것 같아. 아내에게 열번 잘하는 것 보다 장모님에게 한번 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야."
"그렇군요. 저는 개콘에 나오는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 이야기가 너무 가슴에 와닿아요."

"그렇기는 한데,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잖아. 현명한 방법은 장모님을 잘 모시는 거야. 장인장모를 잘 모시면 아내는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고마워 한다고. 반찬이 하나라도 달라질 거야. 아내에게 야단칠 때도 왜 장인장모에게 제대로 못하냐고 하면 아무 소리도 못한다니까."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도 선배 C이 이야기에 상당 부분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장모님이 가까운 곳에 살고 계셔 도움이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평상시 잘 못하는 편이지만 장모님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만사 제쳐두고 가장 먼저 해결해 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고마워 했습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맞벌이 부부의 경우 자녀 양육을 처가 또는 친정에 맡기는 비율이 친가나 시댁 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친정 부모님에 대해서는 경제적 부담도 적고 심리적으로 굉장히 가깝기 때문에 육아 문제같은 것을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 높은 이유라는 것입니다. 육아에 대한 외할머니 역할이 커지면서 가족 문화도 외가 위주로 바뀌고 있는 셈입니다.
 
남자의 입장에서도 아내가 마음이 편하면 아이나 가정에도 도움이 되고 자신도 편하기 때문에 처가와 가깝게 지내게 되는 듯 합니다. 대체로 장모는 사위에게 음식 하나라도 더 해주려 하는 마음이 강한 편입니다. 장모의 사위 사랑이 곧 가정의 평화라고 해야 할까요? 아내도 대개 친정 엄마와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사이이다 보니 장모를 잘 모시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우리사회는 물론 전세계가 신모계사회로 점차 변하고 있습니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든지, '딸이 왕 재산'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부부들도 딸을 선호하고 딸 키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도 합니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이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으로 변하고, 군대 가면 손님으로 변하고, 장가가면 사돈이 된다'는 우스개 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성들은 여권신장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과 배려를 해야 할 것이고, 여성들은 남성들을 구시대 가부장제의 유물 같은 대상자에서 협력대상자로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여성의 책무 또한 무거워진 셈입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 함께 손잡고 행복을 가꾸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막내 남동생도 앞으로 장인장모와 더욱 가까워질 듯 합니다. 소위 신모계사회는 아이의 육아를 처가에서 맡게 되면서부터 변하게 된 풍속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곧 결혼 후 남자와 여자 모두가 행복해지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물론 장모에게는 아이의 육아가 고통스런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 돌보는 일이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외손주 양육에 사생활을 빼앗기는 장모의 반란도 있다고 하니까요. 

사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점점 장모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모계사회가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막내 남동생도 가족 모임에 나타나면 장모 이야기가 하나의 주제가 되겠지요. 아들이 부모를 모시는 시대는 가고, 딸이 부모를 모시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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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제 오후부터 '강호동 아들'이 인터넷 포털 검색어에 오르며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저도 저녁에 우연히 인터넷 여기저기 오른 '강호동 아들'이라 주장하는 사진을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어떤 네티즌이 강호동을 쏙 빼닮은 아기의 사진을 재미로 올린 것임을 확인하고 그저 웃어넘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컴퓨터를 켜보니 밤새도록 강호동 아들 사진이라면서 인터넷 언론들은 버젓이 그대로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강호동 아들이란 사진은 강호동 본인이나 소속사를 통해 간단히 사실 확인만 해도 알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더욱이 강호동 아들 사진이라고 처음 올라온 사이트를 검색을 통해 찾아봐도 전혀 아니라는 것을 쉽게 확인작업도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강호동 아들 사진이라고 최초로 올라온 인터넷 사이트는 SLR클럽 커뮤니티였습니다. 닉네임 反캐논희헌아빠를 통해 '강호동 아들?!ㅋ'이란 제목으로 처음 게시됐습니다. 제목도 물음표(?)를 포함해 강호동 아들이 아니라 우스개로 올린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고 등록일자를 보면 2007년 8월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강호동이 실제 아들을 득남한 것은 2009년 3월입니다. 실제 강호동 아들 득남 시기와 비교하면 명백한 오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 있는 강호동 아들 사진에 대한 사실 여부를 일부 인터넷 언론매체는 사실확인없이 강호동 아들 사진이라며 그대로 뉴스 보도하는 어이없는 오보를 양산했습니다. 언론이 아니라 찌라시라는 오명을 들을 수 있는 심각한 오보입니다. 언론의 생명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진실된 보도입니다. 그리고 공공성과 공정성을 항상 담보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 언론 매체들을 보면 언론이라기 보다는 검색어 장사에만 여념이 없고 사실 보도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이는 인터넷 언론 뿐만 아니라 기존 신문 매체도 마찬가지 양상입니다. 언론이 사람들로부터 불신을 당하는 이유입니다.

(다음 검색은 한국경제의 사실무근 보도도 올라왔지만 다음뷰가 오보를 초기화면에 배치한 것은 아쉽다)

언론이 인터넷 포털에 종속이 되어 낚시꾼으로 전락한 신세를 한탄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것은 언론 스스로 자초한 일입니다. 돈 몇 푼에 네이버 등 포털 검색에 오르기 위해 굽신거려야 하는 언론의 현주소입니다. 언론 스스로 공명정대하게 진실만을 보도한다는 기자정신은 사라지고 언론사 주인의 노예가 된 봉급쟁이에 불과하거나 사실확인도 안하고 받아적기만 하는 자판기같은 신세가 된 것도 언론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네이버의 검색을 살펴보면 오보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보 기사가 도배돼 있다)

(네이트 검색을 살펴보도 줄줄이 언론사의 오보에다가 사실인양 첫화면 맨 위에 설명이 나와 있다)

요즘 정권의 나팔수가 된 방송이란 이야기가 회자되는 것이나 언론 장악이란 말이 나온다는 것은 어쩌면 언론사 스스로 언론의 사명을 지키지 못한 책임도 큽니다. 최근 천안함 침몰 사고에서 보듯이 사실 접근에 통제된 상황에서 언론이 진실을 파헤치기 보다는 사고 당사자의 일방적 주장만을 그대로 받아쓰고 왜곡하기도 하는 현실은 바로 우리나라 언론의 일그러진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강호동 2세 사진도 결국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가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인터넷 포털의 책임도 매우 큽니다. 현재 우리나라 언론 구도를 보면 인터넷 포털에 뉴스를 공급해 먹고사는 언론이 대다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포털 검색에 노출되어야 광고 수입이라도 한 푼 받을 수 있는 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언론들은 언론의 사명이나 책임은 망각하고 사실 확인도 없이 인터넷에 뜬 불확실한 내용을 그대로 베끼기에 급급한 것입니다.

이번 강호동 아들 사진 오보 소동은 무책임한 언론에 대해 강력한 제재 조치를 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게 됐습니다. 사실 확인이 쉽게 될 수 있는 일에 소홀했고 이틀이나 오보를 그대로 게재한 것도 큰 잘못이지만, 이미 한국경제라는 언론에서는 어제 저녁부터 오보라는 것을 강호동 소속사에서 확인 후 보도했는데도 다른 매체는 오보 확인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터넷 포털도 언론사는 아니더라도 언론사 이상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 오보나 허위 사실이 인터넷에 유포되도록 방치한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인터넷 포털 스스로 잘못된 사실을 확산시키는 주범이 되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필요하며 잘못된 보도로 혼란을 주는 인터넷 매체에 대한 신뢰성을 검증할 장치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언론의 자성도 필요하지만 언론과 인터넷을 모두 포함해 오보 양산을 막을 수 있는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과 실행이 시급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PS : 개인적으로 소통의 시대에 역할 모델을 제시하는 다음뷰를 성원하기에 마음이 아프지만, 다음뷰의 경우도 이번 일을 계기로 심기일전하기를 바랍니다. 언론사 기사라서 오보일 것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오보라는 기사가 나왔을 때 신속히 게시를 중단하는 자체 관리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쓴 글에 다음뷰 부분을 뺄까도 생각했지만 이것은 블로거 정신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일이 오히려 다음뷰 발전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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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갑자기 차가워진 바람이 옷을 여미게 합니다. 가을도 깊어가면서 단풍도 절정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맘 때가 되면 군대에서의 일이 생각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물을 각각 따로 느낄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오늘은 그 시절에 비로소 가슴으로 느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물과 사랑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때는 1980년 중반이었습니다. 치열했던 대학 2년의 시간들을 추억하며 군대에 가야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암흑같은 군사 독재와 맞서 대학가의 민주화 항쟁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군대를 가기 전 까지 어머니 일을 도왔습니다. 저는 한량이셨던 아버지를 지독하게 싫어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어느정도 마음을 잡고 일을 했습니다. 표고버섯 재배였습니다. 산 등성이에서 일해야 하기에 매우 위험힌 작업이었습니다. 겨울에는 참나무를 베고 봄에 버섯종균을 넣은 후 나무를 세워두는 과정이었습니다.

과거 이야기부터 해야 겠습니다. 제가 본 유년시절의 아버지는 늘 어머니에게 화를 내는 모습이었습니다. 결혼 후 5년동안 군대를 기피해 도피생활을 했던 아버지를 처음 본 것은 제가 5살 때 였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은 그 때부터 언제나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힘들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임신했을 때 홀로 일하고 오다가 칡넝쿨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어머니는 머리에 이고오던 소꼴에 꽂아둔 낫이 떨어져 무릎의 힘줄이 끊어지는 중상을 당했습니다. 산골이라 병원도 못가고 평생 불구가 된 것이었습니다.

아침 태양의 햇살은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에 반짝였다

저는 나중에 고등학생 시절에 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더 컸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표고버섯 재배를 함께 했습니다.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시라는 아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여전히 아버지는 일하시면서도 어머니에게 화를 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저는 대들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그러지 못하도록 타일렀습니다.


당시 저는 다리를 절뚝 거릴 정도로 일을 했습니다. 마침내 군대를 가는 날이 왔습니다. 저는 집 앞에 나온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시골 집은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가면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가 있었습니다. 하루에 네 번 정도 버스가 다녔습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산을 내려가는데 아버지를 계속 제 뒤를 따라왔습니다. 말없이 따라왔습니다. 

저는 "아버지 그만 들어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뒤돌아 봤습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뒤로 돌렸습니다. 그 때 저는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을 보았습니다. 이제 막 산꼭대기에는 떠오른 아침 태양의 햇살에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이 순간 반짝했습니다. 난생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눈물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돌렸지만 저는 이미 아버지의 눈물을 봤던 것입니다. 그렇게 강하신 분이셨던 아버지의 눈물은 저에게 충격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군대를 향해 가면서 저는 마음 속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화해를 했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 면회왔다가 아들 못만난 어머니의 눈물 

저는 강원도 중동부 전선에 있는 백두산부대의 비무장지대 수색대에 배속받았습니다. 위험한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만큼 부대의 군기는 살벌했습니다. 신병 시절은 너무 괴롭고 힘든 훈련과 얼차려의 연속이었습니다. 수색대는 소대 단위로 생활했습니다. 산골짜기에 은밀하게 막사를 짓고 생활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강원도 산골은 급격히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훈련은 물론 물동이를 지고 물을 나르고 화목(불때는 나무)을 하고 짬밥을 버리는 등 잡일도 신병의 몫이었습니다.

어느 날, 열심히 물동이를 나르고 있는데 저를 부르는 소리가 멀리 막사에서 들렸습니다. 물동이를 내려놓고 급히 뛰어가보니 부대 통신보안 전화를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전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한 영문도 모른체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제가 "어머니"라고 말하자 마자 어머니는 흐느껴 울었습니다. "어쩐 일이세요?"라고 묻자 어머니는 겨우 말문을 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한번 보기 위해서 머나 먼 남쪽에서 강원도 산골까지 산 넘고 물 건너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의 부대가 면회가 안되는 곳인 줄 몰랐던 것입니다. 아들이 입대 후 보냈던 안부 편지를 받고 무작정 아들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연대 본부를 찾아왔던 어머니는 아들의 면회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는 그만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 연대 본부에서 전화라도 연결해 주었던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저는 "어머니 울지 마세요. 저는 건강하게 잘 있어요."라며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어머니와 전화를 끊고 막사 뒤 후미진 곳에 혼자 앉아서 저는 소리없이 울었습니다. 다리도 불편하신 몸으로 1박 2일에 걸쳐 강원도 산골까지 오셨다가 아들 얼굴도 못보고 되돌아간 어머니가 안타까웠습니다. 나중에 휴가가서 안 일이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맛있는 떡과 음식을 해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대본부의 병사들이 그 음식을 전달해주지 않고 그냥 배달사고를 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는 일입니다. 어머니는 눈물흘리고 돌아서며 아들에게 음식을 전달해달라고 호소했을텐데 말입니다.

아버지의 마음 속 눈물과 어머니의 흐느끼는 눈물은 하나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그렇게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근엄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약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자식들에게 헌신적이었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대부분 그랬습니다. 가부장적인 농촌 사회에서는 특히나 그러했습니다. 아버지는 완고했고 어머니는 자애로왔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항상 희생만 하시는 어머니가 안타까웠고 호통만 치시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이제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겉으로는 강한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여렸습니다. 어머니는 숙명처럼 가족과 자식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가슴 속으로 눈물을 흘렸고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보였지만 마음 속은 더 강했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물은 하나였습니다. 다만 그 표현이 달랐을 뿐입니다.

요즘은 아버지도 약해지셨는지 예전과 같지는 않습니다. 얼만 전에는 어머니가 여행을 다녀오시도록 배려하는 모습도 있으셨습니다. 칠순이 넘어서도 여전히 경운기를 몰고 농사일도 하시지만 과거와 달라지신 모습니다. 한편으로 아버지 어머니가 다정해지신 것 같아 다행스럽지만 몸이 쇠약해지신 것 같은 아닌지 걱정도 듭니다.   

오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쌀 두 가마니 보냈다. 내일 도착할 거다."
"추수하느라 힘드셨겠어요."

"아니다. 막내가 와서 도와줘 잘 끝냈다."
"도움을 못드려 죄송해요." 
(막내 남동생은 지난해 결혼해 부모님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전화 좀 해라. 이번에 추수에다 표고버섯까지 나와서 고생했단다."
"네. 알겠어요."

어머니의 전화를 끊고 저는 잠시 멍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를 가장 걱정하는 분은 어머니이신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전화를 드렸습니다. 여전히 무뚝뚝한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듯이 별 말씀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이심전심으로 아버지의 사랑이 전해져 옵니다. 앞으로는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와도 자주 전화를 드려야 겠습니다. 저도 어느새 아버지를 닮았는지 표현이 서투른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한 가정을 일구고 아버지가 되고나니 만감이 교차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글로 대신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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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추신수의 거침없는 홈런포가 터지고 있습니다. 드디어 20호 홈런을 쐈습니다. 이로써, 클리블랜드 외야수 추신수는 마침내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20 홈런- 20 도루를 달성한 것입니다. 즉 '20-20 클럽' 가입에 성공했습니다. '추추 트레인' 별명을 갖고 있는 추신수가 20-20 트레인에 올라 탄 것입니다.

추신수는 한국시간 4일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보스턴과의 원정 경기에 우익수 겸 3번 타자로 선발 출장해 7회 좌중간을 넘어가는 비거리 115미터 짜리 20호 투런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이 날 추신수는 4타수 2안타 3타점 1득점을 기록하며 타율도 3할대로 복귀했습니다.

추신수는 한국시간 9월 29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미국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홈경기에서 19호 홈런포를 작렬한 바 있어 5일만에 다시 20호 홈런에 성공한 것입니다.
 

아시아 최초, 호타준족의 20-20 클럽과 3할대 타자 등극 임박 

현재 추신수는 이미 21 도루는 달성한 상태였기에 이번 20호 홈런의 의미는 컸습니다. 명실공히 20-20 클럽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한국인 타자 최초 그리고 아시아 타자 최초로 20 홈런-21 도루를 달성함으써 명실상부한 호타준족의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잘 치고 잘 달리는 타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한 것입니다. 동양인으로 일본의 이치로가 타자로서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단타 위주라서 추신수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집니다.

추신수의 20-20 클럽 가입은 동양인 최초로서 호타준족의 큰 의미가 있다

이제 남은 경기에서 3할대 타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20-20 클럽 달성은 물론 규정 타석도 이미 채운 바 있어 3할 타율대 선수를 위한 기록만 남아 있습니다. 이제 남은 한 경기에 나가서 현재 3할대 타율만 유지한다면 3할대 타율 선수도 되는 것입니다. 만약 첫 풀타임 출장 첫 해에 추신수가 20-20 클럽에 3할대 타율을 기록하면 아메리칸리그 첫 번째 타자가 되는 영광을 안게 된다고 합니다.

투수 박찬호에 이어 타자에서도 한국 선수 위상 높였다

메이저리그에서 박찬호를 위시한 투수 부문에서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있었지만 타자 부문에서는 추신수의 활약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투수 뿐만 아니라 타자에서도 한국 출신 선수들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한국 타자들이 메이저리그에 대거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데 의미가 큽니다.

추신수는 나이가 27세에 불과해 앞으로 장래도 촉망됩니다. 추신수는 이번 시즌이 풀타임 출장 첫해입니다. 그런데 풀타임 출장 첫 해에 20-20 클럽 가입이라는 큰 성과를 남기게 됐습니다. 놀라운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선수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추신수 선수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뛸 수 있습니다. 프로의 세계는 연봉으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약 100년 역사 클리블랜드에서 20-20클럽은 추신수가 9번째 선수

게다가, 장기리포와 단타를 모두 겸비한 가공한 타격력과 주루 플레이도 능한 타자로서의 모든 장점을 갖고 있어 최고의 타자란 찬사를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이미 WBC 세계야구선수권대회와 올림픽 야구 등을 통해 투수력과 타격력, 그리고 수비력 등 모든 측면에서 세계적인 야구 실력을 과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진출은 조금 부족했지만 이번에 추신수가 확실하게 한국 선수의 매운맛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추신수 선수를 키운 외삼촌 박정태의 숨은 공로



추신수 선수의 외삼촌이 바로 박정태 롯데 코치입니다. 추신수 어머니의 남동생이 박정태 코치라는 것입니다. 추신수 선수가 타자로서 대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외삼촌 박정태 코치의 도움이 컸다고 합니다. 추신수는 이미 부인 하원미 씨와 결혼해 5살 아들인 추무빈을 두고 있습니다. 일찍 결혼해 빨리 가정의 안정을 취한 것이 이번 맹활약의 바탕이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1901년 창단한 팀인데도 100년 가까운 프로야구 역사에서 단 8명 만이 11번 20-20 클럽에 가입한 바 있습니다. 추신수가 9번째 선수가 된 셈입니다. 추신수처럼 풀타임 첫 해에 20-20 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그래디 사이즈모어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올해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20-20 클럽은 11명에 불과합니다. 추신수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추신수는 시작에 불과한 만큼 앞으로 30-30 클럽 도전도 가능할 것이라 봅니다.

추신수의 경쟁력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팀기여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추신수는 86타점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팀에서 단연 1위입니다. 팀에서 필요할 때 적시타를 날려준 셈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팀플레이에서 추신수가 팀공헌도가 높기 때문에 꼭 필요한 선수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호타준족에다가 적시타를 잘 날려주어 타점도 높은 선수이니 금상첨화입니다. 추신수의 앞 날이 밝다는 것입니다. 

추신수 선수의 20호 홈런과 20-20 클럽 가입을 축하하며 앞으로 3할대 타율로 더욱 빛나는 선수로 메이저리그를 압도하기를 바랍니다.

[참고] 추신수 20호 홈런 동영상 보기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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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오랫만에 휴대폰의 사진을 정리하다가 눈길을 잡는 사진 한장이 있었습니다. 지난 1월 언젠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던 공지사항이었는데 우연히 찍어둔 것이었습니다.

사진의 내용을 살펴보니 장갑을 분실한 어떤 어머니의 애틋한 사연이었습니다. 군대 간 아들이 어머니에게 가죽 장갑을 선물했는데 어머니가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장갑을 찾습니다"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글은 "군에 간 아들이 사준 가지색 가죽장갑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들의 사랑이 듬뿍 담긴 너무나 소중한 장갑입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색상까지 고려해 정성껏 작성한 내용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는 군대에 간 아들이 사준 가죽 장갑이어서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단순히 장갑의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군대에 간 아들이 차가운 겨울철에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사준 장갑은 어떤 물건 보다도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사연이라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아들도 어머니를 위해 장갑을 선물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따뜻한 효자인 듯 합니다.

지금은 아파트내 공지사항의 내용이 없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아내와 두 딸에게 그 사연에 대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봤더니, 장갑을 찾았는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군대에 간 아들이 사준 가죽장갑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심정이 얼마나 안타까울까 생각하면 부디 장갑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그래도, 어머니와 아들의 사연은 주위 사람들을 훈훈하게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강원도 양구까지 면회 온 어머니, 눈물만 흘리고 그냥 돌아간 그 시절
저도 군대시절에 어머니 생각을 하면 가슴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머나먼 남쪽에서 산 넘고 물 건너 몇일동안 강원도 양구의 오지까지 아들 면회를 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1988년경일 것입니다. 겨울이었는데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DMZ 수색대(민정경찰) 비무장지대 근무라서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연대 본부에서 비무장지대의 비밀 막사로 전화가 다행히 연결되었습니다. 겨우 전화 통화만 했는데 아들 걱정을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어머님께 "걱정마세요. 밥 잘 먹고 몸 건강히 잘 있어요."라고 안심을 시켜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 통화 도중 저는 약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싫고 고참들의 눈치를 보느라 억지로 눈물을 삼키면서 겨우 참았습니다.

그 후 저는 막사 뒷편의 후미진 곳에서 혼자 소리죽여 한참동안을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때문에 평생을 산골에서 거의 홀로 농사와 살림을 전담하시면서 고생하신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는 한량이셨고 성격이 불같아 어머니는 오직 일만하시고 자식들 뒷바라지만 하신 일생이셨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머니는 저를 위해 맛있는 음식과 떡 등을 정성껏 준비해 오셨는데 저에게 전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군대내 누군가 배달 사고를 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못 만난 것도 서러운데 소중한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빼돌리는 인간들이 있었다는 것에 또 한번의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지금은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때는 쫄병이었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너무나 서러웠던 기억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사연을 보니 갑자기 저의 옛기억이 지나갑니다. 군대 시절에는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지곤 했습니다. 더구나 차가운 겨울철에는 더욱 어머니가 만들어준 밥 한 공기가 그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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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