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5.28 노무현과 손녀 사진들과 동영상, 감동의 파노라마 by 진리 탐구 탐진강 (190)
  2. 2009.05.26 노무현 대통령, 노간지 시리즈가 뜨는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1250)
  3. 2009.05.23 사진으로 본 노무현 대통령의 일대기 '사람 사는 세상'(유서 전문 포함) by 진리 탐구 탐진강 (51)
  4. 2009.02.14 13세 아빠를 읽고 조혼의 역사를 찾아보니...세종은 12살에 결혼했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20)


생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손녀에 대해 애틋하고 각별한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손녀도 할어버지를 무척 따르고 좋아했습니다. 손녀 딸의 이름은 노서은입니다. 장남인 노건호의 큰 딸입니다. 나이는 올해 6살. 귀여운 꼬마 아가씨.

노무현 대통령과 꼬마 아가씨는 늘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볼 수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 보다  할아버지의 서거에 슬퍼할 노서은 양. 아직 할아버지의 죽음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없을, 어린 꼬마 아가씨.
 
네티즌들은 귀여운 꼬마 아가씨에게 '노다지'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너무 천진난만하고 예쁜 노서은 양의 모습이 노다지와 같은 행복이 담겨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준 듯 합니다. 할아버지는 물론 이웃들에게 항상 행복을 선사하던 노다지 꼬마 아가씨.

그토록 사랑했던 손녀를 남겨두고 세상과 의절해야 했던 노무현. 누가 고인을 끊임없이 괴롭혔던가? 왜 작은 농촌에 살던 촌부를 못살게 굴었던가? 우리나라도 잘 사는 농촌을 만들고 싶다던 소박한 꿈을 누가 앗아갔는가? 비정하고 야비한 몰상식과 열등감을 가진 권부의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꼬마 아가씨 노서은 양과 할아버지 노무현의 다정하고 행복했던 여러 모습들을 소개해 봅니다.
꼬마 아가씨 노서은 양은 할아버지와 자전거 타는 것을 무척 좋아한 듯 합니다. 어둠이 내린 봉하마을을 노무현과 손녀가 지전거를 타는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입니다. 빨간 장화가 눈길을 붙잡습니다.

아직 잠이 덜 깬 꼬마아가씨를 차에서 안고 내린 후 손을 잡고 어딘가 나들이를 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가족들의 모습인 듯 합니다. 하품을 하는 꼬마 아가씨가 귀엽습니다.

손녀 딸을 태우고 봉하마을을 한바퀴 돌고있는 노무현 할아버지가 참으로 행복해 보입니다. 

한 때 청와대 잔디밭에 앉아서 손녀와 행복한 장난을 치며 다정다감했던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가 과자를 주는 줄 알고 입을 벌리던 꼬마 아가씨. 할아버지가 그냥 과자를 먹어버리자 뾰루뚱한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꼬마 아가씨 노서은 양은 할아버지의 무등을 타는 것도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노서은 양이 할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얼마나 좋은지, 두 손을 높이 들고 활짝 웃고 있습니다. 너무도 예쁘고 귀여운 표정입니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정말 행복해 보입니다.

귀여운 꼬마 아가씨 노서은 양과 노무현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청와대 안을 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무 그늘 밑으로 자전거가 달리는 모습이 아름답고 신비롭게 보입니다.  

할아버지 자전거에 타고 봉하마을의 어디론가 향하던, 꼬마 아가씨가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허리 춤을 붙잡고 자전거를 타던 꼬마아가씨가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동네 가게에 들른 할아버지와 꼬마 아가씨. 할아버지는 쭈쭈바를 골라 행여 꼬마 아가씨의 손이 시릴까 정성껏 휴지로 싸서 먹기 좋게 해줍니다.

할아버지와 꼬마 아가씨는 함께 마을 가게를 자주 들렀나 봅니다. 할아버지와 꼬마 아가씨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추억의 장면들입니다. 농촌 마을의 촌부로 살고자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그러자 세상은 농촌에 내려가 조용히 살고있는 노무현을 시기했습니다. 아니 열등감 많은 자들은 촌부의 삶 마저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은 죽지 않았습니다. 순교자는 죽지 않습니다.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영원한 대통령으로 살아있을 것입니다. 역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불멸의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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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금 인터넷에는 이미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추모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간지'라는 친근한 별명으로 불리고 있기도 합니다. 간지는 어원이 일본어인 간지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 원래의 뜻과는 약간 다르게 변화되고 의역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느낌, 감각(Feel)" 이란 간지의 어원이 우리나라에서는 "폼이난다", "멋있다"의 의미로 사용되면서 인터넷 신조어인 '노간지'로 탄생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노짱'이나 노간지는 비슷한 별명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그냥 순수 한국말인 노짱이 낫지 않느냐는 갑론을박도 있기는 합니다. (댓글 의견 중에는 우리말'간지다'가 어원이라는 말도 있는데 "간드러진 멋이 있다" 의미로 노간지가 생겨난 것이랍니다.)

특히, 인터넷에는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담은 노간지 시리즈가 뜨고 있습니다. 일반 국민들 앞에서는 고개 숙이고 늘 소탈한 서민의 모습이었지만, 절대 권력자나 강자들에게는 당당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다시 한번 네티즌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노간지는 바로 나의 친구나 이웃이라는 친근감의 상징

사실 노간지 시리즈가 뜨는 이유는 몇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우선 노간지는 바로 나의 친구나 이웃이라는 자각이 반영된 상징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들과 똑같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노간지는 바로 나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그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셈입니다. 노간지는 바로 우리의 이웃집 친구, 아저씨, 오빠, 형, 할아버지였던 것입니다.

권위를 국민에게 넘겨주고 국민과 소통했던 대통령 인식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새로운 재평가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수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최고 권력자가 권위를 벗고 일반 대중과 함께 호흡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일반 국민의 대표로서 대통령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그러한 탈권위주의, 진정한 대중 민주주의 시대에 그 권력의 주체로서 감당할 능력이 부족했는지 모릅니다. 오히려 고인을 물어뜯고 짓밟고 깎아내리기 바쁜 하이에나 언론과 특권 기득권 세력의 재물이 되고 있어도 방관자이거나 동조자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지난 수천년을 제왕이나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절대 권력 치하의 백성으로 살아왔기에 갑자기 국민에게 주어진 권력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셈입니다. 노간지는 이러한 탈권위시대의 산물인 것입니다. 인터넷은 권위주의가 사라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가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 아니던가. 대통령을 욕하더라도 노간지는 소중한 국민들을 이해한다면서 그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대통령을 욕함으로써 주권자의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 대통령 노무현 어록 중 -

때늦은 후회와 반성 그리고 사람에 대한 소중한 가치

노간지는 그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왔던 인생 궤적에 대한 재평가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오직 조국과 국민들을 위해 살아왔던 당당한 삶에 대한 재평가와 재발견인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비로소 그의 죽음 앞에서 숙연해졌습니다. 그리고 때늦은 후회와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한 것입니다. 물질 만능주의 앞에 나약해졌던 우리 모두는 진정 소중한 가치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는 사람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나름대로 국정을 위해 열정을 다했는데 국정이 잘못됐다고 비판 받아 정말 괴로웠다.
아들 딸과 지지자들에게도 정말 미안하다.
퇴임 후 농촌 마을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다.
돈문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이 부분은 깨끗했다.
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잊고 지냈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준 노간지의 모습들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이렇게 소탈하지만 당당한 최고 권력자 대통령을 우리가 맞이하게 될까요?

'아기'를 놀린 노간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국민이면 봐야 하는 노간지 시리즈입니다.


(* 여기서 호화요트는 극우 보수언론의 거짓말 물어뜯기에 대한 반어법입니다.^^ )
<* 오타 발견 : 옳바른(X) -> 올바른(O),  주늑들지(X) -> 주눅들지(O)>






자전거 타는 노간지.


한글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노간지.


엘리자베스여왕과 노간지.


인디아나 노간지.


아이들과 줄다리기하는 노간지.


농촌 촌부 모델이 된 노간지.


회장님과 노간지의 만남.


네티즌이 된 노간지.


꼬마 아가씨와 만난 노간지.


아이 울린 노간지.


신고하는 전경에 고개 숙인 노간지.


서민들과 함께 한 노간지.


아이들 눈치보며 점심먹는 노간지.


아이들에게 고개 숙인 노간지.


썰매타는 노간지.



손녀를 태우고 자전거 타는 노간지.



다정한 노간지 부부.

상록수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출처] 탐진강의 함께사는세상이야기

노무현 대통령 주요 업적
1) 국가 신용등급상승 총 4단계 상승
2) 암환자 건강보험 보장률 총 20%이상 상승
3) 외한보유액 286억달러 상승
4) 주택보유율 9.7% 상승
5) 정부 R&D 예산 13% 상승
6) 육아지원예산 8000억원 이상 상승 5배이상 상승
7) 1인당 명목 국민소득 8000달러 상승(2만 달러 시대 개막)
8) 남북 인적왕래 약 10배 상승
9) 복지비율 39%상승
10) 북한 NLL침범 100회 이상 줄임
11) 국제 특허건수 1위상승 건수 1500회 이상 증가
12) 부도 업체수 90%이상 대폭 줄임
13) 전력증가 전차, 전투기, 전투함 1.7배 증가
14) 실업자수 60만명 이상 줄임
15) 기술석차 상승
16) 국가 기초 기술 상승
17) 소비자 물가 1.4 포인트 줄임(물가 안정)
18) 국가 정보 순위 11위 상승
19) 총 연구 개발비 7조원 상승
20) 공공 도서관 크게 증가
21) 미술관 증가
22) 박물관 상승
23) 종합 주가 기수 800 증가(주가 1400 시대 개막)
24) 외국인 투자 22억 달러 증가
25) 자유화 정도 FREE로 상승
26) 중소기업 현금 보유 1.9배 증가
27) 수출액 2배 이상 증가


* 극우 보수언론과 정부는 그 동안 노무현 업적 지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참고> 글을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기해 주세요.
* 퍼갈 때는 전체 내용을 복사해 원하는 사이트에 붙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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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눈물만 하염없이 흐릅니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결국 죽음 그리고 자살 마저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헌신이었습니다.
그이 삶이 올곧았듯이, 구차한 삶 보다는 당당한 죽음을 택했습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 전문> 내용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나름대로 국정을 위해 열정을 다했는데 국정이 잘못됐다고 비판 받아 정말 괴로웠다.
아들 딸과 지지자들에게도 정말 미안하다.
퇴임 후 농촌 마을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다.
돈문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이 부분은 깨끗했다.
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나라에서는 고통없이 부디 편안히 쉬세요.

그의 지난 사진들을 보니 더욱 마음이 아파 옵니다.
독재자들은 여전히 고개를 들고 활보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는 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빨리 독재의 그 날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은 죽음으로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되살려 주었습니다.

"오직 한가닥 타는 목마음으로"
다시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되새겨 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비통한 마음으로 "바보 노무현"을 불러봅니다.
우리 모두는 민주주의 역사의 죄인들입니다.
무임승차해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죄인들입니다.

"노무현, 당신은 영원한 우리들 마음 속의 대통령입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진정으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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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오늘 13세 아빠에 대한 뉴스를 읽다가 궁금증이 발동해 우리나라와 세계의 조혼(早婚 : 어린 나이에 결혼) 역사를 찾아보았습니다. 영국의 13세 소년과 15세 소녀가 아이를 낳은 과속스캔들 소식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국가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세계의 역사를 찾아보면 10대 초반에 결혼하는 조혼의 관습은 오랜 역사입니다. 현재도 조혼 풍습을 유지하는 국가가 상당수 존재하기도 합니다.

영국 일간지 '더 선'은 영국의 13세 소년인 '알피에 피턴'과 15세 여자친구 '스테드먼'이 딸 아이를 낳은 사연을 소개했는데, 어린 부부의 딸 양육비는 피턴의 아버지가 부담을 하기로 했으며, 스테드먼의 어머니는 젊은 38세의 나이에 할머니가 됐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은 몇 살에 결혼했을까?

세종(충녕군)은 1397년생인데 1408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나이로 12살입니다. 만으로 11살입니다. 그리고 세종과 결혼해 왕비가 된 소헌왕후는 세종 보다 두 살이 많은 14살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왕실에는 이미 조혼 풍습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증명입니다. 조선 왕실에서는 10세 전후의 세자나 왕자가 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조선 세종 때 상소문 중에는 중국 황제가 10세 소녀만 공녀를 요구한다는 내용도 있다고 합니다. 이는 조혼을 통해 공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일반 백성들도 대개 15세 전후에 결혼을 했습니다. 춘향이가 16세에 이몽룡과 혼례를 치르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조혼은 갑오개혁에 와서야 금지되지만 근대에도 조혼 관습은 계속 유지되어 왔습니다.

[세종대왕 영정]

소헌왕후 (昭憲王后)
1395(태조 4)∼1446(세종 28). 조선 제4대왕 세종의 비. 성은 심씨(沈氏). 본관은 청송(靑松).
문하시중 덕부(德符)의 손녀이고, 영의정 온(溫)의 딸이며,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안천보(安天保)의 딸이다. 1408년(태종 8) 충녕군(忠寧君) 도와 가례(嘉禮)를 올려 빈(嬪)이 되고, 경숙옹주(敬淑翁主)에 봉해졌다.

간디는 13세 동갑 소녀와 결혼했다

[마하트마 간디 사진]


20세기 인도의 위대한 민족주의자이며 비폭력주의 창시자인 간디는 13세 때 같은 나이의 소녀와 결혼한 기록이 나옵니다. 간디는 결혼 이후 1년 휴학 후 중고등학교 생활을 거쳐 나중에 봄베이의 대학입학시험에 간신히 합격합니다. 간디는 종교적 신념이 강한 지도자적 면모를 지니고 있는데, 사실 힌두교도가 대부분인 인도는 조혼 관습이 지금도 만연하고 있습니다.

네팔도 힌두교도가 많은데 지금도 조혼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힌두교는 기원전 200년 전부터 조혼이 관례화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조혼의 이유는 결혼도 못하고 죽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믿음에서 사춘기 이전에 결혼이 의무화되면서 더욱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네팔에서는 10대 후반 학생 중 50% 이상이 기혼자라고 합니다. 심지어 시골에서는 지금도 6살 조혼의 전통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마리 앙뚜와네트는 루이16세와 14살에 결혼
[루이 16세와 앙투와네트]
유럽도 마찬가지로 조혼이 유행했는데 프랑스의 루이16세 황태자와 결혼한 오스트리아의 공주인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도 당시 14세의 나이였습니다. 1789년 절대 왕정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폭발해 프랑스 혁명이 발발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앙투와네트의 인생은 정략결혼부터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데릴사위 제도나 민며느리 제도는 조혼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알려주는 사실입니다. 고려시대에도 송나라와 원나라가 공녀를 요구해 조혼이 유행했습니다. 원나라가 요구한 공녀의 나이는 13세에서 16세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려시대에는 10 전후의 신부가 많았습니다.

조선시대는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는 노골적으로 공녀를 요구했고 조혼이 일상화되었습니다. 공녀로 갔다고 돌아오면 오랑캐에게 몸을 버렸다면서 고향에 돌아오는 것은 받아주지 않아 환향녀(還鄕女; 화냥년의 원조)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의순공주가 청나라 공녀(조공)로 끌려가던 중 '오랑캐에 욕을 당하느니 죽겠다'며 압록강에 투신 자살한 후 생겼다는 의정부 소재 정주당과 쪽두리산소(의순공주가 투신한 후 시신은 못찾고 쪽두리만 남아서 붙여진 이름의 산소)의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

조혼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역사에 있어 일반적인 현상 중 하나였습니다. 17세기 유태인들에게는 10세 미만의 신랑과 그 보다 나이 어린 신부가 많았다고 합니다. 고증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는 목수 요셉과 14세에 결혼했다고 전해집니다. 유럽의 관습에 영향을 미친 로마법도 결혼 하한 연령이 12세 였다고 합니다.

9살 예멘 소녀의 이혼 사건과 어린 신부 매매 문제

현재도 조혼으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영국 BBC가 보도한 '이혼 투쟁을 벌이고 있는 예멘의 어린 신부들' 소식입니다. 가난한 생계 문제로 인해 돈을 받고 9살 딸을 결혼시켰으나 결국 이혼에 이른 사건이었습니다. 예멘의 법률은 여성의 결혼을 15살 이상으로 정하고 있지만, 가난한 집안에서 신랑에게 돈을 받고 어린 나이의 소녀를 결혼시키는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조혼은 역사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적 관습 때문인 경우고 있고, 외세의 침략에 의해 딸들을 보호하기 위한 이유도 있습니다. 가난한 생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조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왕실 보호나 권력 장악을 위한 정략 결혼도 있습니다.

현재의 시각에서 다른 나라와 우리 역사의 조혼을 단순하게 평가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였고 가족의 생존을 위한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는 어린 나이에 원하지 않는 조혼을 통해 고통받는 어린 소녀들이 많다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인류의 인권 문제라는 차원에서 국제기구나 국제사회가 이들에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섰으면 합니다.

[영화 과속스캔들 장면]


조혼으로 인한 문제는 '과속스캔들'이라는 영화와 같이 단순히 흥미가 아니라 가족과 아이들의 장래 문제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조혼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과거와 현재의 문제 그리고 우리나라와 세계의 역사와 현황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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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