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0.04 추신수 20호 홈런 축포, 20-20 클럽과 3할 타율의 의미 by 진리 탐구 탐진강 (39)
  2. 2009.05.21 무릎팍, 허구연 송인득 명콤비와 야구감동 by 진리 탐구 탐진강 (12)
  3. 2009.03.24 한국팀, 빅볼 토털야구로 세계중심에 서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4)


추신수의 거침없는 홈런포가 터지고 있습니다. 드디어 20호 홈런을 쐈습니다. 이로써, 클리블랜드 외야수 추신수는 마침내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20 홈런- 20 도루를 달성한 것입니다. 즉 '20-20 클럽' 가입에 성공했습니다. '추추 트레인' 별명을 갖고 있는 추신수가 20-20 트레인에 올라 탄 것입니다.

추신수는 한국시간 4일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보스턴과의 원정 경기에 우익수 겸 3번 타자로 선발 출장해 7회 좌중간을 넘어가는 비거리 115미터 짜리 20호 투런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이 날 추신수는 4타수 2안타 3타점 1득점을 기록하며 타율도 3할대로 복귀했습니다.

추신수는 한국시간 9월 29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미국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홈경기에서 19호 홈런포를 작렬한 바 있어 5일만에 다시 20호 홈런에 성공한 것입니다.
 

아시아 최초, 호타준족의 20-20 클럽과 3할대 타자 등극 임박 

현재 추신수는 이미 21 도루는 달성한 상태였기에 이번 20호 홈런의 의미는 컸습니다. 명실공히 20-20 클럽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한국인 타자 최초 그리고 아시아 타자 최초로 20 홈런-21 도루를 달성함으써 명실상부한 호타준족의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잘 치고 잘 달리는 타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한 것입니다. 동양인으로 일본의 이치로가 타자로서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단타 위주라서 추신수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집니다.

추신수의 20-20 클럽 가입은 동양인 최초로서 호타준족의 큰 의미가 있다

이제 남은 경기에서 3할대 타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20-20 클럽 달성은 물론 규정 타석도 이미 채운 바 있어 3할 타율대 선수를 위한 기록만 남아 있습니다. 이제 남은 한 경기에 나가서 현재 3할대 타율만 유지한다면 3할대 타율 선수도 되는 것입니다. 만약 첫 풀타임 출장 첫 해에 추신수가 20-20 클럽에 3할대 타율을 기록하면 아메리칸리그 첫 번째 타자가 되는 영광을 안게 된다고 합니다.

투수 박찬호에 이어 타자에서도 한국 선수 위상 높였다

메이저리그에서 박찬호를 위시한 투수 부문에서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있었지만 타자 부문에서는 추신수의 활약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투수 뿐만 아니라 타자에서도 한국 출신 선수들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한국 타자들이 메이저리그에 대거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데 의미가 큽니다.

추신수는 나이가 27세에 불과해 앞으로 장래도 촉망됩니다. 추신수는 이번 시즌이 풀타임 출장 첫해입니다. 그런데 풀타임 출장 첫 해에 20-20 클럽 가입이라는 큰 성과를 남기게 됐습니다. 놀라운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선수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추신수 선수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뛸 수 있습니다. 프로의 세계는 연봉으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약 100년 역사 클리블랜드에서 20-20클럽은 추신수가 9번째 선수

게다가, 장기리포와 단타를 모두 겸비한 가공한 타격력과 주루 플레이도 능한 타자로서의 모든 장점을 갖고 있어 최고의 타자란 찬사를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이미 WBC 세계야구선수권대회와 올림픽 야구 등을 통해 투수력과 타격력, 그리고 수비력 등 모든 측면에서 세계적인 야구 실력을 과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진출은 조금 부족했지만 이번에 추신수가 확실하게 한국 선수의 매운맛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추신수 선수를 키운 외삼촌 박정태의 숨은 공로



추신수 선수의 외삼촌이 바로 박정태 롯데 코치입니다. 추신수 어머니의 남동생이 박정태 코치라는 것입니다. 추신수 선수가 타자로서 대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외삼촌 박정태 코치의 도움이 컸다고 합니다. 추신수는 이미 부인 하원미 씨와 결혼해 5살 아들인 추무빈을 두고 있습니다. 일찍 결혼해 빨리 가정의 안정을 취한 것이 이번 맹활약의 바탕이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1901년 창단한 팀인데도 100년 가까운 프로야구 역사에서 단 8명 만이 11번 20-20 클럽에 가입한 바 있습니다. 추신수가 9번째 선수가 된 셈입니다. 추신수처럼 풀타임 첫 해에 20-20 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그래디 사이즈모어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올해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20-20 클럽은 11명에 불과합니다. 추신수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추신수는 시작에 불과한 만큼 앞으로 30-30 클럽 도전도 가능할 것이라 봅니다.

추신수의 경쟁력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팀기여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추신수는 86타점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팀에서 단연 1위입니다. 팀에서 필요할 때 적시타를 날려준 셈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팀플레이에서 추신수가 팀공헌도가 높기 때문에 꼭 필요한 선수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호타준족에다가 적시타를 잘 날려주어 타점도 높은 선수이니 금상첨화입니다. 추신수의 앞 날이 밝다는 것입니다. 

추신수 선수의 20호 홈런과 20-20 클럽 가입을 축하하며 앞으로 3할대 타율로 더욱 빛나는 선수로 메이저리그를 압도하기를 바랍니다.

[참고] 추신수 20호 홈런 동영상 보기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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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도사에 출연한 허구연의 야구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송인득 캐스터와의 사연은 옛날 야구 중계를 들었던 추억과 함께 허구연이 왜 송인득을 그리워 했는지, 그리고 시청자들은 왜 송인득의 빈자리가 커보이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했습니다.

“송인득, 어서 일어나서 중계하러 가야지. 그러니 힘을 내.”
허구연이 송인득 캐스터가 숨을 거두기 두 시간 전 쯤에 마지막으로 그의 귀에 대고 한 말이었습니다. 허구연과 송인득은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2007년 4월 7일까지 25년간 호흡을 맞춰 온 환상의 야구 중계 명콤비였습니다.

허구연은 이 날 방송에서 " 임종장면도 지켜봤다 " " 지금도 어떤 때는 송인득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난다.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따르던 동생인데, 술 담배를 멀리 하라고 했는데… "  " 지금도 방 안에서 송인득과 함게 찍은 사진을 보면서 '바보 같은 친구야'라고 한탄을 하곤 한다 "  "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그렇게 되니까 너무 가슴이 아프다 " 고 말하며 안타까움고 함께 눈시울을 붉게 적셨습니다.


야구 캐스터 송인득의 영결식은 MBC 아나운서들의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송인득의 발인에는 수많은 MBC 아나운서들이 눈물을 적셨습니다. 남자 아나운서들은 물론 여자 아나운서들도 선배의 영면에 애도의 문물을 흘렸습니다. 이는 야구를 사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송인득 캐스터의 공백과 그의 뛰어난 중계방송은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중계방송에서 캐스터들의 문제점이 속출하면서 다시한번 절실하게 부각된 바 있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중계방송에서 캐스터들의 흥분 방송과 알맹이 없는 방송과 달리 고 송인득 캐스터는 경기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방대한 전문 자료를 바탕으로 깊이있고 품격있는 중계 방송을 했기 때문입니다.

고 송인득 캐스터는 경기흐름에 따라 감정의 톤을 적절히 조절하며 시청자에게 관전포인트와 시각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했습니다. 특히, 허구연 해설위원과 역할 분담을 적절하게 조하시켜 야구의 묘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고 송인득 아나운서는 야구 중계방송 캐스터의 교과서로 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허구연은 "고 송인득 캐스터는 해설위원보다 더 방대한 지식과 정보로 무장하고 경기 중계에 임했다. 그리고 해설위원의 역할이 돋보이도록 질문에서부터 화법에 이르기까지 배려를 했다"고 송인득을 회고한 바 있습니다. 송인득은 특히 애정을 가졌던 야구나 마라톤에 대한 방대한 자료 수집과 공부를 지속적으로 했던 결과였습니다. 무릎팍도사를 시청한 후 잊혀졌던 송인득 캐스터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어쩌면 송인득이 있었기에 한국 야구 그리고 허구연이 빛나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무릎팍도사에서 허구연의 몇가지 이야기]

스파이가 된 야구 해설가

허구연은 해설가이면서도 경기전 한국팀과 맞붙는 상대팀의 감독이나 선수들을 취재해 정보수집을 했습니다. 한국팀에 도움되는 결정적 정보를 제공해 경기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 것입니다. 일종의 스파이 역할인 셈입니다. 미국 등 다른 나라의 팀들은 정보를 어느정도 오픈했지만 일본팀은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만큼 일본팀은 한국팀을 경계했다는 반증입니다. 선동렬이 일본팀의 술책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알고 있는 감독이라고 합니다.

허구연 어록의 재미와 해학
▲대쓰요
감동과 기쁨의 말
▲고마워요 사또
유리한 상황에서 하는 말
▲독도를 넘기고 대마도까지 갔어요
허튼 소리에 대한 말
▲청보 핀토스
잊고 싶은 기억에 대한 말   (예)만취했던 지난 밤 생각 "어제 일은 청보 핀토스 같았어."

국민스포츠로 승화시킨 열정
허구연은 일본식 야구 용어를 제대로 바로잡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1982년 일본의 역사왜곡에 분개해 기존 일본식 야구 용어를 정확하게 바로잡아야 겠다고 결심했다는 이야기에 그의 애국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민스포츠로 성장하는데 있어 이러한 열정도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또 허구연의 노력과 선수들의 성장으로 한국 야구는 마침내 일본이 두려워하는 팀으로 발전하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실제 일본의 감독이나 이치로 선수도 '한국팀과 만나는 것이 싫다. 겁나고 무섭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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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WBC 결승전은 '숙명의 대결'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최고의 명승부였습니다. 아쉬웠지만 잘 싸웠습니다. 5판 3선승제의 한일전이 되어버린 WBC 대회라는 말이 나올 만 했습니다. 다저스타디움은 모처럼 관중들이 가득했습니다. 전체 5만 5천명 중 4만명 이상이 한국 관중이었습니다. 경기는 승부를 가려야 하지만 관중들에게도 스릴과 서스펜스의 한판이었습니다.

마지막 경기는 일본이 먼저 선취점을 내고 추신수가 1점 홈런을 날려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본이 2점을 보태 앞서 3대 1로 앞서 나갔습니다. 그러다 다시 우리팀이 1점을 8회에 보태고 9회말 2아웃에 이범호의 안타로 극적인 3대 3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10회에 이치로에게 통한의 결승타를 맞고 5대 3으로 패배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선발 투수인 봉중근이 1점만 내주고 잘 막아주었습니다. 추신수도 홈런으로 메이저리거다운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한편으로, 일본 선발 이와쿠마 투수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이치로도 스타 선수로서의 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임창용 투수가 10회에 1루가 비어있는 2, 3루 상황에서 이치로에게 정면승부를 한 것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일본은 비신사적 플레이로 매너에서 졌다

일본이
7회말 1루 주자 나카지마가 2루로 달리다 더블 플레이를 막기위해 2루수 고영민의 송구 방해 반칙을 하는 등 비신사적인 플레이를 한 것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고영민은 수비 방해에도 1루로 송구, 더블 플레이를 성공시켰지만 자칫하면 큰 부상을 당할 뻔 했습니다. 일본은 경기에서는 이겼지만 결코 이긴 것이 아닙니다. 매너에서는 이미 한국에 졌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쉬운 결승전 경기였지만, 우리나라 야구팀은 이번 WBC 대회를 통해 몇가지 큰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한국 대표팀이 꾸려질 때 결승까지 갈 것은 예상도 못했습니다. 이번 WBC에서 한국 야구팀에 대한 그 의미를 짚어 봅니다.




한국의 젊은 선수들 '즐기는' 야구에 눈뜨다

이번 WBC 세계야구대회는 우리나라 야구선수들이 야구 자체를 즐기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존의 한국 선수들의 투혼과 함께 경기를 즐기면서 관중과 함께 소통하고 생기발랄한 신세대 선수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과거 국가 대표팀 선수들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어서 다소 애처롭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승부의 세계에서 적당한 긴장감은 좋지만 스포츠 경기를 로보트가 전쟁하듯이 임하는 것은 지금 시대에 어울리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야구를 즐길 줄 아는 한국팀 선수들은 앞으로 '야구가 즐기는 문화'로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네티즌들이나 관중들도 함께 즐기는 야구시대가 열렸습니다.(김태균은 3대 3 동점때 덕아웃서 몸개그를 작렬했는데 별명이 하나 더 생길 듯...)



빅볼 토털 야구를 통해 세계 중심에 서다

우리나라가 과거에는 '스몰볼'이라는 조롱을 받기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야구가 연일 홈런포를 가동하며 진정한 '빅볼'의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김태균은 타점 단독 1위, 홈런 공동 1위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빅볼 야구 뿐만아니라 잘 던지고, 잘 치고, 잘 달리는 토털 야구의 진면목을 과시했습니다. 한국 야구가 세계의 중심이 선 것입니다. 메이저리거 선수는 단 1명 뿐인 한국팀이 메이저리거 선수들이 즐비한 세계 주요 국가대표팀을 연파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아직 젊은 선수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의 토털 야구는 세계를 관통하고 그 중심에 계속 설 것입니다.



대한민국 야구의 '위대한 도전'은 계속된다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은 야구 교과서에는 볼 수 없는 '위대한 도전'이었습니다. WBC가 열리기 전, 기존 주축이던 박찬호, 이승엽 등 대표 선수들이 빠진 한국 국가대표 야구팀은 최약체의 팀으로 평가받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WBC 대회가 열리자 한국 대표팀은 경기가 진행될 수록 더욱 더 강해지는 최강의 팀이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김인식이 있었습니다. 잡초같은 야구 인생을 통해 달인의 경지에 오른 김인식 감독의 '위대한 도전'은 이제 대한민국 야구의 '위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경기 불황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큰 즐거움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이용규가 2루로 달리다 슬라이딩 도중 헬멧이 부서지는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이번 WBC 경기 시스템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결국 일본의 우승을 위한 하나의 장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국팀은 우승은 못했지만 세계 야구계에 의미심장한 획을 그었습니다. 메이저리거가 1명 밖에 없는 한국 대표팀이, 빅리거들이 즐비한 세계 야구 명가 국가대표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아무도 한국 야구를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최종 결승전에서 9회말 2아웃에서도 뚝심으로 동점을 만드는 장면은 커다란 인상을 주었을 것입니다. 비록 일본이 이겼지만 그들도 한국의 저력에 놀랐을 것입니다. 한국팀은 아직 젊습니다. 그리고 스몰볼의 일본 보다 더 경쟁력을 갖고 있는 빅볼 토털야구입니다. 한국야구의 '위대한 도전'은 계속됩니다.

감동적인 투혼과 열정을 다해 WBC 준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이끌어낸 대한민국 선수들 28명과 김인식 감독을 비롯한 코칭진 7명 등 대한민국 국가대표 야구팀에 감사를 표합니다. 그 동안 한국 야구팀이 있어 행복했던 20일이었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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