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9.18 임신 수녀-신부와 키스, 도 넘은 노이즈 광고? 페데리치와 베네통의 성공일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20)
  2. 2009.09.05 강혜정 임신에 타블로의 솔직한 결혼 발표, 그 의미와 감동 by 진리 탐구 탐진강 (23)
  3. 2009.05.07 자식위해 평생 불구가 되신 어머님 전상서 by 진리 탐구 탐진강 (86)


얼마 전 해외 소식 중 임신한 수녀를 모델로 세운 아이스크림 광고가  영국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영국 광고기준청(ASA)은 이탈리아의 유명 아이스크림 업체인 안토니오 페데리치의 소위 '임신 수녀 광고'에 대해 광고 금지 조치를 내렸다는 것입니다. 가톨릭을 조롱하고 왜곡했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안토니오 페데리치가 낸 문제의 광고는 만삭의 수녀가 교회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모습의 사진을 싣고 있습니다. 또한, 광고의 한켠에는 '죄 없는 잉태... 아이스크림이 우리의 종교'라는 자극적 카피문구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안토니오 페데리치는 지난해 7월에도 아이스크림을 든 수녀가 상의를 벗은 신부와 키스하려는 모습의 광고를 내보냈다가 가톨릭계의 강한 반발을 사 결국 광고금지 조치를 당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임신 수녀 광고는 안토니오 페데리치의 광고 전략에 따라 치밀하게 준비된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신부와 수녀의 키스에 이은 신부의 임신인 셈이니까요.


이번에 임신 수녀 광과 문제가 된 것은 영국에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방문 예정인 가운데 발생해 더욱 논란을 거세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부와 수녀는 신성함의 상징으로 고결함을 지켜야 하는 종교의 입장에서 보면 안토니오 페데리치의 광고는 분노를 야기시킬 만도 합니다. 게다가 외교적 문제로 비화된다면 영국 정부 입장에서도 곤란하겠지요. 


사실 유럽에서 기업들의 도발적 광고는 이전에도 자주 있어 왔습니다. 이는 일종의 노이즈마케팅 기법이었습니다. 대표적 업체가 베네통입니다. 이탈리아 패션의류업체인 베네통은 탯줄까지 그대로 달려있는 핏덩이 신생아를 근접촬영한후 이를 이용해 포스터광고를 제작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광고감시위원회는 이 광고를 중단하도록 한 바 있습니다.

일반대중의 감정에 불필요한 충격을 주는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에 나타나기 시작한 이 광고는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지요. 그러나 루치아노 베네통 회장은 아이 탯줄 광고가 '살아있는 이유로서의 사랑'을 주제로 담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문제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이 광고는 이탈리아와 영국에서도 대중의 민감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며 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습니다.


그 후에도, 신부와 수녀의 키스 광고는 베네통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한 노이즈마케팅 사례입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검열관들은 신부에게 키스하는 수녀의 모습을 사진이 들어간 광고가 등장하자 즉각 금지 조치를 결정했습니다. 베네통은 신부와 수녀 복장의 젊은이가 키스하는 모습이 '
사랑이 조직과 제복을 초월한다'는 것을 나타낼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베네통은 센세이셔널한 광고로 여러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지만 이러한 광고 논란이 세계 여러나라에 소개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크게 성공했습니다.


베네통이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충격적 광고를 잇달아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설수를 일으켜서라도 대중의 관심을 유발하는 노이즈마케팅이 효과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베네통은 1980년대 내내 충격적 노이즈 광고 마케팅은 기삿거리가 되며 대중들의 관심받아 왔으니까요. 신부와 수녀의 키스는 물론 흑백 남녀와 황인종 아이, 알록달록한 콘돔의 행진에 이르기까지 베네통이 내놓은 사진 광고는 하나같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했습니다.


1985년 고르바초프 전 소련(러시아)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베네통 광고를 보도 놀란 적이 있습니다. 파리의 시내 도로는 온통 미국과 소련의 국기를 휘감은 두 흑인 아이가 서로 입맞추는 베네통였지요. 고르바초프는 대체 베네통이란 자가 누구냐고 물었을 정도였으니까요. 베네통은 당시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 사이의 해빙무드를 여는 평화의 메신저였을까요.

베네통은 특이하고 통큰(?) 광고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것입니다. 베네통은 결국 전세계 1백50개국에 진출해 5천여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 이탈리아의 글로벌 의류기업로 성장했습니다. 마케팅광고 자체를 놓고 보면 성공했던 것입니다. 왜 베네통은 그런 광고를 했을까요? 베네통의 광고 키워드는 '전세계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합니다. 비난도 받았지만 시대를 앞서가는 자극적 광고는 언어를 초월한 커뮤니케이션 촉진 도구였다는 말입니다.

베네통 광고를 살펴볼까요.
탯줄이 잘리기 이전의 신생아는 생명의 귀중함, 키스하는 신부와 수녀는 종교조차 막을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 한개의 수갑을 함께 찬 흑인 남자와 백인 남자의 손은 인종간 화합, 벌거벗은 에이즈 환자의 시신은 에이즈의 위험에 대한 원색적인 경고 등 지구촌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은유적 이슈 제기가 담겨 있습니다.


창의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베네통은 브랜드 광고 캠페인을 펼친 것입니다. 베네통은 센세이널한 광고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베네통이 글로벌 이슈를 광고에 담아 브랜드를 알리는데 매출액의 4%를 매년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광고가 넘치는 시대에 세계인의 주목을 끌 충격적 소재가 필요했던 베네통 광고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네통 뿐만 아니라 미국의 저가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에어라인도 노이즈 마케팅을 즐겨 구사했습니다. 승무원으로서는 부적절한 옷차림이나 황당무계한 기내 방송 등이 줄곧 언론의 기삿거리가 됐으니까요. 광고가 뉴스 기사로 화제가 되면 입소문을 타고 기업의 인지도는 급상승하게 되는 연쇄작용을 이용한 셈입니다. 여기에다가 호의적 미담이나 기업의 스토리가 더해지면 브랜드 이미지는 더욱 높아지겠지요. 

그러나 기업의 노이즈마케팅은 단기적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를 하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긍정적 기업이미지가 아니라 부정적 인식으로 각인되면 오히려 기업의 활동에 장애요소가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요즘 방송연예 프로그램이나 걸그룹을 비롯 연예인들도 노이즈 마케팅을 자주 사용합니다.

작은 자극에는 꿈쩍하지 않는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과도한 노출을 감행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그렇지만 철학이 없이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노이즈마케팅은 주홍글씨가 되어 부정적 이미지를 회복하는데 엄청난 장애가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모 전자회사의 과거 광고카피처럼 노이즈마케팅은 순간 선택이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이즈 마케팅에 대해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타블로-강혜정 커플이 공식적으로 10월 중 결혼할 예정이라고 밝혔했습니다. 지난 2월에 타블로는 강혜정과의 열애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힌 이후 그 동안 방송과 미니홈피 등을 통해 애정을 과시해왔다는 점에서 타블로다운 솔직한 심경 고백 발표라고 생각됩니다.

타블로와 강혜정은 지난해 말부터 연애를 시작하면서 서로의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타블로와 강혜정 커플은 지난 해 연말에 펼쳐진 에픽하이의 연말 콘서트 장에서 처음 만나 호감을 가지고 교제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강혜정이 평소 에픽하이의 음악을 좋아했는데 지인들과 에픽하이 공연장을 찾았고 뒷풀이 장소에 자연스럽게 동행하면서 타블로와 사랑이 싹트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타블로가 강혜정과의 결혼을 내년 상반기 경으로 생각해 온 것으로 예측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부득이하게 결혼을 앞당기게 됐습니다. 이는 강혜정이 임신 5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속도위반인 셈입니다. 타블로는 강혜정이 임신이라는 점도 공식 발표했습니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열애 사실부터 시작해 임신과 결혼에 이르기까지 밝히는 타블로의 자세는 숨기기에 급급했던 기존 연예인과 차별화되는 것 같습니다. 책임감있고 멋진 남자, 타블로를 느끼게 합니다.

예비 아내 강혜정을 위해 타블로의 당당한 임신 공개 '신선'

그래서 타블로는 네티즌과 팬들로부터 좋은 평가와 함께 축하 메시지가 쇄도하나 봅니다. 힙합그룹 에픽하이 타블로와 배우 강혜정의 결혼 발표 이후 수만명이 에픽하이 홈페이지인 맵더소울닷컴 게시판과 미니홈피를 방문해 축하를 보내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대부분이 "정말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타블로가 책임감있고 믿음직스럽다" 등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갑작스런 결혼 발표 소식에 놀라면서도 두 사람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며 타블로가 강혜정의 평안함을 위해 결혼 발표를 한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낄 수 있어 믿음직스럽다는 것입니다.


 

현재 타블로와 강혜정은 양가 인사와 함께 결혼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고 합니다. 양가 부모와 가족은 물론 친구 그리고 팬들의 축복을 받고 당당하게 결혼하는 타블로와 강혜정 부부 탄생이 얼마 남지 않은 셈입니다. 이미 예비 아빠 엄마인 두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솔직하게 팬들과 네티즌들 그리고 대중들에게 밝히는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타블로는 정형돈의 결혼 축하를 위해 전자깡패 노래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축하를 받아야 할 듯 합니다.

당당하고 책임감있는 타블로의 발표에 결혼 축하 메시지 쇄도

그 동안 타블로와 강혜정은 음악적 취향은 물론 사진 등 여러가지에서 서로 공통적으로 통하는 점이 많았다는 점에서 연애 과정은 물론 결혼 생활도 행복할 것이라고 봅니다. 타블로는 지난 8월 6일 에픽하이의 공식 홈페이지에 마련된 블로그를 통해 속도위반 가능성을 보여준 바도 있습니다. 지난 8월 초 다녀온 일본여행에서 강혜정과 다정히 찍은 사진을 공개한 바 있는데 이것이 예비 허니문 여행이 된 셈입니다.

타블로는 소속사를 통해 결혼 발표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타블로는 강혜정과의 결혼 소식과 임신이 꿈만 같다며 두가기 소식을 동시에 전했습니다. 타블로는 강혜정과의 첫 만남부터 첫 눈에 반했고 그것이 운명임을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타블로의 세심하고 자상한 마음을 읽게되는 대목입니다. 예비 아내이자 엄마를 향한 타블로의 책임있고 따뜻한 사랑을 듬뿍 느끼게 됩니다.

타블로와 강혜정은 내년 중순 쯤에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 합니다. 내년 5~6월경이면 아빠 엄마가 되는 셈입니다. 타블로는 아이가 엄마를 닮아야 한다며 애교있고 위트있는 메시지도 전했습니다. 타블로도 밝혔듯이 세상 그 어느 부부들과 다를 것 없이, 서로를 아낌없이 사랑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를 지켜주며 열심히 살겠다고 했으니 정말 잘 살기를 바랍니다. 두 분의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타블로의 결혼 발표 전문]

결혼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

꿈만 같은 두 소식을 동시에 전하게 됐네요. 첫 눈에 반해 저의 운명임을 알게 된 혜정이와 올해 가을에 결혼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둘, 내년 중순쯤 이쁜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될 겁니다!

내년에 결혼 할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최근에 알게된 반가운 소식에 결혼식을 좀 더 일찍 하고 싶어 준비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올해 초 저와 제 동료들이 독립 회사를 만든 후 수많은 어려움들을 겪었어요. 때론 일 때문에, 때론 개인적인 문제들로. 그럴 때마다 혜정이가 매순간 저의 버팀목이 되어줬어요. 본인도 일이 많았기에 쉽지 않았을텐데, 밤새 일하는 저와 제 동료 모두를 매일 매일 챙겨줬고 저의 꿈을 자신의 꿈으로 삼아 늘 위로해주고 응원해줬어요. 매사에 저를 아껴주고 배려해주는 그녀의 마음 덕분에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저에겐 세상 그 무엇보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평온함이 우선입니다. 혜정이가 조금이라도 더 마음 편히 저와 함께 할 미래를 준비할 수 있길 바라며 이 소식을 전하는 겁니다.

행여나 언론의 지나친 관심이 혜정이에게 스테레스를 주게 될까봐 걱정도 되지만, 너무나도 행복한 소식인 만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많은 이들의 축복이 그녀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부디 많이 축복해주세요!

아이가 엄마를 닮아야하는데... 꼭 그러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상 그 어느 부부들과 다를 것 없이, 서로를 아낌없이 사랑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를 지켜주며 열심히 살겁니다! 많은 축복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타블로는 이 날 오후 3시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모두들 축하해줘서 고맙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편+아빠가 되겠다”고 영어로 감사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타블로는 3일전인 9월 2일에도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밝혀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이 날 강혜정과의 결혼 발표가 된 셈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칠순이 다 되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여전히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계십니다. 호랑이같은 아버지와 함께 부부의 연을 맺은 이후 어머니는 청춘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자식들은 대도시에서 결혼해 살고 있고, 막내 남동생이 가까운 도시에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곤 합니다.

그러나, 장남인 제가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지도 못해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다리 한쪽이 불편하십니다. 어머니가 불편하신 다리로 평생 산골에서 힘든 농사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어머니는 제게는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불행하게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절게 된 사연과 혼자서 저를 키운 새색시 시절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은 까마득한 두메산골입니다. 아직도 온통 산으로 뒤덮인 고향은 비포장도로를 통해 하루에 세 번 버스가 다닐 정도로 산골 오지입니다. 부모님은 산골 외딴집에 살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름 휴가 만큼은 시골 집에 동생들 가족들과 일정을 맞춰서 함께 가곤 합니다.

어머니는 도시에서 고등교육을 받으신 분이셨고 아버지는 초등 교육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지난 1960년대는 교육 환경이 매우 열악한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시골 마을에 잠시 머물던 시절에 우연히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청년 시절을 '주먹자랑 하지 말라'고 알려진 벌교에서 지냈던 분으로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결혼 후 신혼 시절에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는 군대 입영을 기피한 상태였는데 아버지를 체포하기 위해 헌병대에서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헌병대를 피하기 위해 초가집의 흙벽을 무너뜨리고 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 후 아버님을 몇년 동안을 도시에서 숨어지냈습니다. 당시에는 군대에 간 후 사망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 군대 기피가 많았다고 합니다.

갑자기 어머니는 새색시가 생과부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홀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고 땔감을 구해 생활해야 했습니다. 당시 시골집은 초가집이었고 나무 땔감으로 밥을 짓고, 소꼴을 베어 소를 키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전기도 가스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녁엔 방에 호롱불을 밝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임신 중이었습니다. 혼자서도 힘든데 홀몸이 아닌 상태로 논농사 밭농사를 짓고 소까지 키워야 하는 고난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겹게 일을 하셨습니다. 

어느 날, 혼자서 열심히 밭 일을 하다보니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서둘러 밭에서 일을 끝내고 머리에는 소꼴을 가득 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사고가 터졌습니다. 길가에 뻗은 칡넝쿨에 걸려 어머니가 넘어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넘어지던 중 머리에 인 소꼴에서 낫이 떨어졌습니다.

불행하게도, 낫은 어머니 앞에 날이 선 상태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예리한 낫의 날에 닿아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로 어머니는 무릎의 힘줄이 끊기는 대형 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사고를 당하고도 치료를 할 병원도 없었습니다. 곁에는 아버지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어머니는 당시 저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무거운 몸이다보니 칡넝쿨에 걸려 균형을 잡지 못한데다 낫을 피하지 못해 다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임신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것도 몸 속의 아이에게 해가 될까봐 못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어머니는 그 사고로 인해 한 쪽 다리가 불편한 불구가 되셨습니다. 그러한 몸으로 어머니는 다시 농사를 짓고 혼자서 저를 낳아서 길렀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무도 그렇게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갓 결혼 후 남편도 없이 무려 5년을 그렇게 농사도 짓고 저를 키웠던 것입니다. 저는 아가 시절을 마당이나 밭을 기어다니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마당에서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나 닭과 함께 놀고, 밭에서는 지렁이가 친구였습니다. 어머니는 집에서도 일을 하고 계시고, 밭에 가서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워낭소리는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저의 유년 시절은 밤낮으로 어머니 밖에는 없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호롱불 밑에서 제게 한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5살 때 처음 어버님이 고향으로 돌아오셨지만 저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만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고향에 돌아오신 후에도 집안 일은 하지않고 한량으로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싹텄는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마음의 화해가 어느정도 되었고, 아버지도 나이가 들면서 과거와 달리 농사 일이나 집안 일도 했습니다.

제 나이가 5~6세 정도일 때도 저는 동네 아이들과 산에 올라가 고사리 손으로 나무를 하곤 했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것은 오직 어머니 일을 돕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저의 일을 돕는 역할이었습니다. 청소년기 시절에도 방학 동안 내내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돕는데 땀을 흘리곤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제가 어머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 때부터 어머니 혼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돕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왜 다리 하나가 불편하게 되셨는지 얘기를 처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어머니가 다리를 절면서 걷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불구가 된 것이 모두 제 탓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어머니를 보면, 그 젊은 시절에 임신한 몸으로 어떻게 다리가 잘리는 고통을 참고 이겨냈는지 가슴이 아프곤 합니다. 제가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늘 변함없이 생각하는 정신적 지주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벼가 익어가는 여름 날, 논둑을 걸으면서 저에게 하신 말씀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단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어머님은 소중한 등불과 같았습니다. 제가 방황하거나 잘못 가려하면 언제
나 등대처럼 저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에 비하면 만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다리가 잘리는 듯한 고통을 어떻게 참고 견디셨습니까. 그리고 홀로 저를 어떻게 키우셨나요.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고생만 하셨습니다. 특히 홀로 키웠던 저를 위해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유년시절의 기억 마저 희미하지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힘든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자주 연락도 못드려 죄송합니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해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지금은 자식들도 모두 결혼해 잘 살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어머니의 귀중한 가르침과 사랑 덕분입니다. 아버님께는 죄송하지만 오늘은 어머니가 그리워집니다. 언제나 힘을 주시는 어머님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찾아뵙겠습니다. 밤낮으로 기온차가 큰 데 건강 조심하세요.

언제나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부모님을 생각해보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