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손'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9.22 맏며느리 아내의 명절증후군 극복요령 3가지 by 진리 탐구 탐진강 (14)
  2. 2009.07.27 부모 5명 모시는 천사표 아내의 결혼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83)
  3. 2009.04.16 아내에게 거짓말 청혼 "회사에서 잘렸어" by 진리 탐구 탐진강 (97)
  4. 2009.01.24 장손과 맏며느리가 명절이 힘든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30)


올해 추석 명절은 서울 및 수도권 물난리로 조금 마음이 무겁습니다. 집중호우 물폭탄으로 피해를 당해 못오신 친척 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명절이 되면 가장 고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맏며느리입니다. 제 아내는 장손 장남과 결혼한 맏며느리입니다. 명절 마다 항상 바쁩니다.

명절이 아니더라도 관혼상제를 비롯한 집안의 경조사를 챙기느라 항상 분주합니다. 그렇지만 크게 불평불만을 표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고맙기만 합니다. 올해는 보름달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내는 몇일간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느라 온갖 과일과 나물 그리고 음식들을 준비했습니다.

아이들이 크다보니 엄마를 돕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태산같이 할 일이 많은데 항상 일손은 부족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수씨가 맏며느리인 아내를 잘 돕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 친지들이 아내의 역할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내도 명절 증후군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색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명절 준비를 두려워하지 않고 즐겁게 받아들인다

아내가 명절을 앞두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먼저 집안 청소입니다. 가족 친지들이 우리집에 방문하기 때문에 아내는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여념이 없습니다. 아이들과 저도 돕기는 하지만 아내가 하는 일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아내는 힘들지만 괜찮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가족 친척 등 사람들이 우리집에 찾아오는 것에 대해 즐겁다고 합니다.



아내는 늘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겁게 맞이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그렇지만 찾아오는 친지들이나 손님들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맏며느리로 태어난 것인지 스스로 맏며느리 역할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것인지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리고 상차림 준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장도 여러번 봐야 합니다. 대가족의 맏며느리로서 책임감이 강해서인지 혼자서 대부분 준비를 합니다. 물론 저도 밤도 까고 전도 부치기도 합니다. 제수씨도 명절 하루 전 날에 와서 열심히 도와주는 것도 아내에게 든든한 우군입니다. 작은 어머니들도 도와주기만 다른 일들이 있어 늘상 늦게 찾아옵니다. 그래도 큰 힘이 됩니다. 아내는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 좋다고 합니다.

명절 증후군이 있지만 현실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아내도 명절 증후군이 없지는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집에 다 함께 모이는 것이 오히려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맏며느리가 아니었으면 교통체증에도 불구하고 멀리 이동해야 하는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런 걱정을 하지않아도 되기에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늘상 긍정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리고 아내는 가족이 화목한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제수씨가 둘이 있는데 둘 다 아내의 말을 잘 듣는 편입니다. 명절이나 제사에도 일에 대해 당연히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그래서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업무 분담이 잘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각자 설거지를 담당하기도 하고 전을 만들기도 하고 채소를 다듬기도 하는 등 물흐르듯이 일이 착착 진행됩니다. 아내가 맏며느리로서 진두지휘를 잘 하나 봅니다.

명절 증후군에 대해 아내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명절을 맞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즐겁게 명절을 보내면 오히려 더 즐겁세 생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맏며느리를 부모님을 비롯한 일가 친적들이 모두 좋아하는 이유는 항상 긍정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인 듯 합니다. 따라서 명절 증후군이 닥치기 전에 사전 차단이나 예방이 되는 것입니다.

남편과 가족들이 맏며느리의 서포터즈가 되어야 한다

아내는 가족의 경조사는 무조건 제일 먼저 챙깁니다. 모든 가족 경조사에는 저희는 항상 참석합니다. 장손이다보니 그런 이유도 있지만 아내는 당연히 가족 친지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순위가 높은 것이 가족인 셈입니다.

명절이 끝나면 아내는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의 안마사가 되곤 합니다. 어깨라도 주물러 주고 당분간은 아내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를 합니다. 집안 일에 대해 고맙다는 칭찬을 해줍니다. 남편의 칭찬 한 마디가 아내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는 셈입니다.

저는 장보기를 비롯 송편 만들기, 밤까기, 아이들 돌보기, 차례상 준비 등 여러가지 일들을 함께 합니다. 작은 아버지나 남동생이 많이 도와주어 한결 가벼운 손입니다. 장손인 제가 먼저 솔선수범해 여자들과 함께 일을 하면 다른 일가 친척 남자들도 자연스럽게 함께 도와주면서 일하게 됩니다.

일부에서는 명절 때 마다 가족들 사이에 갈등이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실제 명절 때 가족들끼리 갈등으로 심각한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를 본 적이 많습니다. 우리 집에 지끔까지 명절을 맞이해 서로 싸우거나 갈등이 생긴 적이 전혀 없습니다. 맏며느리가 언제나 중심적인 역할을 잘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해 동안에도 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이벤트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 가족들이 서로 자주 만나고 이해의 폭이 넓다보니 갈등의 요소가 없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고생했다는 감사의 말 한 마디라도 해주어야 겠습니다. 저희 가족은 명절 이후 서로 전화를 주고받으며 '수고했다'는 말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아내도 그런 말 한 마디를 들으면 명절 동안의 피로가 말끔히 씻어지나 봅니다. 가족들의 따뜻하고 훈훈한 표현 하나가 명절증후군을 없애는 비결인 셈입니다. 맏며느리인 아내가 고마운 이유는 가족들에게 먼저 잘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족 친지들이 먼저 고마움을 표시한다는 것입니다.

주부 명절증후군에 대해

주부 명절증후군은 일반적으로 어지럼증을 많이 호소하고 두통이나 소화불량, 복통, 손발마비 증상, 졸도,호흡곤란, 심장의 두근거림 등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심할 경우에는 병원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입니다. 이런 증상은 경쟁심이 많고,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의 주부에게서특히 많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런 명절증후군은 전통적인 관습과 현대적인 사회생활이 공존하는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명절증후군을 해소할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명절 준비로 인해 책상다리를 하고 오래 앉아있을 경우에는 앉은 상태에서 무릎을 곧게 편 다음 양 발목을 좌우로 가볍고 빠르게 흔들어 근육과 인대를 이완시키고 혈액순환이 잘 되도록 한 후 일어서는 게 좋다고 합니다.

연휴가 지나 갑자기 통증이 몰려오면 찜질로 완화시키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관절이 부었을 땐 냉찜질을 해 부기를 가라앉히고, 3~4일 통증이 계속될 땐 온찜질로 혈액순환이 잘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명절 증후군 극복요령

다시 생체리듬을 되찾으려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는 시간은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답니다. 직장인은 출근 첫날 업무량을 조금 줄이고 중요한 결정은 잠시 미루는 방법도 있습니다.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잠깐 낮잠을 자는 것도 생산성을 올리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30분 이상 낮잠을 자면 밤잠을 설칠 수 있으므로 주의 해야 합니다. 조금 일찍 퇴근해 음악감상을 하거나 산책과 스트레칭 등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푸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1. 긴장성 두통
명절 피로와 스트레스로 원인을 알 수 없는 '긴장성 두통'이 흔히 40대 여성에게 많이 발병한다고 합니다. 뒷목이 뻐근하게 아프고 양측 관자놀이가 조여오는 느낌이 드는 경우에는, 어두운 곳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거나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을 복용해야 합니다.

2. 감기
일교차가 심한 시기인데다 피로가 쌓이면 면역기능이 약해져 쉽게 감기가 걸릴 수 있습니다. 과일이나 채소로 비타민C를 보충하고 갈근차나 오미자차 등이 감기예방에 좋다고 합니다.

3. 주부 우울증
명절 연휴 뒤 무기력증이나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주부들이 많다고 합니다. 식구들의 뒷바라지에 지치거나 친지와의 긴장관계 그리고 '나몰라라'하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졌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꼭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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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종손의 며느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종손의 며느리는 챙겨야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대가족의 맏며느리로서 제사는 물론 경조사를 모두 챙겨야 합니다. 사실 대가족을 모두 챙기면서 생활한다는 것이 요즘 시대에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내는 부모를 무려 5명이나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제 부모가 4명이고 아내의 어머니 1명을 포함해 모두 5명이나 됩니다. 저에게는 저를 낳아준 부모와 키워준 부모가 각각 있습니다. 아내는 아버지가 나이 50이 넘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후 어머니 홀로 자식들을 키웠다고 합니다. 아내는 딸 넷에다 아들 하나인 집안의 셋째 딸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언제나 5명의 부모를 모셔야 하는 일에 대한 부담이 큰 편입니다. 제 친부모님은 시골 농촌에 살고 계시고 저를 키워준 부모님은 서울에 살고 계십니다. 그리고 장모님은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바로 아래 층에 살고 계십니다. 저를 키워 준 부모님은 사실 큰 아버지 내외이신데 슬하에 자식이 없어 제가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 모시면서 함께 지냈고 거기서 공부를 했습니다.

대가족의 장손의 며느리로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아내는 늘 밝은 모습입니다.

장모님은 셋째 딸인 아내와 마음이 잘 맞는 편입니다. 결혼 후에는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지금은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장모님은 우울증도 심했고 심장이 좋지않아 몇년전 중환자실에 입원한 적도 있었습니다. 장모님이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습니다. 수술을 하더라도 신장에 투석을 하면서 길어야 5년을 살 것이란 청천벽력같은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수술도 하지않고 장모님은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십니다.

당시 저는 어차피 수술할 것이라면 수술 대신 기다려보자고 했었습니다. 다행히 장모님은 점차 회복되어 중환자실에서 퇴원해 저희 아파트에 몇일간 머물렀습니다. 제가 제안했던 일입니다. 저희 아파트에 머무르는 동안 장모님의 건강은 더욱 좋아졌습니다. 그 후 저는 장모님이 아예 저희 아파트 단지로 이사하는 것을 권했습니다. 아내가 있는 곳에 가깝게 사신다면 더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장모님은 건강하십니다.

제가 장모님을 모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 때문입니다. 저는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매우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저와 결혼해 준 아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아내는 충청도 제천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의 생활을 서울에서 보냈으니 서울 사람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내는 도회지 느낌이 충만한 여자였습니다. 아내는 당시 저를 만난 이후 저의 궁핍하고 불행한 삶을 알았지만 저와의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가족은 언제나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는 사랑과 희망입니다.

저는 총각 시절 저와 결혼한 여자들은 불행한 삶을 살 것이라는 생각이 가득했었습니다. 그래서 불행을 제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와 사귀던 여자에게 솔직히 말했습니다.
"나는 부모가 4명이다. 그래도 나와 같이 결혼해 살 수 있겠니? 나는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

당시 그 여자는 그래도 저와 결혼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아내입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왜 나와 결혼했어? 보잘 것 없는 나에게."
"당신이 불쌍했어. 나라도 당신을 도와주고 싶었어. 그리고 날 굶겨죽이지는 않겠던데. (깔깔깔)"

그랬습니다. 아내는 청년 시절의 제가 불쌍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제가 당시에 다소 염세주의적인 사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만난 이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결혼한 이후 저는 불행이 아닌 행복의 시작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행복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주말농장 텃밭에서 옥수수를 따서 맛있는 별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개 희망이 없다면 염세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내를 만나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내는 5명의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저의 4명의 부모님에게는 사랑스런 맏며느리입니다. 그리고 장모님에게는 사랑스런 딸이고 믿음직한 사위의 아내입니다. 아니, 장모님은 저를 장남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와 아내는 5명의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맏며느리가 된 이후 저희 대가족은 자주 모이곤 합니다. 아내가 늘 챙기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이 많아 무뚝뚝하던 가족들이었지만 이제는 함께 모이면 웃음이 많아졌습니다. 저도 그래서 장모님을 부모님과 같이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팔불출이라 생각하더라도, 저는 아내를 천사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와 가족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천사와 같은 은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가족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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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달이 아내와 결혼한 지, 13주년이 되는 달입니다. 지난 14일이 그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커플없는 사람들이 자장면 먹는 '블랙데이'라고도 한다던데. 그런데 올해에도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렸습니다.

낮에 휴대폰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우리 허니 결혼기념일 축하해. 행복한 하루 되길 바래. 당신의 여보가."

그제서야 결혼기념일인 것을 알았습니다. 여전히 익숙치 않은 답신 문자를 보냈습니다.
"헉. 오늘이네. 일찍 퇴근해야지."

참으로 무심한 남편입니다. 사실 문자로 이렇게 주고받은 것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얼마나 남편이 무심했는지, 아내는 올해 이전의 시기에는 결혼기념일이 되기 몇일 전부터 알려주곤 했었습니다. 가정 보다 일에 몰입했던 젊은 날들이었습니다. 올해는 아내가 의외로 문자를 보냈는데 아마도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남편의 문자를 받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일찍 퇴근해 함께 소박한 외식을 했습니다.

벌써 13년여가 지났지만, 결혼기념일을 생각하니 아내를 거짓말로 속여서 청혼을 했던 옛 추억이 떠오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가족의 장손인데다 가진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놈과 결혼해준 아내가 정말 고맙습니다. 아내(이하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은 어떠한 예측도 없었습니다. 당시 아리따운 처자였던 그녀와 첫 만남은 우연이었습니다.

당시 그녀의 친구 K와 업무상 알고 지냈는데 K가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K가 자리를 주선해 준 것이 아니라 그녀의 친구인 K가 다른 남자에게 그녀를 소개팅시켜주는 자리에 제가 동석하게 된 것이 우연의 시작이었습니다. K는 소개팅 자리에 뻘쭘하니까 저랑 같이 가자고 해서 동행한 것이 우연의 시작이었습니다.

오직 가진 것이라고는 무모한 자신감 밖에 없었던 저는 넉살도 좋게 남의 소개팅 자리에 참석해 그녀와 다른 남자의 소개팅을 잠시 지켜보면서 그녀에게 더욱 마음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처자의 소개팅 상대 남자가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주지않고 혼자서 술만 잔뜩 시켜놓고 엉뚱한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았습니다. 원래 말이 없는 편이었는데 그 자리에서는 어떤 용기로 왜 그랬는지.

처음 본 그녀의 모습에 한 눈에 반했던 겁니다. 그녀와의 기회는 앞으로는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녀와 소개팅 자리에 나왔던 남자는 저의 방해공작(?) 때문인지 다른 약속이 있다고 갑자기 일어섰습니다. 그냥 나가버리려는 그 남자에게 제가 "식사 값을 지불하고 가시는 것이 어떻겠는지" 조심스럽게 묻자, 그는 싫은 눈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저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더니 일부 식사값은 내고 나갔습니다. 당시에 그 분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에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일인데 조금은 심하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날은 잘 되었다 싶어 아내와 K와 함께 노래방에 가서 실컷 흥겹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해할 수 있어 소개하자면 그녀의 친구 K는 이미 기혼이었으니 들러리일 뿐이었습니다. 당시까지 살아오는 동안 어떤 여자에게도 바래다주지 않았는데 그녀에게는 처음으로 택시를 타고 집에 까지 바래다 주었습니다. 그 날 택시에서 저는 인사불성으로 잠이 들어 오히려 그녀가 저를 걱정하는 처지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한심한 놈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매일 업무상 술자리가 많았던 저는 밤 10시 이후 몰래 빠져나와 그녀의 집 앞에 나타나 데이트를 했습니다. 물론 갈 곳이 없으니 맥주집이 대부분의 데이트 장소였습니다. 그런 만남이 계속 되는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해가 바뀌고 만남은 계속 됐습니다.


그녀와 이제는 결혼을 해야 겠다고 결심을 했지만 어떻게 청혼을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아는 선배의 조언을 받아 그녀가 나와의 결혼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마음을 알고 싶었습니다. (사실 사랑하고 있지만 제가 가난한 집안의 장손이라는 책임감이 엄습해오면서 그녀가 고생할 수도 있는데, 원하지 않는 결혼에 매달리게 되면 그녀가 불행할 수도 있어 거절하면 그녀의 행복을 위해 깨끗하게 포기하겠다는 각오도 있었습니다.)
 
저녁에 자주 만나던 그녀의 집 앞에 있는 호프집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미 선배와 1차에서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녀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말없이 500 CC 맥주만 들이켰습니다. 그녀의 궁금증이 커져 갈 무렵, 고개를 푹 숙이고 더욱 심각한 표정을 짓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나, 회사에서 잘렸어. 시골에 내려가려고 해. 우리 시골에서 내려가서 같이 살자."
청천벽력 같은 저의 이야기에 그녀는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습니다.

"정말? 거짓말 아니야?"
"응. 정말이야. 시골 가서 같이 살자."
그녀는 제가 이렇게 심각하게 이야기한 것도 처음이지만 거짓말을 못하는 저를 잘 알고 있었기에 말문을 맏고 한참 동안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가 생각하는 동안에도 저는 혼자서 맥주만 마셨습니다. 사실은 '그녀가 어떤 말을 꺼낼까' 속도 타고 목이 타서 맥주를 계속 마신 것이었습니다. 잠깐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천년의 시간 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래. 시골 가서 같이 살자."
갑자기 하늘에서 일곱 색깔 무지개가 나타나고 환희의 교향곡이 울려퍼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행복한 표정을 숨기고 맥주만 계속 마셨습니다. 이제는 속으로 기뻐서 마셨습니다. 마음은 날아갈 것 같고 쾌재는 부르고 싶지만 억지로 참으면서 맥주를 마셨습니다.
 
미안하고 이기적인지 모를 청혼이었지만, 이제는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됐으니, 얼마나 기쁘지 아니한가. 그렇게 몇십분 동안 혼자 만의 기쁨을 만끽한 후 결국 그녀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거짓말 하고는 또한 참지 못하는 성미라서 이실직고했습니다.

"사실은 회사 잘렸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어."
깜빡 속은 그녀는 저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구 저의 온 몸을 구타했습니다. 아무런 아픔을 느낄 수 없는 구타를 실컷 행복하게 맞이 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녀는 만나는 동안 저의 인생을 조금씩 알고있었기에 너무 불쌍해 거절할 수 없었고 자신이라도 곁에 있어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도회지에 자란 그녀가 시골 생활을 어찌 안다고 그런 무모한 결심을 했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 날 이후 일사천리로 결혼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에도 결혼식에 이르기까지는 양가 부모의 반대와 봉착해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해서 예쁜 두 딸아이를 두고 잘 살고 있습니다. 아내는 장손의 아내이자 맏며느리로서 집안 어르신들 잘 모시고 아이들 잘 키우는 현모양처입니다. 그리고 모자란 남편을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도 홀로이신 장모님을 먼저 생각하고 잘 모시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아직도 표현에는 항상 서투른 남편이지만, 단지 믿음 하나만으로 부족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준, 착한 그녀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날 당시 이후 스토리는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다음 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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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나의 아내는 내가 대가족 집안의 장손이어서 명절이 되면 힘들다. 맏며느리로서 역할과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모든 제사를 장손인 내가 모시기로 해서 명절 차례 음식도 준비해야 한다.

이번 설날 명절도 마찬가지다. 벌써부터 차례상 준비하고 집안 청소하고 분주하다. 게다가 장손이다보니 세뱃돈도 제일 많이 나간다. 어르신들께 용돈도 드려야한다. 장손의 맏며느리로 산다는 것은 일반 주부들 보다 몇배는 힘든 일인 것 같다.

설날 차례상 준비 및 세뱃돈 과다 지출 문제
아내가 어제 저녁에 걱정을 한다. 설날 준비로만 50만원이 넘게 지출이 될 것 같다고 한다. 차례(茶禮) 음식을 만들 나물이나 과일 등 비용이 엄청 비싸다고 한다. 고사리 조금 샀는데 2만원이란다. 아내는 밤, 사과, 감 등이 각각 얼마씩이라고 남편에게 설명하는데 벌써 가격을 잊어버렸다.

세뱃돈도 만만치 않은가 보다. 나의 아버지쪽 형제자매만도 8남매이다보니 자손들이 많은데 처가쪽도 5남매나 된다. 나도 4남매이니 적은 편은 아니다. 아마도 아이들 세뱃돈과 어르신들 용돈으로 나갈 비용도 수십만원은 될 듯 하다.

차례 음식 준비를 도맡아 해야 하는 맏며느리
설날 차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대부분 아내의 몫이다. 내가 조금 도와주기는 하지만 조족지혈 수준일 것이다. 이번 설날에서는 더 많이 도와주어야 겠다고 생각해본다. 작은 어머니들이 이번 설에는 일찍 와서 차례 음식 준비를 거들어주면 좋겠다. 그런데 늘 작은 어머니들은 늦게서야 오기 때문에 아내는 불만이다. 그렇다고 작은 어머니들께 뭐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아내는 크게 불만을 말하지 않는다. 작은 어머니들이나 동서들, 동생들에게 웃는 얼굴로 대한다. 힘든 내색도 할만 한데 가족들 모이면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참으로 대단하다. 맏며느리로 사는 것이 항상 힘들 법도 한데 말이다. 맏며느리는 명절 뿐만아니라 결혼, 생일 등 가족 경조사를 모두 챙겨야 한다. 장손은 늘 집안 행사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명절에는 할머님을 비롯 집안 어르신들 인사할 곳도 많은데 싫은 내색을 하지않고 모두 챙기는 아내다.

민족의 최대 명절이라는 설날을 맞이해 이번에는 좀 더 아내를 많이 도와주어야겠다. 장손의 아내로서 십여년 이상을 한결같이 어르신들 잘 모시고 알뜰살뜰 살림 잘하고 집안의 화목을 위해 늘 애써준 아내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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