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설작업'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1.09 내 나이 45세, 민방위 재소집 문자 '황당' by 진리 탐구 탐진강 (73)
  2. 2010.01.06 폭설에 출근 6시간 vs 일본 공항에 대기 5시간, 두 황당 사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87)
  3. 2009.12.08 남자가 군대를 가야하는 이유 10가지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9)
  4. 2009.09.22 군대일기 수양록 '9월의 첫 눈' 사실일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1)


회사에서 열심히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데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대강 살펴보니 '민방위...'라고 시작돼 스팸인 것 같아서 바로 휴대폰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 다시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뭔가요? 민방위대원에게 보내는 내용인 것입니다. 순간 '이상하네, 내가 아직도 민방위대원인가?' 곰곰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민방위대원이 아니었습니다. 제 나이가 우리나라 기준으로 45세이니 이미 민방위대원 편성에서 제외된지 한참 지난 상태였습니다. 현행 민방위대 편성 복무 연령은 만 40세이기 때문입니다.

민방위대원 편성 연령은 만 40세 까지   

이건 분명히 잘못 보낸 문자메시지였을 것입니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남자가 군대 다녀와서 예비군을 지나 민방위가 되면 청춘도 끝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게다가 민방위 마저 편성 해제되면 그 때는 해방감도 들지만 한편 기분이 우울하기도 합니다.

여자가 폐경기가 될 때 느끼는 감정같이 남자로서 역할을 못한다는 자책감도 조금 느끼게 됩니다. 대한민국 남자로서 군대는 국방의 의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치는 통과의례이지만 한편 민방위가 끝나면 시원섭섭함과 허전함도 드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유심히 쳐다보게 됐습니다.

"민방위대원 제설작업 4시간 참여시 2010년도 교육면제 - 신청문의 각동 주민센터"


혹시 아직도 민방위대원으로 편성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니면 과거 민방위 훈련이나 소집에 빠진 적이 없었는지 돌이켜 보기도 했습니다. 민방위 소집 훈련은 받지 않은지 벌써 4년이 넘었습니다. 민방위 졸업한지 4년여 만에 다시 재소집을 받은 셈이 되었습니다.

혹시나 군대 시절 작업의 귀재였던 저를 알아보고 복귀를 명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냥 모른 체 하고 문자 메시지 보낸 곳으로 전화를 해볼까 장난스런 생각하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잘못 보낸 문자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문자 이야기를 하니 '다시 민방위대 재입대 입소를 축하한다'고 놀리며 한바탕 폭소가 터졌습니다.

'민방위대 재입대 축하' 한바탕 폭소 

나중에 뉴스를 찾아보니 고양시가 민방위대원을 동원해 이면도로와 인도 등에 쌓여있는 눈을 치우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대책이라고 합니다. 직장민방위대와 지역민방위대에 문자를 발송해 폭설에 따른 제설작업 자율 참여자를 문자로 모집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자율 동원 참여자에게는 올해 받아야 할 4시간 짜리 민방위 교육을 면제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문자 메시지가 폭설 이후 도로나 인도에 여전히 쌓여있는 눈을 제거해 시민들의 불편을 줄이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 긍정적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저와 같이 이미 민방위가 끝난 사람에게도 잘못된 문자를 보내는 것은 한 남자를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제대로 확인도 하지않고 무차별 문자를 보낸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듭니다. 조금 황당한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잊고 지냈던 민방위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혼자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 글이 유익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을 클릭해 추천 한방 주시는 따뜻한 배려와 센스를 부탁드립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기상 관측 이래 사상 최대의 하루 적설량을 나타낸 서울 및 중부지역의 대폭설은 여러가지 기막힌 사연도 속출했습니다. 엊그제 폭설로 인해 새해 첫 출근하던 직장인들에게는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 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던 셈입니다. 이번 폭설로 인해 황당하고 안타까운 두 가지 사연을 소개합니다.

제가 들었던 가장 황당한 사연은 출근을 무려 6시간에 걸쳐 했던 K씨의 이야기입니다. K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용인의 집을 나섰습니다. 용인에서 직장이 있는 서울로 향하는 통근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갑작스런 폭설이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 늦더라도 출근에는 크게 지장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다른 대중교통 수단에 비해 통근버스는 중간에 정차하지 않고 곧바로 회사로 달리기 때문에 오히려 안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출발 후 몇 분이 지나자 보기좋게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용인에서 서울행 고속도로로 진입해야 하는데 아예 버스가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고속도로를 향해 진입하려는 차들이 몰려 버스가 거의 꼼짝도 못했습니다.

단 2km를 가는데 무려 2시간이 걸렸다

겨우 고속도로에 진입했을 때는 출발한지 이미 2시간이나 지난 상태였습니다. 단 2km를 가는데 2시간이 걸렸던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이없었습니다. 1시간이면 충분히 회사에 도착할 시간이었습니다.

벌써 9시 출근 시간을 넘겼지만 통근버스에 탄 직장인들은 고속도로에 진입한 이상 금방 쌩쌩 달려 회사로 갈 수 있을 것이란 작은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장, 고속도로가 폭설로 인해 통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꼼짝없이 도로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긴급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빨리 고속도로 통제가 풀리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슈퍼맨이 나타나 자신들의 버스를 들어다 회사 앞에 사뿐히 내려놓아 주길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영화에서나 있는 장면일 뿐이었습니다. 할 수없이 통근버스는 국도로 들어가 거북이 걸음이지만 안양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거기도 정체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오줌이 마려운 사람들은 중간에 도로에 내려 급한 일을 봐야 했습니다. 그러다 겨우 안양 근처에 들어섰을 때 이미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이었습니다. 서울까지 버스로 가다가는 퇴근 무렵에나 도착할 것 같았습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이미 출근을 포기했습니다. 다시 수원으로 버스를 돌려 집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6시간 만에 출근하자 동료들 "이제 퇴근하세요"

K는 그래도 출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도중에 내려 가까운 곳의 지하철을 타기로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히 지하철은 평소보다는 조금 느리지만 달려 주었습니다. 생고생 끝에 서울 직장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 시간은 오후1시였습니다. 무려 6시간에 걸쳐 출근을 한 것입니다. 동료들은 K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이제 퇴근하세요. 출근하는데 6시간 걸렸으니 퇴근하려면 지금 출발해야 해요."

             중국 내륙의 후난성 폭설로 인민해방군 장갑차도 동원되는 필사의 작전이 시작됐다 

얼마나 K는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웃지 못할 K의 사연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Y씨의 에피소드입니다. Y는 일본 여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는 분입니다. 연말 연초 장기 휴가를 사용해 모처럼 일본의 처가에 들러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K의 장인 장모는 한국인 사위를 욘사마로 부른답니다. Y로 시작하면 욘사마인 모양입니다.

일본 공항에서만 5시간 대기, 난민 신세였다

그런데 한국의 폭설은 일본 공항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 공항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 공항과 비행기 편이 문제였습니다. Y는 폭설이 내린 4일 항공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정 시간에 비행기가 도착하기 않아 출발이 2시간 연기됐습니다. 곧 비행기가 출발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보였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딸이 있어 더욱 기다림은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결항이면 기다리지는 않을 터인데.

                    자연재해나 폭설은 비행기 항공편의 결항이나 연착과 같은 사례가 많다 

그러나 2시간이 지나도 비행기는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비행기가 일본 공항에 도착해야 출발이 가능한데 한국에서 출발이 늦고 기상 상태로 인해 연착되고 있었습니다. Y 부부는 결국 일본 큐슈 공항에만 꼬박 5시간을 무료하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다 되어 갔습니다. 폭설은 해외 여행객들에게도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준 셈입니다.  

사실 저도 10여년전 홍콩에 출장을 갔다가 태풍이 불어 공항에서만 6시간 이상을 무작정 대기한 적이 있어 그 고통을 이해합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 구석에 기대어 기다리는 심정은 국제 미아 난민이나 노숙자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Y는 그래도 무사히 아내와 어린 딸이 한국에 올 수 있었다며 안도의 한 숨을 쉬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한 K나 Y의 이야기는 이번 폭설로 인한 피해 사례에서 일부분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K와 함께 출근도 못하고 도로에서 5시간 이상을 꼼짝없이 기다리다가 되돌아간 수많은 직장인이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가 결항되어 아예 하루를 포기한 여행객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계약 건이 있는데 폭설로 바이어를 만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번 폭설은 어떤 이에게는 아름다운 싸리눈이었지만 다른 이에게는 악몽과 같은 기억이 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대자연 앞에 나약한 존재에 불과한가를 일깨워준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강추위 한파 동장군이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를 강타할 것입니다. 건강을 잃지 않도록 단단히 방한복을 챙겨입어야 겠습니다. 눈길과 빙판 길에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 걸어야 겠습니다.  모두 건강 조심하세요.

[참고] 러시아의 제설작업은?
우리나라는 작년에는 2센티의 눈에도 서울이 마비되는 아수라장이 벌어졌고, 새해 시작부터 폭설에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자연 현상인 눈이야 그렇더라도 제설작업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미국이나 러시아 등 국가들은 제설작업을 쉴새없이 한다고 합니다. 약 3000여대의 제설장비를 보유한 러시아 모스크바의 제설작업은 도로에 쌓인 눈을 밀어내면서 트럭에 곧바로 옮겨 싣는 컨베이어 벨트 차량을 가동해 순식간에 눈을 치워버립니다. 우리나라는 장비가 부족해 군병력이나 공무원 이외에도 눈치우기 알바를 모집해 제설작업을 하는 원시적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눈치우기 알바는 6시간 근무에 5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러시아의 제설작업 장면을 동영상으로 살펴 보세요. 정말 대단합니다.




 * 글이 유익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을 클릭해 추천 한방 주시는 따뜻한 배려와 센스를 부탁드립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오늘 서울에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매서운 추위와 눈이 내리는 계절이면 군대 생활이 생각나곤 합니다. 군인들에게는 가장 힘든 계절이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최전방 비무장지대에서 민정경찰 수색대 군생활을 했던 터라 체감온도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한겨울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특히나 겨울에 무슨 눈이 계속 내리는지.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첫눈 오는 것을 기다리겠지만 군인들에게는 눈 내리는 것은 고통스런 제설작업을 떠올리며 악마의 비듬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강원도 최전방에는 지금도 많은 눈이 내린 곳이 많은가 봅니다. 한 겨울에 위문편지 하나라도 받아보고 싶었던 소박한 소망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난 80년대 중반 당시 저희 부대 군인들은 제대하면 강원도 양구를 향해 오줌도 싸지않겠다는 다짐은 당시 그들이 얼마나 힘겨운 시절을 보냈는지 상징해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까마득한 추억 속의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듯이 도전과 역경을 인내하며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인생의 희로애락과 책임감을 터득한 세월이 아니었나 반추해 봅니다. 어차피 우리나라에 태어난 이상 국방의 의무라는 굴레는 넘어야 한 산이기에 이왕이면 떳떳하고 당당하게 군대를 다녀오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군대가 갖고 있는 일부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래도 군대가 주는 장점 몇가지를 소개합니다.


1. 부모와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어머니 아버지의 품을 떠나 별도의 고립된 공간에서 스스로 자립심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 곳이 군대입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화초처럼 자랐지만 이제는 독립된 주체로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더욱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신병 교육대 시절에 엄청나게 고통스런 훈련을 끝내고 '어버이 은혜'를 부를 때면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났던 때를 생각해보면 부모님과 가족이란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인지 온 몸으로 느겼던 것 같습니다.

2. 팀워크의 조직 경쟁력을 체득한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기적인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잘될 수 있도록 하는 팀워크는 중요합니다. 군대는 팀워크를 통해 만들어지는 조직입니다. 그런 점에서 조직과 팀워크의 중요성을 체득할 수 있는 공간이 군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몰개성화나 획일적 인간을 만드는 것은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사회나 조직을 이루어 모든 생활의 터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팀워크 능력은 무엇보다 필요한 능력입니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조직 경쟁력의 원천인 팀워크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은 군대가 주는 강점 중 하나일 것입니다.


3. 음식이나 반찬 투정을 안하게 된다
군대에 가면 맛이 없어도 그냥 먹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신병 시절에는 그것도 모자라 먹을 것에 대한 욕구가 큰 편입니다. 그래서 휴가나오면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과 반찬이 얼머나 맛있는지 알게 됩니다. 아니 어머니의 밥상이 늘 그리운 시절이 군대있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군대가 가면 반찬 투정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과 반찬에도 투정하던 사람도 군대에 다녀오면 짬밥이 아닌 사제 음식의 고마움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반찬 투정하는 남자를 싫어하지만 군대 다녀온 남자라면 반찬 투정은 거의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군대에도 사제 음식 반입이 많아 여전히 반찬 투정을 못고치는 남자도 일부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4. 몸도 마음도 튼튼한 태권도 유단자가 된다
우리나라 군대는 대부분 태권도를 기본적으로 훈련합니다. 태권도 승단 심사를 하기 때문에 병장 제대할 때까지는 대다수 유단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군대에서 일부 유단자가 아닌 체로 제대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수많은 작업과 훈련으로 다져진 체력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특히나 군데스리가로 통칭되는 군대 축구는 군인들의 체력 강화 필수 코스였을테니까요.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군대를 가면 남자들이 더 남자답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태권도 유단자인 우리나라 남자들이 태권도 폼만 잡아도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체력은 국력입니다. 

5. 여자가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회와 격리되어 있는 남자들만의 공간에서 지내다보니 군대가면 여자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군대에 있다가 휴가나오면 모든 여자가 다 예쁘게 보일 것입니다. 여자 친구가 더 예쁘게 보이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기가 바로 군대있을 때입니다. 가끔은 현재 만나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기 위해 군대에 간다는 남자도 있다고도 하지만 군대가면 다시 그리워질지도 모릅니다. 저는 비무장지대에 근무해서 휴가 이외에는 전혀 실제 여자 구경을 못했던 군대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군인들은 휴가 나올 때면 치마만 둘러도 아줌마도 할머니도 신기한 듯이 놀라던 때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여자가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껴지는 군대인 셈입니다. 그런데 TV 속의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등 걸그룹의 미모를 많이 봐서 눈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도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군대 시절을 보며 더 책임감을 갖고 여자와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의 변화가 있는 시기일 것입니다.

6. 노동과 한달 월급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지난 1980년대 군대에서는 일반 사병의 월급이 보통 1만원 이내였습니다. 지금은 사병 월급도 10만원이 넘는다는 합니다. 사실 한달 동안 땀흘려 일하며 한달 1만원이든, 10만이든 월급의 받는 경우는 군대 시절에 제대로 알게 되는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군대시절 한달 월급이 6~7천원 정도였고 비무장지대 근무라 위험수당이 추가돼 1만원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1만원으로도 한달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덜 쓰고 아껴 쓰면 가능했습니다. 기본적인 식사와 의류는 제공되기 때문에 특별하게 돈을 쓸 일이 없었습니다. 일부 군인의 경우 가족들에게 돈 부쳐달라고 해서 오히려 민폐끼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흥청망청 돈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동과 월급의 소중함을 통해 알뜰한 경제적 관념을 강하게 갖게 되던 군대 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7. 가정을 이룰 기초 생활력을 기를 수 있다
군대에 가면 스스로 관물대 정리를 하고 막사를 청소하는 것부터 배우게 됩니다. 자신의 물건과 주변은 최소한 스스로 잘 정리정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족과 함께 지내던 학창시절에 어머니가 해주었을지라도 군대에서는 누가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옷도 스스로 다리미로 다려서 입기도 합니다. 군화도 스스로 닦아야 합니다. 담요도 털고 빨기도 합니다. 스스로 생활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궁하며 라면도 직접 끓여 먹습니다. 군대에 가면 라면이 더 맛있습니다. 라면 조리법도 얼마나 많은가요. 아무튼 군대에 가면 최소한 스스로 생존할 요리와 청소 등 생활을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8. 자유와 평화가 소중함을 알 수 있다
군대란 개인의 자유가 통제되는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가장 최전선인 전방에서도 비무장지대 안에서 군대 생활을 했습니다. 눈 앞에서 북한 군인들을 매일 봤습니다. 남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상황에서 남과 북의 군인들 모두 자유가 없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휴전 상황의 비무장지대는 준전시상태나 다름없는 곳이었습니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라는 것은 언제라도 전쟁이 재개될 수 있는 곳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가 더욱 필요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군대는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해줍니다. 물론 일부 직업 군인들의 경우 흑백논리와 양분법으로 냉전 이데올로기에 젖어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2년 또는 3년의 군대생활을 통해 자유와 평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군대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악랄가츠님이 쓴 군대이야기란 책입니다. 여자들도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재치있고 재미있고 발랄한 터치로 쓴 이야기인데 요즘 군대는 예전보다 부드러워진 것 같습니다.

9. 책임감과 목표를 갖춘 삶의 주체가 된다
군대를 다녀오면 책임감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군대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이를 반드시 정해진 시간 안에 완수해야 합니다. 목표의식이 없이 살아가던 젊은 시절에 군대는 목표와 책임완수는 몸에 베인 습관으로 만들어 줍니다. 물론 하루동일 삽질해 땅을 파고 다시 묻는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요. 적어도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명확한 목표를 만들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책임있게 일하는 자세는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은 엄마에 보호 속에 살아서 마마보이가 많기도 하지만 군대에 가면 마마보이가 아닌 스스로 해결하는 주체로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일본이나 다른 나라 남자들에 비해 책임감이 강한 것은 이같은 군대가 영향을 준 측면도 클 것입니다.

10. 당당한 남자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솔직히 우리나라 남자로 태어나면 군대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태어나 부모에 의지만 하다가 혼자가 가족과 떨어져 군대 생활한다는 것이 두렵고 힘든 도전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이상 국방의 의무를 마쳐야 합니다. 간혹 군대에 가지않기 위해 탈법과 편법을 저지르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군대를 기피했다가 사회적으로 매장된 연예인도 있고 대통령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국가 고위 장관, 그리고 국회의원들 중에서 군대를 안간 사례도 많은 것이 현실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늘 그들에게 주홍글씨처럼 군대 문제는 따라다니게 됩니다. 군대를 다녀오면 하루를 살더라도 보다 당당하게 떳떳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조국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최소한 나 스스로와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남자의 자신감은 군대가 주는 선물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육군 병장으로 송승헌이 제대했고 오늘 공유가 군대 2년을 마치고 만기 전역했다

최근 가수 김종욱이 당당하게 군대 현역으로 입대하며 '군대가는 날'이란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한류스타 공유(공지철)가 2년의 군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만기 전역했습니. 김태우을 비롯 떳떳하게 정상적인 군생활을 마치고 연예인 활동을 활발히 하는 모습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특히나 수색대에서 복무했던 김태우는 편한 곳 보다는 몸을 사리지않는 모습이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서두에 언급했지만 우리나라는 군방의 의무라는 굴레를 안고 살아가기에 이왕이면 당당하고 떳떳하게 군대를 다녀오면 좋은 이유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군대의 부정적 측면도 많지만 이는 모두가 알고 있기에 언급은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남자로서 태어난 이상 군대를 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비겁하게 편법과 탈법을 저지르며 기피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그런 경우라면 더욱 문제가 큽니다. 진정 바람직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지도층이 먼저 솔선수범하고 모범을 보여할 것입니다. 군대는 특히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필요합니다. 한국 남자들이라면 꼭 거쳐야하는 군대가 더욱 보람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군대를 가야하는 이유를 해봤습니다. 아울러, 남자들만 군대에 가야하는 역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방의 의무에 대한 개선도 논의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욱 추워지고 눈 내리는 겨울에 오늘도 국방의 의무를 다해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 모두 고생이 많습니다.

[참고] 군대 기피 비리 의혹 연예인-국회의원-사회지도층 명단 
* 사진 참조 : 뉴시스

* 이 글에 대해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어 알려드립니다. 이 글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글의 취지는 국방의 의무이기에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이상 군대에 가야하지만 이왕이면 당당하게 군대를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며, 특히 국회의원과 부자를 비롯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을 비판하는 글입니다. 군대는 두번 다시는 가고 싶은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가장 비열하고 부도덕한 인간들은 바로 국방의 의무를 비롯한 자신의 의무나 책임도 다하지않고 소위 어깨에 힘주고 호의호식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에 대한 질타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매서운 겨울 추위 속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에 대해 위로를 보내는 내용입니다. 글의 일부 보다는 전체의 맥락과 속 뜻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였습니다. 9월의 가을비이지만 문득 군대 시절의 첫 눈의 기억이 오버랩되어 지나갔습니다. 여기 내린 비는 다른 곳에서는 눈이 될 수 있습니다.

첫 눈은 어떤 이들에게는 낭만의 상징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다른 이들에게는 고통의 상징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전방에서 군대 생활을 한 남자들에게는 눈은 '악마의 비듬'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하늘에서 쏟아지는 쓰레기 정도로 치부될 만큼 지긋지긋한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1980년대 중후반에 군대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8월에 신병교육대를 마치고 최전방 전초 수색중대 백골소대에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전초 수색중대는 단독 소대 단위로 산 속에서 생활했습니다.

비무장지대 수색 중 지뢰를 밟아 고참 1명이 즉사하고 여러 명이 파편에 부상당한 직후라서 소대 분위기가 살벌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태권도 및 특공무술 훈련을 받았습니다. 말이 훈련이지 대부분 얼차려와 군기잡기였습니다.


강원도 양구의 가을은 빨리 찾아왔습니다. 하루 종일 훈련을 받고 저녁에 계곡 냇가에서 목욕을 하면 온 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어느날, 우연히 이미 제대한 고참이 남겨두고간 군대 일기 '수양록'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막사 뒷편의 후미진 곳에 쭈그리고 앉아 수양록을 열심히 읽어봤습니다. 고참의 군생활을 어떠했는지 살펴보면 미리 저의 군생활을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고참의 수양록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제 눈을 의심하며 다시 읽었습니다.
198*년 9월 **일
첫 눈이 내렸다.
군대에서 첫 눈은 그리 반갑지가 않다. 여기 강원도 양구는 산이 많아서 눈이 많이 온다.
올해 겨울도 아마 눈과의 전쟁을 해야겠다. 올해가 군에서 마지막 겨울이니 조금만 참자.


그렇습니다. 9월에 첫 눈이 내렸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12월도 아닌 9월에 어떻게 눈이 내린단 말인가? 그리고 계속 고참의 수양록을 넘기며 읽어내려갔습니다. 수양록에는 그 후 부터 눈에 대한 기록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눈이 내리는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9월부터 시작한 눈은 그 다음해 3월 4월도 넘기고 있었습니다. 언제 눈이 그칠 것인가. 수양록을 한참 넘기다보니 5월이 됐습니다.
198*년 5월 *일
오늘도 눈이 내렸다.
눈이 지긋지긋하다. 이번이 마지막 눈이면 좋겠다. 더 이상 눈을 보고 싶지 않다. 

사실 당시 수양록을 다 읽는 동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어떻게 9월부터 시작된 눈이 그 다음해 5월까지 내린단 말인가. 그렇다면, 강원도 양구의 겨울은 9월부터 5월까지 무려 9개월이나 계속 되는 셈입니다. 입대하기 이전까지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군대에서 맞이하는 눈은 반가움의 대상이 아니라 고난과 고통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9월에 눈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9월에 눈이 내릴 수는 없겠지' 생각했습니다. 그 해에는 10월에 첫 눈이 내렸습니다. 겨울 내내 눈만 치웠던 것 같습니다. 도로가 눈에 막혀 부식 차량이 들어오지 못해 군장을 메고 가칠봉을 넘어 부식을 추진해와야 하는 날들이 태반이었습니다. 새벽에 기상하면 1개 분대는 어둠과 폭설을 뚫고 군장을 멘 일단의 병사들이 이동했습니다. 그들의 우리들의 생명줄이었습니다.
 
온통 눈으로 덮힌 산악지대 가칠봉을 넘어 반대편에 산 허리에 도달하면 부식 차량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십 킬로미터를 가야 하는 왕복 대장정이었습니다. 허리춤까지 차오른 산악지대 눈길을 군장메고 걷는 일은 거의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때론 낭떠러지 위를 걷다가 미끄러져 아래로 추락하기도 했습니다. 부식 추진조가 동료들의 식량을 군장에 메고 다시 막사에 돌아오면 저녁 늦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강원도 양구의 산악지대에는 눈이 어른 키 만큼 내리기도 했다

그들이 무사히 도착하면 우리 소대원들은 모두 막사 앞으로 나가 무사귀환을 환영하곤 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무사히 도착한 것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어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당시 1980년대 군대에서는 먹는 것 하나가 가장 소중한 시기였습니다. 닭고기 하나를 더 얻기 위해 부식추진조는 다른 부대와 육박전을 감행하기도 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쓴 웃음이 나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는 그 만큼 배가 고팠고 절박하기도 했습니다.

부식 추진 분대가 출발한 다음에 남아있는 전 소대원은 막사에서부터 작전도로의 눈을 치웠습니다. 제설작업은 그야말로 작전이었습니다. 하루종일 눈을 치워도 100미터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눈과의 전쟁으로 지쳐갔습니다. 매일 치워도 막사 앞 100미터를 못치웠습니다. 눈으로 완전 고립된 단독 소대였기에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아무도 찾을 수 없고 폭설로 고립된 산 속의 섬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해 9월말인가 였습니다. 비무장지대를 오가는 전초 수색대 생활도 적응이 되었습니다. 산 속의 적막감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눈 만큼은 결코 반갑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9월 어느날, 누군가 밖에서 소리쳤습니다.
"첫 눈이 내립니다."

우리 소대원들은 막사 밖을 내다보며 원망어린 눈으로 첫 눈을 바라봤습니다. 고참의 수양록은 정확히 맞았습니다. 저는 9월에 첫 눈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눈은 그 해 겨울을 지난 그 다음해 5월까지 내렸습니다. 그 눈의 악몽은 저의 수양록에도 그렇게 기록되었습니다.
198*년 9월 **일
첫 눈이다. 지긋지긋한 악마의 비듬이 다시 시작됐다.
이번 겨울만 잘 버텨보자. 제대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가을을 맞이할 때 강원도 최전방에서는 겨울을 준비해야 합니다.
국군 장병 여러분, 힘내세요. 화이팅.

당시 주요 사진과 일지를 담은 군생활 회상록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