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3.20 리비아 공습 vs 이라크 침공, 카다피 최후일까? 그 교훈은? by 진리 탐구 탐진강 (16)
  2. 2010.05.29 '스파이더맨이 나타났다?' 로프 탄 복면의 정체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13)
  3. 2009.08.23 김대중 노무현 김수환, 민주주의 순교자였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8)
  4. 2009.08.21 김대중 친필일기 전문, 위대한 사랑의 역사였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27)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8년만에 서방세계가 아랍세계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미국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등 5개국 연합군이 리비아 카다피 군사력에 대한 대대적 공습을 실시한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3월 20일 오늘은 2003년 미국이 앞장 선 이라크 침공일과 날짜가 같습니다.

사실 저는 카다피 국가원수가 독재자로 전락해 최후의 결사항전을 선언한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과거 1980년대 초중반 당시,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카다피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참여한 우리나라 노동자가 '한국인'이라는 잡지에 쓴 내용이었지요. 한국인 노동자는 야간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카다피 국가원수가 한 밤 중에 깜짝 방문해 즐겁게 야식을 했던 장면에 감격해 경험담을 썼었지요.

198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은 리비아와 국교 관계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리비아는 북한과 국교 관계를 맺고 정치적으로 유대가 강했던 시절이지요. 그렇지만 카다피는 정치와 경제 분리 원칙을 내세워 한국의 건설회사가 대수로 공사에 참여하게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동아건설이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참여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리비아의 대수로 공사는 향후 세계 10대 불가사의에 오를 만큼의 대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비아 국토는 사하라 사막이 대부분일 정도로 척박합니다. 카다피는 1969년 27세 나이의 대위 시절에 무혈혁명으로 당시 부패한 이드리스 왕정국가를 무너뜨리고 국가원수가 됐습니다. 그 후 사막을 옥토화시켜야 리비아 국민들이 향후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대수로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리비아의 석유자원이 고갈되면 후손들이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해 사막을 농업이 가능한 옥토로 바꾸겠다는 수십년 구상이었지요.

독재 왕정을 무혈쿠데타로 장악한 카다피의 야망과 녹색혁명 대수로 공사

사막의 옥토화는 리비아의 미래였습니다. 그래서 카다피는 국기도 녹색 단색 하나로만 했습니다. 그가 쓴 책 '그린북(Green Book)'은 제3의 사회주의 세상을 꿈꾸는 사상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퍼져나가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전두환 독재국가 시절이라도 카다피의 그린북은 금지 서적이었지요. 젊은 카다피는 중동 이슬람 아랍세계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반미 제국주의를 내세우며 이슬람 아랍세계의 단결을 외치며 외세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지요.

            카다피는 왕정국가를 쿠데타로 장악한 후 사막의 녹색옥토화를 위해 대수로공사를 했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역사의 진리가 있습니다. 카다피는 42년 장기 독재정권의 독재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김제규의 총탄에 쓰러지지 않았다면 카다피와 다를 바 없겠지요. 박정희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유신독재를 비롯해 부마 민주화 항쟁 등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독재자 길로 접어들었지요.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로 포장된 그 이면에는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고문하고 노동자를 억압한 독재자의 마각이 숨어 있지요. 그 후 전두환 군사독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면 카다피 독재자의 모습 뒤에는 박정희 군사독재나 김일정-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 세습 독재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지나갑니다. 독재자들은 처음에는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권력과 탐욕에 빠져 독재자인지 모릅니다. 절대 권력이 부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친미 독재자이듯이 카다피는 반미 독재자일 뿐입니다.

군사 독재자들의 최후와 닮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몰락 교훈

그래서 저는 카다피의 독재자 최후 말로가 안타깝기도 한 것입니다. 적어도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카다피에 대한 모습과 지금의 독재자는 달랐으니까요. 모든 독재자가 결국은 스스로 권력에 탐닉해 몰락해 갑니다. 처음부터 나쁜 리더가 아니었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재자의 길로 접어든 것이겠지요. 특히 군사독재정권은 비극의 역사를 잉태하기 마련입니다. 총칼로 지배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아마조네스 여성 경호원들과 카다피는 독재자의 몰락을 상징한다

군사독재가 아니더라도 경찰독재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이 주권을 갖고 스스로 권력을 선택하는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이 필요한 이유겠지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보면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리비아의 카다피 독재자의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독재자의 향수에 젖어 사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권력의 콩고물을 받았거나 한 줌도 안되는 기득권을 갖고 사는 부류의 인간군상들이 있는 셈이지요. 권력과 재력의 힘으로 서민 국민들을 억압하고 통치하는 나라는 권위주의 국가일 뿐입니다.

리비아 공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서론이 길었습니다. 서양세계는 또 다시 아랍세계에 대한 침략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독재자에게 핍박받고 죽어가는 리비아 국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목적을 설명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리비아 공습의 명분 이면에는 석유자원이 차지하는 비중도 큽니다. 리비아 민주화 운동과 내전 사태로 세계 석유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서양세계는 이라크 침공도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고 크게 작용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리비아 공습은 스스로 지키지 못한 민주주의 교훈

그래서 카다피 국가원수는 연합군의 폭격이 시작된 후 국영 TV를 통해 "리비아의 독립과 단결,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모든 국민이 무기를 들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카다피는 서방세계의 군사행동을 "식민주의 십자군 적"으로 규정하면서 "(서방의) 침략적이고 미친 행동으로 지중해에 있는 각 나라의 이해가 위험에 직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불행히도 지중해 지역의 해상과 영공에서 군인, 일반 시민 가릴 것 없이 실제 위험에 노출돼,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지역이 전쟁터가 되고 있다"고 이슬람 세계의 단결을 내세웠습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 후 친미국가를 세웠지만 국민들은 더욱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카다피의 주장은 중세 시대 십자군 전쟁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 이슬람과 아랍세계가 서양 기독교 국가들의 전쟁 침략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명분이겠지요. 그 와중에 러시아는 외교부 성명을 통해 "리비아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군사행동 결정은 유감"이라고 밝히며 리비아 공습을 반대했습니다. 독일과 아프리카연합도 군사개입 반대입장입니다. 베네수엘라 등 일부 남미국가들도 서양의 리비아 침공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리비아 사태는 이제 친미 국가들과 반미 국가들의 대결 양상입니다.

국제 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습니다. 국가의 이익과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는 것이 국제 외교의 현실입니다. 카다피의 최후가 점차 다가오는 듯 합니다. 카다피가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리비아 국민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는 의문입니다. 서양의 의해 이라크가 독재자 후세인을 몰아내고 친미국가를 세웠지만 이라크 국민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스스로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 채 외세 통치 속에 사는 나라는 결국 국민들만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카다피 최후가 끝은 아닌 셈입니다.

역사가 증명해주듯이 독재자는 결국 몰락한다는 교훈을 낳겠지요. 그렇지만 독재자도 서양의 이익에 따라 지원해주기도 하다가 쓸모없어지면 가차없이 냉정하게 버리는 것이 국제 정치경제 질서입니다. 독재자 카다피의 교훈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입니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 경험을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 조국과 민족이 외세의 입김에 좌지우지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유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세계 정치경제의 흐름에도 끄덕없는 나라를 스스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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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아침에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하고 있는데 창문 밖에 물방울이 맺혔습니다. 그러더니 소나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창문에는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오늘 날씨는 화창하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는데 이상하네" 생각하고 업무에 열중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창문을 '쿵쿵' 누군가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업무에 방해가 될 정도라 창가로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블라인드를 슬쩍 제치고 건물 외부 창밖을 내다봤습니다.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누군가 얼굴에 복면을
 한 채 창밖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도둑이 침투하는 줄 알았습니다. 서로 눈이 마주치는 상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잠시 마음을 진정하고 창밖을 자세히 살펴보니 건물 외벽 유리를 청소하는 분이었습니다. 건물 외벽 유리 청소를 위해 로프 하나에 매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로프 하나에 의지한 고공 스파이더맨쇼, 어찔한 고층빌딩 유리청소


정말 위험천만한 장면이었습니다. 밧줄 하나에 온 몸을 매달고 까마득한 건물 옥상에서 지상까지 유리 청소를 하는 것은 목숨을 건 사투나 다름없었습니다. 고층에서는 창밖을 내다보는 것도 오싹한 기분인데 초고층 건물 높이에서 오직 로프에 몸을 의지하고 유리 청소를 하는 것은 여간 담력이 크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 같았습니다.

그제서야 의문이 풀렸습니다. 창가에 물방울과 빗줄기는 바로 유리 청소에 앞서 옥상에서 건물 외벽으로 물을 뿌렸기 때문입니다. 그 후 고공 청소 전문가들이 옥상에서부터 밧줄을 타고 내려오면서 유리와 외벽 청소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머리에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마치 복면과 같은 마스크를 하고 유리 청소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헬멧을 써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보통 요즘같은 봄철 시기에 고층 건물들은 봄맞이 청소를 한다고 합니다. 지난 3월에는 50층 이상인 무역센터 건물의 외벽 청소하는 장면이 언론에 사진으로 소개된 바도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건물 외벽을 타고 내려오면서 유리 청소를 하는 장면은 여러 명의 스파이더맨이 동시에 건물에 붙어있는 장면을 연상시켰습니다. 

사실 도시 건물들을 깨끗하게 하는 우리 시대의 스파이더맨일지도 모릅니다. 일반 사람들은 고소공포증 때문에 엄두도 낼 수 없는 일기 때문입니다. 고도로 훈련되 로프 타기 전문가만이 가능할 듯 합니다. 군대를 다녀온 분들을 알겠지만 고공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헬기 레펠 훈련의 경우 보통 13미터 높이 정도 됩니다. 그 높이가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위치라고 합니다. 무한도전에서 박명수 등이 등장했던 번지점프 고공현장에서 1박 미션을 수행했던 오마이텐트 현장은 더 높은 곳일 듯 합니다. 
 
깨끗한 창 너머 화창한 세상, 우리 정치도 국민이 평화롭게 했으면...

건물 외벽 청소를 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아찔한 장면입니다. 수십층 이상 고층 빌딩에서 여러 명이 건물 외벽을 타고 내려오며 청소하는 모습은 한편 장관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스파이더맨 부대의 고공쇼와 같은 장관이 연출되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들도 인간이기에 초고층 1백미터 이상 높이에서 내려오는 동안 공포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 목숨을 건 위험한 직업인 셈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오늘도 더 깨끗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서도 고공 청소 전문가들을 비롯한 여러 고위험 직업군들이 고생한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요즘 정치판을 보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황당한 전쟁놀이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국민들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에 살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국민들의 전쟁의 총알받이로 만들겠다는 위험한 생각입니다.

모두가 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층 건물에서 유리 청소를 해준 스파이더맨들 덕분에 보다 깨끗해진 창으로 화창한 하늘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의 더러운 정치인들도 보다 깨끗하게 청소해 보다 평화로운 세상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것은 6월 2일 지방선거 투표에 모두 참여해 상식과 원칙이 통하고 보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인물을 뽑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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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올해 2009년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슬픈 역사의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사 민주주의 역사의 큰 별들이 하늘나라로 떠났기 때문입니다. 큰 별들의 서거와 선종에 비통해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 만큼 그들의 삶이 주는 울림이 컸다는 반증입니다. 그 슬픔과 눈물은 국민들의 상실감을 바로미터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거목이자 큰 별이었습니다. 이들 3인의 서거는 '시대의 어른이 없다'는 상실감과 안타까움으로 국민들의 마음이 심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기고 간 유지와 의미는 그대로 남아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빛과 소금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지난 1987년 6월은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국민들의 열망이 폭발한 해입니다. 당시 저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전두환 군사 독재가 호헌을 통해 장기집권을 획책하던 시기였습니다. 서슬퍼런 군사 통치 시대였지만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전국의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목놓아 '군사독재 타도, 민주주의 쟁취'를 외쳤습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당시 명동성당 모습(좌)과 2008년 서울시청 앞 촛불시위 장면

야만적인 군사 독재 정권의 탄압과 고문 그리고 대학생들의 죽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국민들은 오직 민주주의를 원했습니다. 군사 정권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민주화항쟁에 무력 강경 진압에 나섰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의 무차별 무력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울 도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무장 전경들에 쫒겨 명동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배수의 진을 쳤습니다.

명동성당을 완전 포위한 전경들은 당장 성당에 진입해 무력 진압에 나설 태세였습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은 절대 야만의 군대가 성당에 진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명동성당은 민주주의의 성지였습니다. 독재시절 언론은 정권의 꼭둑각시나 다름없었습니다.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폭도로 매도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이 죽은 시대에 진실을 알리는 노력은 계속 되었습니다. 손으로 직접 쓴 대자보가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과 전실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국민들은 군사정권의 앵무새가 된 방송과 신문을 믿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현장에서 들려주는 진신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명동성당은 끝까지 독재정권의 회유와 협박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의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독재정권의 무자비한 무력 진압이 거세질수록 더욱 항쟁의 기운이 불타올랐습니다. 수십만명이 서울의 종로와 시청 서울역 충무로 등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은 물론 심지어 제주에서도 민주화 항쟁이 매일 계속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행동하는 양심'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지 않았던가. 매일 군사정권의 전경들에 의해 시민들이 쓰러지고 붙잡혀가더라도 또 다른 사람들이 거리로 거리고 나섰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명동성당의 비장함으로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독재정권은 6.29 선언을 통해 항복했습니다. 시민들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민주주의 승리가 아닌 반쪽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기만적인 군사독재의 일당들은 살아남아 권력을 연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명동성당이 민주주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독재정권의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는 김수환 추기경의 담대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탄압받는 국민들에 대한 종교적 신념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명동성당과 김수환 추기경이 없었다면 1987년의 민주화 항생은 꽃을 피우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언제나 고통받는 민주주의 역사 현장과 함께 한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포기하지않고 거리에서 외칠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과 노무현과 같이 실제 행동으로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그냥 방 안에 틀어박혀 마음 속으로만 생각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간절히 소망하고 그 열정을 바쳐 행동하는 양심을 실천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우리 앞에 희망의 햇살을 비추는 것입니다.

현대사의 큰 별 3인, 민주주의 역사와 함께 영원하다

2009년 2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습니다. 민주주의 성지 명동성당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그를 애도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보호자였던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은 슬프면서도 한편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민주주의 성지 순례와 같은 사람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어 지난 5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역주행하는 반민주 시대의 정치적 타살이나 다름없는 일었습니다. 다시 사람사는 세상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일이었습니다. 봉하마을은 민주주의 성지가 되었고 전국에서 자발적인 시민분향소가 만들어져 5백만명 이상의 추모객과 함께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를 생각하며 다짐을 했습니다.

김대중 전 태통령이 지난 8월 18일 서거했습니다. 인동초 김대중의 삶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했습니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정권의 탄압과 박해 그리고 납치 감금 사형에 이르는 고난 속에서도 결코 불의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독재의 회유와 협박에 굴복해 변절한 사람들이 많지만 김대중은 언제나 올바른 한길을 갔습니다. 독재 절대군주에 굴복하지않고 죽음을 선택한 영국의 성인 토머스 모어의 세례명을 갖고 있는 김대중은 어쩌면 성인의 삶과 닮아 있습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김대중의 친필일기는 어쩌면 인생과 역사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일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 역사의 큰 별들이 나란히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큰 별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순교자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국민들은 연이은 황망함에 더 이상 슬퍼할 기운도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3인의 순교자가 남긴 사람 사는 민주주의 세상, 사랑과 평화를 향한 나눔의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큰 별이 된 3인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우리를 지켜주고 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 시대를 연 영웅 3인을 떠나보내는 추모의 눈물은 비통하면서도 한편으론 훈훈하고 경건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따뜻한 사랑과 나눔의 여운이 있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의 소중함이 함께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위대한 지도자의 박애정신과 무한한 존경심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인자한 할아버지와 같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간적인 형님 처럼 친근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든든한 큰 어른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3인의 서거 앞에서 슬픔과 함께 상실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제 그들은 모두 떠났습니다. 이 땅을 사는 인동초와 같은 사람들 만이 남아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하늘나라로 떠나는 순간까지도 남북화해와 평화,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행동하는 양심이고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몫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영결식이 국장으로 거행되고 그는 이승을 떠나지만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인동초가 모진 겨울을 이기고 끝내 꽃을 피우듯이 민주주의 역사도 그렇게 꽃을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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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쓴 친필 일기의 일부가 공개됐습니다. 유족측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식 추모 홈페이지에 일기의 일부를 게재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친필 일기였기에 공개는 바람직한 일입니다. 다만 일부만 공개해 다소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필 일기는 김 전 대통령이 올해 1월 1일부터 입원하기 1달전인 6월 4일까지 쓴 내용 가운데 일부에 불과합니다. 친필 일기는 하루 하루를 짧게 주요 내용이나 생각을 짧게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일부이기는 했지만 공개된 전문을 읽어보니 위대한 지도자의 인생과 사랑 그리고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넘는 이웃과 인류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극진한 아내 사랑에 대한 마음 가득했다

친필 일기의 내용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 이웃사랑의 소중함 등 따뜻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특히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며 극진한 아내 사랑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고난의 길에 있어 평생 동지이자 아내인 이희호 여사에 대한 고마움이 배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인생이란 의미있고 가치있게 사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도 밝혔는데 인상깊은 구절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라고 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 살지만 고인은 고통받고 어려움에 처해있는 이웃을 위해 사는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추구한 '위대한 지도자'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평생 올곧은 민주주의를 위한 '한 길'을 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시대에 정권에 의한 감금, 투옥, 가택연금, 암살 기도 등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헤치고 살아 온 인생을 통한 교훈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일기에서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라며 역사와 국민을 위해 평생 한 길을 걸었던 올곧은 삶을 밝혔습니다.


역사상 독재자는 결국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자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심판을 받는지에 대한 생각도 언급했습니다. 그는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전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독재자들은 스스로 독재를 안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독재자로 전락해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정치인들은 새겨들어야 할 말인 듯 합니다.

김대중은 85세에도 인터넷을 하는 네티즌이었다

고인은 85세의 고령에도 인터넷을 하는 네티즌이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그는 "외신기자 클럽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신문, 방송에서도 잘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크다.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 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며 네티즌들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인터넷 보유국이 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 멀리 혜안을 갖고 미래를 내다 본 결과입니다. 네티즌 글에도 슬퍼하고 국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름답고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이웃 사랑' 위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손자인 종대에게 자신의 일생을 이야기해주면서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로서 손자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물룬 인생에서 이웃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용산참사를 언급하고 추운 계절에 철거로 쫒겨나는 빈민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하기도 했습니다. 설날에는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라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했습니다.

애틋한 노부부의 존경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이희호 여사의 친필 편지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라고 인생과 역사를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인생을 달관한 성인의 격언처럼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이외에도, 용공 및 비자금 허위사실을 유포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에 대해 사실 무근임이 대검에서 밝혀졌기 때문에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란 내용도 있었습니다. 평생 용공 조작을 해온 독재정권과 비슷한 짓이 이루어졌나 봅니다. 고인은 그리고 클린턴 부부와의 인연, 그리고 과거 살인적 폭압적인 독재정권 시절의 수많은 고난과 생사를 오가는 시절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금의 3대 위기 ─ 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를 다짐했지만 그 꿈을 완전히 보지못하고 서거했습니다. 평생동안 올곧게 가져온 민주주의와 중소서민 경제, 그리고 남북평화에 대한 열정을 마지막까지 보여준 셈입니다. 세계인들이 추모하고 애도하는 '위대한 세계적 지도자'의 인간적 모습과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친필일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큽니다. 우리 모두 한번쯤 읽어보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에 대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주의 인권 평화 시대를 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캐리커쳐 (출처 아리툰)


다음은 김 전 대통령의 친필 일기 전문입니다.

2009년 1월 1일
새해를 축하하는 세배객이 많았다. 수백 명. 10시간 동안 세배 받았다. 몹시 피곤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겠다.

2009년 1월 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2009년 1월 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1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1월 14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2009년 1월 15일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

2009년 1월 16일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2009년 1월 17일
그저께 외신기자 클럽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신문, 방송에서도 잘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크다.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 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

2009년 1월 20일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2009년 1월 26일
오늘은 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2009년 2월 4일
비서관회의 주재. 박지원 실장 보고에 의하면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없다고 발표. 너무도 긴 세월동안 '용공'이니 '비자금 은닉'이니 한 것, 이번은 법적 심판 받을 것. 그 의원은 아내가 6조 원을 은행에 가지고 있다고도 발표, 이것도 법의 심판 받을 것.

2009년 2월 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009년 2월 17일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천국영생을 빌었다. 평소 얼굴 모습보다 더 맑은 얼굴 모습이었다.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2009년 2월 20일
방한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출국 중 전용기 안에서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로 1. 클린턴 대통령의 안부 2. 과거 자기 내외와 같이 있을 때의 좋았던 기억 3. 나의 재임시의 외환위기 수습과 북한 방문시 보여준 리더십 4. 다음 왔을 때는 꼭 직접 만나고 싶다 5. 남편 클린턴 대통령도 나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힐러리 여사가 뜻밖에 전화한 것은 나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에 대한 메시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무튼 클린턴 내외분의 배려와 우정에는 감사할 뿐이다.


2009년 3월 10일
미국의 북한 핵문제 특사인 보스워스 씨가 방한했다가 떠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전화를 했다. 개인적 친분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 내가 추진하던 햇볕정책에의 관심의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2009년 3월 18일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신장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 같이 경제형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

1.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 피지배층이었다.

3.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4.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2009년 4월 14일
북한이 예상대로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에 반발해 6자회담 불참, 핵개발 재추진 등 발표. 예상했던 일이다. 6자회담 복구하되 그 사이에 미국과 1 대 1 결판으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않겠는가 싶다.

2009년 4월 18일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인척, 측근들이 줄지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 될 모양. 큰 불행이다.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

2009년 4월 24일
14년 만에 고향 방문. 선산에 가서 배례. 하의대리 덕봉서원 방문. 하의 초등학교 방문, 내가 3년간 배우던 곳이다. 어린이들의 활달하고 기쁨에 찬 태도에 감동했다. 여기저기 도는 동안 부슬비가 와서 매우 걱정했으나 무사히 마쳤다. 하의도민의 환영의 열기가 너무도 대단하였다. 행복한 고향방문이었다.

2009년 4월 27일
투석치료. 4시간 누워 있기가 힘들다. 그러나 치료 덕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 크게 감사. 나는 많은 고생도 했지만 여러 가지 남다른 성공도 했다. 나이도 85세. 이 세상 바랄 것이 무엇 있는가.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 ─ 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 '찬미예수 백세건강'

2009년 5월 1일
이제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자 훈풍의 계절이 왔다.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 졌다. 지금 우리 마당에는 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

2009년 5월 2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 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2009년 5월 18일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내한한 길에 나를 초청하여 만찬을 같이 했다. 언제나 다정한 친구다.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 논의하고 나의 메모를 주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에 보낼 문서도 포함했다. 우리의 대화는 진지하고 유쾌했다.

2009년 5월 20일
걷기가 다시 힘들다. 집안에서조차 휠체어를 탈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좋은 아내가 건강하게 옆에 있다. 나를 도와주는 비서들이 성심성의 애쓰고 있다. 85세의 나이지만 세계가 잊지 않고 초청하고 찾아온다. 감사하고 보람 있는 생애다.

2009년 5월 22일
버마 혁명민주지도자 등 수 명이 내방. 민주화에 대해서, 나는 "버마는 외국의 지지는 충분히 얻고 있으니 이를 활용해서 안에서 국민이 자력으로 쟁취하도록 노력하시오"라고 격려했다.

2009년 5월 23일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2009년 5월 24일
노 대통령 장례식을 정부와 측근들은 국민장을 주장하는데 가족은 가족장을 주장해 결말을 못 보았다. 박지원의원 시켜서 '노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살았고 국민은 그를 사랑해 대통령까지 시켰다. 그러니 국민이 바라는 대로 국민장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는데 측근들이 이 논리로 가족을 설득했다 한다.

2009년 5월 25일
북의 2차 핵실험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아쉽다. 북의 기대와 달리 대북정책 발표를 질질 끌었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 주력하고 이란, 시리아, 러시아, 쿠바까지 관계개선 의사를 표시하면서 북한만 제외시켰다. 이러한 미숙함이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강행하게 한 것 같다.

2009년 5월 29일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2009년 5월 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2009년 6월 2일
71년 국회의원 선거시 박 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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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