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01.08 폭설에 빠진 자동차 구출했지만 누가 배상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47)
  2. 2010.01.06 폭설에 출근 6시간 vs 일본 공항에 대기 5시간, 두 황당 사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87)
  3. 2010.01.05 박대기 기자와 폭설 뉴스 현장 목격 소감 by 진리 탐구 탐진강 (99)
  4. 2009.12.21 1박2일 혹한기 캠프 '예능 아닌 최강 다큐'였다 (강원도 겨울 군대시절 폭설과의 전쟁) by 진리 탐구 탐진강 (84)
  5. 2009.01.25 폭설 피해 온 동생이 병원 응급실에 간 사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3)
  6. 2009.01.25 명절 폭설 길에 아가의 분유 물 찾아 삼만리 by 진리 탐구 탐진강 (26)


폭설에 온 나라가 아직도 꽁꽁 묶인 동토의 거북이 공화국입니다. 정부는 도로의 눈을 다 치웠다고 공언했지만 여전히 상당수 도로는 폭설의 후폭풍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자동차 운전이나 사람들의 보행은 살얼음 위를 위험천만하게 미끄러져가는 심정입니다.

엊그제 자동차 한 대가 도로 평지의 눈구덩이 빠져 헛바퀴만 도는 광경을 발견했습니다. 한 사람이 차 뒤에서 힘껏 밀고 운전자는 그 장소를 빠져 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인과 함께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눈 속에 뒷바퀴가 공회전만 하고 눈 쌓인 도로를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자동차 후미에서 밀어서 안되자 앞에서 밀어보기도 했지만 역시 허사였습니다.

이제 폭설이 내린지 4일이 지났지만 서울 도심의 이면 도로는 곳곳에 지뢰같은 함정들이 남아있는 셈입니다. 저는 지인과 함께 자동차를 구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한 사람은 운전을 하고 나머지 3명이서 자동차 뒤에서 밀었습니다. 그러나 눈구덩이에 빠진 다마스 차량은 헛바퀴만 돌 뿐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세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평지 눈구덩이 도로에 빠진 차량 구출작전에 시민들이 나섰다

점점 팔과 다리가 풀리기 시작하고 지쳐갔습니다. 그러나 잠시 심호흡을 한 뒤 다시 한번 젖먹던 힘을 다해 차량을 밀었습니다. 영차~영~차. 우리는 박자를 맞춰 차를 밀었습니다. 드디어 차량이 조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 차를 밀었습니다.


결국 차량이 눈구덩이를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운전기사와 동료 한분이 우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었지만 다른 사람을 도왔다는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누구라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남의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저도 이미 폭설로 인해 도로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얼마 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로에 쌓인 눈이 그대로 남아있어 차량 한 대가 눈구덩이에 빠져 옴싹달싹 못하고 있다

차량은 그렇게 위기에서 벗어나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제 손에는 흑탕물과 기름때가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어봤지만 말끔하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바지와 구두도 엉망이었습니다. 순간 세탁비라도 받아야 했나 하는 마음이 살짝 스쳐지나갔습니다.

도시 도로의 제설작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폭설은 피할 수 없지만 도로 위의 눈은 왜 여전히 남아 있을까요. 서울시와 정부도 열심히 제설작업을 했지만 굼뜬 것 같습니다. 도로를 말끔하게 치우지 않아 여전히 도로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셈입니다. 그 날은 택시를 타고 시내를 지난 적이 있는데 교통 정체 현상이 심각할 지경이었습니다.


눈구덩이에서 탈출한 운전자가 차를 바라보고 있다. 오른 쪽은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기름 때 장면.

사상 최대의 하루 적설량을 기록한 후 서울과 중부지역은 도시가 너무 오래 마비상태인 것 같습니다. 일부 풀리기는 했지만 출퇴근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고장난 지하철도 발생하고 도로는 빙판이나 폭설 후 눈덩이가 남아 있어 통행이나 보행이 힘들기만 합니다.

그런데 항상 늑장대응이나 뒷북 행정은 시민들에게 책임전가인가 봅니다. 정부 산하 기관 중 하나인 소방방재청이 '내 집이나 건물 앞 눈을 치우지 않으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규정을 만든다'는 발표를 한 것입니다.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 월급 보다 많은 과태료를 물게 한다는 발상은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눈폭탄 맞은 여파가 남아있는데 과태료 폭탄을 던진 셈입니다.

눈 안치우면 과태료 100만원? 국가에도 집단소송 가능한가?

눈치우기 캠페인이나 의식 제고를 해야지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이 과도하고 정작 국가가 해결할 일을 왜 시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느냐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고 합니다. 눈을 치우면 인센티브를 주는 쪽으로 해야지, 안 치우면 과태료 부과 압박은 발생부터 문제라는 것입니다. 정부의 방향이 한참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서울시의 '내 집 앞 눈치우기 조례'에 처벌 규정을 도입하는 문제에 관해 전국 남녀 1천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67.4%가 반대 의견을 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눈이 오면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 외출 중 눈오면 눈치우러 집에 돌아가야 하나?
- 폭설이 계속 내리면 하루종일 눈만 치우고 있어야 하나?
- 눈 치우고 나갔는데 또 눈 내리면 다시 집에 와야 하나?
- 공동 다세대 주택과 공동주택은 연대책임으로 과태료를 나누어 내나?
- 눈 때문에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해도 되나?
- 회사 출근했는데 눈 내리면 돌아와야 하나?
- 맞벌이 부부는 눈내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신의 집 앞 마당의 눈을 치우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눈을 치우는 문제를 국가가 과태료를 물게 하면서 강제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것 같습니다. 누구의 발상인지 어이없고 황당한 탁상행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캠페인이나 의식 전환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차량의 피해는 누가 책임지나요? 국가가 그 피해를 보상해 주나요? 인도 보행 중 넘어져 골절상이나 사상자는 정부가 배상하나요? 이번과 같은 폭설로 인한 도로 마비 등으로 시민들 피해는 정부가 배상해 줄까요? 시민들도 국가에 집단소송하면 배상해 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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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기상 관측 이래 사상 최대의 하루 적설량을 나타낸 서울 및 중부지역의 대폭설은 여러가지 기막힌 사연도 속출했습니다. 엊그제 폭설로 인해 새해 첫 출근하던 직장인들에게는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 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던 셈입니다. 이번 폭설로 인해 황당하고 안타까운 두 가지 사연을 소개합니다.

제가 들었던 가장 황당한 사연은 출근을 무려 6시간에 걸쳐 했던 K씨의 이야기입니다. K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용인의 집을 나섰습니다. 용인에서 직장이 있는 서울로 향하는 통근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갑작스런 폭설이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 늦더라도 출근에는 크게 지장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다른 대중교통 수단에 비해 통근버스는 중간에 정차하지 않고 곧바로 회사로 달리기 때문에 오히려 안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출발 후 몇 분이 지나자 보기좋게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용인에서 서울행 고속도로로 진입해야 하는데 아예 버스가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고속도로를 향해 진입하려는 차들이 몰려 버스가 거의 꼼짝도 못했습니다.

단 2km를 가는데 무려 2시간이 걸렸다

겨우 고속도로에 진입했을 때는 출발한지 이미 2시간이나 지난 상태였습니다. 단 2km를 가는데 2시간이 걸렸던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이없었습니다. 1시간이면 충분히 회사에 도착할 시간이었습니다.

벌써 9시 출근 시간을 넘겼지만 통근버스에 탄 직장인들은 고속도로에 진입한 이상 금방 쌩쌩 달려 회사로 갈 수 있을 것이란 작은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장, 고속도로가 폭설로 인해 통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꼼짝없이 도로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긴급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빨리 고속도로 통제가 풀리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슈퍼맨이 나타나 자신들의 버스를 들어다 회사 앞에 사뿐히 내려놓아 주길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영화에서나 있는 장면일 뿐이었습니다. 할 수없이 통근버스는 국도로 들어가 거북이 걸음이지만 안양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거기도 정체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오줌이 마려운 사람들은 중간에 도로에 내려 급한 일을 봐야 했습니다. 그러다 겨우 안양 근처에 들어섰을 때 이미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이었습니다. 서울까지 버스로 가다가는 퇴근 무렵에나 도착할 것 같았습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이미 출근을 포기했습니다. 다시 수원으로 버스를 돌려 집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6시간 만에 출근하자 동료들 "이제 퇴근하세요"

K는 그래도 출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도중에 내려 가까운 곳의 지하철을 타기로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히 지하철은 평소보다는 조금 느리지만 달려 주었습니다. 생고생 끝에 서울 직장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 시간은 오후1시였습니다. 무려 6시간에 걸쳐 출근을 한 것입니다. 동료들은 K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이제 퇴근하세요. 출근하는데 6시간 걸렸으니 퇴근하려면 지금 출발해야 해요."

             중국 내륙의 후난성 폭설로 인민해방군 장갑차도 동원되는 필사의 작전이 시작됐다 

얼마나 K는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웃지 못할 K의 사연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Y씨의 에피소드입니다. Y는 일본 여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는 분입니다. 연말 연초 장기 휴가를 사용해 모처럼 일본의 처가에 들러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K의 장인 장모는 한국인 사위를 욘사마로 부른답니다. Y로 시작하면 욘사마인 모양입니다.

일본 공항에서만 5시간 대기, 난민 신세였다

그런데 한국의 폭설은 일본 공항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 공항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 공항과 비행기 편이 문제였습니다. Y는 폭설이 내린 4일 항공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정 시간에 비행기가 도착하기 않아 출발이 2시간 연기됐습니다. 곧 비행기가 출발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보였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딸이 있어 더욱 기다림은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결항이면 기다리지는 않을 터인데.

                    자연재해나 폭설은 비행기 항공편의 결항이나 연착과 같은 사례가 많다 

그러나 2시간이 지나도 비행기는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비행기가 일본 공항에 도착해야 출발이 가능한데 한국에서 출발이 늦고 기상 상태로 인해 연착되고 있었습니다. Y 부부는 결국 일본 큐슈 공항에만 꼬박 5시간을 무료하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다 되어 갔습니다. 폭설은 해외 여행객들에게도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준 셈입니다.  

사실 저도 10여년전 홍콩에 출장을 갔다가 태풍이 불어 공항에서만 6시간 이상을 무작정 대기한 적이 있어 그 고통을 이해합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 구석에 기대어 기다리는 심정은 국제 미아 난민이나 노숙자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Y는 그래도 무사히 아내와 어린 딸이 한국에 올 수 있었다며 안도의 한 숨을 쉬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한 K나 Y의 이야기는 이번 폭설로 인한 피해 사례에서 일부분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K와 함께 출근도 못하고 도로에서 5시간 이상을 꼼짝없이 기다리다가 되돌아간 수많은 직장인이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가 결항되어 아예 하루를 포기한 여행객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계약 건이 있는데 폭설로 바이어를 만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번 폭설은 어떤 이에게는 아름다운 싸리눈이었지만 다른 이에게는 악몽과 같은 기억이 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대자연 앞에 나약한 존재에 불과한가를 일깨워준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강추위 한파 동장군이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를 강타할 것입니다. 건강을 잃지 않도록 단단히 방한복을 챙겨입어야 겠습니다. 눈길과 빙판 길에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 걸어야 겠습니다.  모두 건강 조심하세요.

[참고] 러시아의 제설작업은?
우리나라는 작년에는 2센티의 눈에도 서울이 마비되는 아수라장이 벌어졌고, 새해 시작부터 폭설에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자연 현상인 눈이야 그렇더라도 제설작업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미국이나 러시아 등 국가들은 제설작업을 쉴새없이 한다고 합니다. 약 3000여대의 제설장비를 보유한 러시아 모스크바의 제설작업은 도로에 쌓인 눈을 밀어내면서 트럭에 곧바로 옮겨 싣는 컨베이어 벨트 차량을 가동해 순식간에 눈을 치워버립니다. 우리나라는 장비가 부족해 군병력이나 공무원 이외에도 눈치우기 알바를 모집해 제설작업을 하는 원시적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눈치우기 알바는 6시간 근무에 5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러시아의 제설작업 장면을 동영상으로 살펴 보세요. 정말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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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독한 폭설이었습니다. 어제 눈보라 속에 출근을 했습니다. 아침에 우산을 챙겨가지 않았다면 눈보라에 휩싸여 눈사람이 될 뻔 했습니다. 새해 첫 출근에 폭설을 만나 지각한 직장인들이 속출했습니다. 시무식이 연기된 기업도 많다고 합니다.

퇴근 길도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해 일찍 퇴근을 서둘렀습니다. 그러나 빙판길 도로를 피해 지하철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그야말로 지옥철이었습니다. 출퇴근이 교통대란 속 전쟁이었던 하루였습니다. 서울과 인천 경기도 등 중부지역에 1936년 시작된 우리나라 적설량 계측 이래 사상 최고의 하루 적설량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폭설이 낳은 화제, 박대기 기자와 청담동 용자

집에 와서 인터넷을 살펴보니 박대기 기자가 검색어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찾아서 읽어보니 KBS의 2년차 신출내기 박대기 기자가 네티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오전 내내 폭설을 그대로 맞고 뉴스를 진행해 잔잔한 감동을 준 모양입니다. 시간대별로 기다리면서 뉴스를 진행한 것이 인상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TV 화면 아래에 나온 아이디가 waiting@kbs.co.kr이었기에 '대기중(waiting 웨이팅)'이어서 또한 네티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박대기 기자는 폭설이 낳은 스타로 눈사람 기자란 별명도 얻었습니다. 생생한 현장을 전달하려는 기자정신이 나타난 사례가 하겠습니다.




이 날 박대기 기자는 새벽 4시경부터 현장에 나와서 방송 대기했다는데 교통경찰은 출근 길에도 거의 보이지 않은 듯 합니다. 한편 박대기 기자에 이어 '청담동 용자'도 화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용자란 네티즌 용어로 용기있는 자의 의미입니다. 청담동 부근에서 한 젊은이가 스키를 타는 모습의 사진이었습니다. 폭설로 인해 서울 도시 거리에서 스키를 타는 모습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웃음이 절로 나기도 합니다.
(박대기 기자에 대한 시간대별 눈사람 사진과 합성 짤방 사진이 무한 등장해 네티즌에 화제인데 더 보기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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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인 거리에서 직접 본 방송 기자의 뉴스 생방송 현장

사실 저는 지난 연말 서울에 갑작스런 눈이 내렸을 때 박대기 기자 처럼 강추위 속에서 길거리 뉴스 생방송을 하는 어떤 기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당시는 너무 추워서 온 몸을 움추리고 땅바닥만 보고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에 뭔가 사물이 있어 고개를 들어보니 KBS 생방송 뉴스 차량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뉴스 생방송 장비나 방송 카메라와 충돌할 뻔 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살펴보니, 어떤 기자가 마침 길거리 표정을 뉴스로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도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그 기자는 생방송이기 때문에 다소 얇은 외투만 입고 추위에 떨면서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생생한 현장을 전달해야 하는 방송 기자와 카메라맨을 비롯한 제작 현장 사람들이 조금 불쌍해 보였습니다. 또 다른 박대기 기자와 같은 생방송 현장을 목격한 셈이었습니다.



우리가 편하게 TV를 통해 뉴스를 전해듣지만 방송은 실제 현장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생생한 소식을 전해야 하기에 힘든 일이라는 것을 몸소 느꼈습니다. 기자 이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길거리서 만나서 반갑다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김대기 기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방송을 만들기 위해 눈보라치는 계절과 매서운 추위 속에서 시민들을 위해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추위 속에 뉴스 생방송을 진행하는 현장과 폭설로 자동차 운행이 줄어든 도시의 한적한 모습 

강추위 속 방송 카메라 촬영 현장의 투혼 느꼈다

이 뿐 아니었습니다. 며친 전에는, 어떤 건물 앞에서 열심히 방송용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사람들과도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이 날도 무척 추운 날이었습니다. 얼마나 추운지 카메라맨들의 복장이 에스키모 복장을 연상할 정도로 완전 무장했습니다. 우리가 방송이나 영화를 통해 만나는 장면 하나 하나가 그냥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프로 근성을 지닌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미짚 또는 지미집이라고 불리는 촬영장비를 통해 차가운 강추위 속에 촬영을 하고 있는 장면 

역시나 프로의 세계는 뭔가 다른가 봅니다. 무엇을 촬영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폭설과 한파 속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진면목을 새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뉴스 등 한 겨울 카메라 촬영 현장은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됐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그 투혼이 아름답게 여겨졌습니다.  



눈 쌓인 아침을 여는 사람들 vs 눈을 즐기는 사람들

폭설이 내리면 고생하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마다 눈을 치우는 경비 아저씨들이 있습니다. 아파트 주민들도 함께 제설작업을 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같은 폭설에는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물론 단독 주택의 경우 자신의 집 앞에 쌓인 눈을 잘 치우는 사람들도 많기는 합니다. 그리고 거리나 주요 건물 주변에는 쌓인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자주 눈이 띄었습니다.



각종 제설작업 도구를 이용해 폭설을 치우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은 훈훈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들이 있어 우리는 조금이라도 보다 편안하고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눈 내린 거리나 건물 앞을 청소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눈을 즐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길거리에서 눈싸움을 하면서 마치 10대 청소년이나 초등학생 마냥 즐거워하는 젊은이들도 많았습니다. 겨울방학은 맞이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물론 눈으로 뒤덮인 세상이 마냥 좋은 것 같습니다. 눈 내린 풍경은 바라보는 눈(?)에 따라 즐거움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 쓰레기가 되기도 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 속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겨울에도 영하의 날씨를 이기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새벽 시장에 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아침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그들은 열심히 살고 있는 셈입니다. 무엇인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할 때 새벽 시장에 가서 보면 신선한 삶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아침이 밝아오고 사람들은 눈이 쌓이고 다시 얼어붙은 빙판 길로 쏟아져 나와 저 마다의 삶의 현장으로 나설 것입니다. 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 한없이 약한 존재인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니다. 자동차나 비행기를 비롯한 교통수단이나 인간문명의 이기도 결국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인간 세상은 이기심과 탐욕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한편으론 갑작스런 폭설로 출퇴근 교통지옥이 되었지만 새해 벽두부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군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새해 첫 출근부터 힘든 시작이었지만 모두 힘차게 헤쳐나갔으면 합니다. 어쩌면 폭설과 한파가 시련이 될 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러한 역경은 자연이 인간에게 스스로 한번쯤 돌아보고 살라고 준 선물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추가] 박대기 기자의 폭설스타 소감
오늘 박대기 기자가 KBS 라디오 COOL FM '이혁재 조향기의 화려한 인생'에 전화 인터뷰로 소감을 말했습니다. 박대기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한 네티즌이 남긴 사연을 전하며 "추운 곳에서 일하시는 아버지가 떠올라 마음 아팠다고 한 분이 계셨는데, 현장에서 고생하는 선배들이 훨씬 많아 송구스럽다. 나는 그나마 편하게 일한 거고 단지 이름과 이메일 계정 때문에 뜬 것 같다"고 겸손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특히나 솔로인지 확인해달라는 청취자들의 사연에 박기자는 수줍은 말투로 "저는 평생 인기가 없는 사람이라...솔로입니다" 고 대답해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후문인데 이번에 인생에서 제대로 인기를 얻은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번에 KBS 박대기 기자 말고도 MBC 기자도 눈을 털지않고 방송을 했다고 합니다. 대기만성 박대기 기자가 이름 덕을 톡톡히 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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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강원도 인제에서 촬영된 1박2일 혹한기 대비 캠프는 마치 겨울 군대 생활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사실 강원도 최전방에서 군생활을 경험한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겨울철은 눈과의 전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어쩌다 여행 중 만나는 눈보라는 하나의 추억과 낭만일지 몰라도 군생활 중 매일 내리는 눈은 '하늘의 쓰레기'나 '악마의 비듬'에 불과했습니다.

벌써 20여년이 지났지만 1박2일 혹한기 캠프 장소를 보면서 강원도에서의 겨울철 군생활이 잊혀지지가 않았습니다. 강원도 인제와 원통 그리고 양구에 걸친 최전방 지역은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말이 아직도 전해내려오듯이 험난한 산악지형 지역입니다.
 
그래서 1박2일 혹한기 대비 캠프 인제 내린천편은 겨울 병영 캠프를 보는 듯 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 속을 뚫고 내려오는 1박2일 멤버들의 모습이 바로 겨울 군인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던 것입니다. 1박2일이 표방한 리얼 야생 로드 버라이어티라는 모토와 군대의 겨울나기는 다를 바가 없어 보였습니다. 

실제 제가 군대 시절에 겨울에 허리까지 차는 폭설이 내려 작전 도로도 막히고 병영 막사가 고립돼 배낭을 메고 매일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서 산을 넘어 부식(군대 식사 재료)을 추진해야 했던 일도 많았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1박2일 내용부터 먼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박2일 혹한기 캠프는 감동의 리얼 야생 로드 다큐였다

1박2일 멤버들이 보여준 인제 혹한기 캠프는 예능이 아닌 최강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예능으로 시작했지만 갑자기 내린 폭설로 산속에 고립된 야생 탈출기였습니다. 이승기는 극한 상황에서도 '예능이 아니다. 다큐다'라고 말하면서도 '눈내리는 것은 복이다' '눈으로 세트장을 만들었다면 돈이 엄청날 것이다'라며 긍정적으로 대하는 자세로 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폭설은 아무도 예기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멤버들은 배드민턴 게임과 라면 내기 복불복 게임을 마치고 비닐 막사의 야생에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눈으로 변했습니다. 곧이어 폭설로 변했고 제작진은 긴급히 산속에서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자칫하면 산 속에서 완전히 고립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멤버들은 사륜 산악오토바이를 타고 일단 산정상에 도착한 후 반대편으로 걸어서 하산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사륜 산악오토바이는 인제 내린천 ATV팀이 1박2일을 도와준 것이었습니다. 폭설로 자동차 차량은 이동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선발대로 강호동 이승기 MC몽은 산 정상에 도착 후 산 아래 내리막을 걸어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눈 내리는 길, 스노우로드였습니다. 멤버들이 내려오는 도중에 엄청난 눈보라를 만나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 길에서 사투를 벌였습니다.



게다가 눈길이 미끄러워서 멤버들은 계속 넘어지곤 했습니다. 촬영하던 VJ가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히말라야나 북극이 따로 없었습니다. 1박2일 멤버들은 극한 눈보라에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감동을 연출했습니다. 아이리스와 1박2일을 교차편집한 장면을 보니 딱 들어맞았습니다. 2012가 1박2일이란 의미라는 MC몽의 말이 이상해 보이지가 않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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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각본없는 야생 리얼 버라이어티 다큐였습니다. 1시간 30분이 넘는 길을 걷는데 후발대인 이수근 김C 은지원 일행이 폭설이 줄어든 틈을 타 사륜 산악오토바이를 타고 유유히 내려왔습니다. 그 때 해피선데이의 대표 연출자인 이명한PD가 산 아래에서 걸어서 올라와 강호동과 극적인 조우를 했고 함께 감격적인 포옹을 했습니다.

또한, 제작진들도 함께 만났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이산가족 상봉과도 같았습니다.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산 위에서 내려온 VJ가 '넘어지며 구르면서 촬영했다'고 말하자 산 아래에서 올라온 VJ가 고생했다면서 어깨를 두드려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박2일 제작진과 멤버들의 팀워크가 빛난 장면의 연속이었습니다. 이것은 예능이 아닌 최강 다큐였습니다.

폭설로 고립된 군대 막사 10일간 추억, 생존 전쟁이었다

다시 강원도 양구에서의 겨울 군생활 추억담으로 넘아가 봅니다. 지난 1980년대 중반, 군생활 도중 겨울에 폭설로 당시 저희 소대 막사가 고립된 적이 있었습니다. 산 속에서 땅굴탐지 특수 수색대 임무를 맡아 단독 소대 생활을 했던 터라 고립되면 외부와 단절되고 식사도 할 수 없어 '사느냐 죽느냐'의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늘이 뻥 뚫린 듯 폭설은 매일 계속 내렸고 도로는 완전히 허리 높이의 눈으로 뒤덮였습니다. 매일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제설작업을 해도 50미터를 뚫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비상 식량도 바닥나고 결국 저희 소대는 매일 1개 분대씩 돌아가며 산정상을 넘어 반대편 평지까지 걸어서 부식과 식량을 배낭에 메고 돌아오는 작전을 돌입했습니다. 새벽에 출발해도 밤 12시에 도착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막사와 도로의 눈을 치우는 제설작업에 하루 동일 매달렸습니다.


눈이 멈추기만 바랐지만 무심한 하늘은 하루도 쉼없이 눈발을 흩날렸습니다. 군장을 멘 부식추진조는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매서운 눈보라 속에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산악 눈길을 걷는 것 조차 힘들었습니다. 소대원의 식사와 목숨이 걸린 일이라 한 순간도 쉬지않고 걷고 또 걸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립된 생활 기간이 무려 10일이나 됐습니다. 가장 오래 고립된 시기였습니다.
 
그 후로도 폭설도 도로가 막혀 단기간 고립되는 일은 자주 있었습니다. 물론 작전도로가 넓어 겨울 내내 제설작업만 계속 했습니다. 강원도 양구 최전방 가칠봉을 비롯한 산악지대는 9월부터 첫 눈이 내리기 시작해 다음해 5월까지 눈이 내릴 정도였습니다. 정말 눈만 보면 지긋지긋했습니다. 
지금은 지나간 추억으로 남았지만 강원도 산악지대에서 겨울 군생활은 눈이 결코 낭만이 아닌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것은 인식하게 해준 경험이었습니다.
 


이 처럼 1박2일 혹한기 대비 캠프는 바로 강원도 최전상 군인들의 겨울병영생활을 생각나게 해주었습니다. 이번 강원도 인제편은 1박2일의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 정신과 저력을 보여준 감동의 명작이었습니다. 아울러, 오늘도 나라를 지키는 국방의 의무에 겨울 내내 고생할 최전방 국군 장병들에게 따뜻한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젊은 그들이 있어 오늘 밤도 편안히 잠잘 수 있기 때문입니다. 1박2일이 있어 즐겁고 최전선 군인들이 있어 평안한 하루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려 40여년 이상을 강원도 산 속 마을에서 살고있는 강원도 노인 아저씨와 강호동이 눈 속에서 마주치자 두 사람이 잠시 나눈 대화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역경과 도전 속에서도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동안 인생을 달관한 산할아버지의 우문현답이 아닌가 싶습니다.
강호동 : 왜 우리는 험한 날씨를 몰고 다니는 걸까요?
아저씨 : 다 복이예요, 복.

(덧붙여, 1박2일 멤버들이 산에서 미끄러지는 TV장면을 보던 아이들은 저기서 비닐 포대 눈썰매를 타면 재밌겠다고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이미 비닐 눈썰매를 타본 아이들의 경험은 놀이를 생각한 모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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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오늘부터 우리집에는 설 명절을 맞아 차례를 지내기 위해 가족 친지들이 모두 모인다. 남동생 가족도 오늘 오후 눈보라를 헤치고 우리 집에 왔다. 오산에서 일산까지 오는 길이었는데 수원 쪽 길이 통제되어 돌아서 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오산에도 눈이 많이 내려 운전하는데 힘들었던 모양이다.

설날을 앞둔 대가족의 평화로운 모임의 시작
매제 가족들도 그 뒤에 도착했다. 나와 아내는 추가로 몇가지 나물 등을 사러 할인점에 다녀왔다. 아이들도 엄마를 따라 전을 붙이는데 돕고 있었다. 특히나, 큰 딸이 전을 만드는데 열심히 도왔다.

[아이들이 전을 만들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

남자들은 차례상에 올라 갈 밤을 갔다. 남동생이 먼저 칼을 잡고 밤까는 실력을 발휘했다. 나도 합류해 밤을 까고 모양좋게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아이들도 어른들이 까주는 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밤을 까던 남동생이 칼에 의해 손가락을 베다
그러던 중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남동생이 손가락을 감싸면서 "손가락을 베였다"고 아픔을 호소했다. 놀란 여동생이 "칼 조심하라고 조금 전에 말했잖아."하면서 걱정을 한다. 제수씨도 "어떡해"하며 놀란다. 남동생은 밤을 잘먹는 둘째 아들을 위해 밤을 먹기 좋게 잘라주려다 손가락을 베인 것이다.

아내가 소독약과 연고로 우선 응급처치를 했다. 그런데 피가 계속 많이 나온다. 손가락도 하나가 아니라 두개가 베였다. 칼에 상당히 깊숙히 상처를 입은 것이다. 작은 상처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남동생이 "병원에 가서 꿰매야 겠다"고 말한다. 이 정도의 남동생 얘기라면 상처가 상당히 깊은 것이다.

매제가 급히 남동생을 태우고 병원 응급실에 다녀왔다. 명절이라 응급실은 많은 환자들로 붐벼서 몇시간만에 돌아왔다. 손가락은 꿰맸고 파상풍 주사도 4방이나 맞았다고 한다. 그 사이 작은 어머니들도 도착해 있었다. 아내는 칼을 잘 들게 하려고 아침부터 갈아두었다며 미안해 한다.
[남동생이 밤을 까다가 손가락을 베인 문제의 시간]

남동생은 입이 까다로운 아들이 밤을 잘 먹자 아들을 위해 밤을 작게 잘라주다가 손가락을 크게 다친 것이다. 자식 사랑도 좋지만 조금만 조심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면서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제수씨는 손가락 다친 것도 걱정이지만 병원비 8만원이 나왔다는 것에 놀라는 눈치이다.

차례 상을 위해 밤을 까는 것은 대개 남자들 몫이다.(이미 까놓은 밤을 사는 경우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아내를 도와서 밤을 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밤을 깔 때는 칼날을 늘 조심해야 한다. 

[병원 응급실에서 칼에 베인 손가락을 꿰맨 후 사진]

'눈 피해 온 남동생 피 본 날' 밤 까는 방법
칼에 너무 강한 힘을 주지말고 신경을 써서 다루어야 한다. 나는 오랜 경험으로 밤까는 일에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처음 밤을 까거나 익숙치 않은 사람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초보자는 너무 잘 드는 칼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눈 피해 온 남동생이 피 본 날'이라고 아내가 놀린다. 오늘도 지나가면 추억이 될 것이다. 남동생은 손가락 수술로 저녁에 소주 한잔을 못해 아쉬워했다. 병원 응급실에 다녀온 남동생에게는 올해 설날이 지금은 잊고 싶겠지만 나중에 아들에게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준 셈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형의 바람이다.

[참고] 생방송 화제집중에 소개된 밤까는 법에 대해 소개해 본다. (남동생이 걱정돼 찾아본 내용이다.)

[생방송 화제집중에 소개된 밤 까는 법]

겉밤은 딱딱한 밤 꼭지 부분을 먼저 탁탁~ 쳐주고, 돌리고~ 돌리고~ 옆을 까주면 OK!
속밤은 평평한 부분을 먼저 슥슥슥 벗겨주고,
과일 깎듯 돌돌돌~ 돌리면서 까주면 모양도 굿~~~ 속밤 까기 완료!!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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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설 명절인데 눈이 엄청나게 많이 와서 귀성전쟁을 치러야 할 사람들이 걱정스럽다. 설상가상으로 대설 주의보까지 내려 귀성길이 더욱 우려된다. 지금은 우리집에서 직접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귀성 전쟁을 치르지 않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제발 눈이 그만 내리고, 이번 귀성길에는 교통이 원활해졌으면 좋겠다.

문득 2001년 설날에 겪은 폭설로 인해 벌어졌던 '눈물 겨운' 귀성 길이 생각난다. 아빠가 딸 아가의 분유를 먹이기 위해 눈보라 속을 헤매던 이야기다. 당시 둘째 딸이 태어난지 몇개월이 안된 상태였다. 머나먼 남쪽 지역에 있는 고향에서 설 명절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미 출발하기 전날부터 엄청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귀성길은 남동생과 매제의 가족들과 함께 2대의 자동차로 서울까지 함께 이동해야 했다. 비행기는 폭설로 운항이 중단됐고 기차는 완전 매진이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마저 꽁꽁 얼어붙어 있는데 폭설은 계속 내렸다. 자동차 속도가 사람 걷는 속도 보다 느렸다. 아예 자동차가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더 많았다. 몇시간이 지나도 몇 킬로를 나가지 못했다.

어느새 저녁이 왔다. 그런데, 아가에게 분유를 먹여야 하는데 물이 떨어졌다. 아가는 배고프다고 계속 울었다. 자동차는 고속도로에서 전혀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가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매제가 운전하는 자동차에서 나와서 눈보다 속을 걷기로 했다.  1~2킬로만 빨리 걸으면 자동차 보다 먼저 고속도로 휴게소에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분유를 타기 위해서는 '보리차 끊인 물'을 구해오라고 했다. 한참을 걸어서 휴게소에 도착았다. 휴게소는 자동차들로 꽉차 난장판이었다. 휴게소의 가게 마다 들러 보리차 물이 있는지 수소문했다. 그러나 어떤 가게도 보리차가 없었다. 거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아줌마들이 있는 가게에 들어가 "아가에게 분유를 먹여야 하는데 보리차물을 좀 달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보리차는 없다고 했다.(나중에 생각해보니 당시 난장판이 된 휴게소에서 보리차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 한 아줌마가 남자가 물 구하러 다니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보리차를 끓여 줄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보리차가 거의 끟여질 무렵 매제가 운전하는 자동차도 휴게소 부근에 도착했다. 그렇게 딸 아가에게 분유를 먹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밤을 고속도로에서 뜬 눈으로 세웠다. 다음 날, 오전도 고속도로를 벗어나지 못했다. 서울에 도착한 것은 출발한지 무려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지난 오후 2시였다.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이었다. 그래도 늦었지만 오후 3시경 출근했다.

당시 아가였던 둘째 딸은 올해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간다. 아빠가 딸의 분유를 먹이기 위해 눈보라 속에 보리차 물을 찾아 고생했던 그 시절을 둘째 딸은 알기나 할까? 지금은 지나간 추억으로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는 정말 애타는 심정이었다. 이번 설날에는 둘째 딸에게 그 때 '분유 물 찾아 아빠의 삼만리' 이야기를 해주어야 겠다. 그러면 딸은 아빠에게 뭐라고 말할까?
[어제 눈이 내린 놀이터에서 둘째 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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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