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18 20년전 비무장지대 출입증을 찾고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29)
  2. 2009.02.17 군대시절 땅굴발견해 받은 참모총장상을 찾아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317)


얼마 전 남북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이 발생해 몇일간 계속 번졌습니다. 북한측에서 화공작전으로 산불을 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사실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이 일어나면, 맞불을 놔서 꺼지게 하거나 그냥 비가 와서 자연적으로 꺼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이번 산불도 다행히 최근에 비가 와서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는 남한과 북한 사이에 비무장지대라는 특수한 환경이 존재합니다. 제가 군대 시절에 비무장지대에 근무했기 때문에 실제로 남북분단의 현실을 누구보다 피부로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 'JSA(공동경비구역)'은 비무장지대 내에서 남과 북의 병사들이 겪는 에피소드를 다소 과장되게 표현을 했지만 어느정도 상황을 묘사한 측면도 있습니다.

비무장지대는 군인이라도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구역입니다. 특별하게 출입증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이 비무장지대를 출입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정전협정상 군인들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무장출입증도 까다로운 심사절차에 의해 승인된 극히 일부의 특수 군인에게만 발급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비무장지대 출입증이 발급된 사람은 여러가지로 선택되고 검증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군대시절 생각이 나서 지난 20년전 비무장지대 출입증을 찾아봤습니다. 예전 군생활회상록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비무장지대 출입증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시는 민정경찰대, 수색중대, 전초대, 수색정찰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것 같습니다.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 출입증 앞면과 뒷면 모습]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 상용 출입증'이란 명칭과 함께 '이 출입증은 민간행정 및 구제사업 제관서에 소속된 사람의 사용에 한함'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 출입증 소지자는 비무장지대 남경계선의 통과 및 비무장지대 남반부에서의 이용에 대한 완전한 자유가 보장된다. 비무장지대 북쪽 부분을 출입하는데는 유효하지 않다.'고 부연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뒷면에는 영어로 똑같은 내용이 씌여 있었습니다. 이미 20여년이 지난 아주 오래 전 과거이지만 젊은 시절에 목숨을 걸고 비무장지대를 누비던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갔습니다. 


아쉬운 것은 남한의 경우 '군인'이 비무장지대를 출입하기 위해서는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의 집행을 위한 인원으로서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유엔군사령부, 흔히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합니다. 바로 이같은 허가를 받은 군인을 '민정경찰(DMZ Police)'이라고 표현합니다. 북한은 '민경대'라고 합니다.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정전협정에 기인합니다.

지난 1953년 7월 27일, 미국
과 북한, 중국이 정전협정에 서명함으로써 6.25 전쟁이 끝나고 남과 북 사이에는 휴전선인 군사분계선(MDL)이 생겼습니다. 당시 남한은 배제된 상태에서 정전협정문에 서명이 된 것입니다.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으로 2Km, 북으로 2Km 각각 사이의 땅이 바로 비무장지대입니다. 말 그대로 하면 군사적인 무장을 하면 안되는 지역인 셈입니다. 그리고 남북한은 비무장지대가 끝나는 지점에 철책을 만들어 대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전협정에 따르면, ① 어떤 군인이나 민간인도 비무장지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남북 각 지역 사령관의 특정한 허가가 있어야 하며(정전협정 제1조 제8항), ②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의 집행에 관계되는 인원과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를 얻은 인원이 아니면 비무장지대 출입을 허가하지 않는다(정전협정 제1조 제9항). 또한 ③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의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책임진다(정전협정 제10항).

궁금증이 생겨서 북한의 비무장지대 출입증은 어떻게 생겼는지 검색을 해보니 하나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정전협정에 따른 문구는 없고 비무장지대 출입증의 소지자 신분을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소비자는 북한의 민경대 소속 군인일 것입니다. 영화 JSA에서 남북한 병사는 아마도 이러한 신분증을 각각 소지하고 있었을 듯 합니다. 


     [좌측이 북한의 비무장지대 출입증 모습]

우리나라가 남북분단 국가라는 상징적인 장소가 비무장지대라면 비무장지대 출입증은 젊은 군인들이 온몸으로 분단의 현실을 느끼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에는 미확인 지뢰지대들이 도처에 위험이 산재해 있습니다. 항상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선을 넘나드는 곳입니다. 뉴스에서도 여러번 보도된 GP에서 총기사건이 바로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군대 시절에는 어떻게 무시무시한  공포의 비무장지대에서 살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오싹하기만 합니다.

비무장지대 출입증을 살펴보니, 우리나라 민족의 아픔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것 같아 상념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전쟁을 잠시 중단한 개념인 휴전에 의한 정전협정이 아니라 진정으로 남과 북이 전쟁을 종식시키는 종전으로 바꿔 평화협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봤습니다. 언제까지 동족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살아야 하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서로 같은 민족으로서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도 큰 진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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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주말에 큰 아버지 생신이라서 큰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큰 아버님이 앨범 몇개를 준비해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거의 20년간 바쁜 일상을 살다보니 까맣게 그 동안 잊고 지냈던 군대 시절 추억이 담긴 사진들과 소중한 물건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군대와 대학시절을 큰집에서 보냈는데 당시 앨범들을 맡겨두고 잊고 지냈던 것입니다.

청춘의 끓는 피가 용솟음치던 20대 초반, 군대 생활의 모습을 발견하니 파노라마 처럼 옛 기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제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제4땅굴 발견 공로로 받은 육군 참모총장 표창장이었습니다. 참모총장이 별 4개인 대장인 것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군대 제대 후 대학에 복학과 더불어 취직 공부에 매달리고, 사회 생활에 접어들고 결혼하면서 바쁜 일상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군대 시절의 추억은 거의 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군대 생활 중 제4땅굴을 발견했던 기억은 있었으나 참모총장 표창장을 받은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무려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그 당시 상장과 당시 사진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실제 땅굴 탐지 징후를 최초로 발견하고 수색을 비롯해 전과정에 기여한 장병 보다 나중에 슬쩍 숟가락 하나 더 놓은 육본 고위장교들이 주요 훈장들을 받는 것을 보고 실망했었습니다.)

표창장을 살펴보니 거기에 실린 문구가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듯 했습니다.
"위 자는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평소 부여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왔으며 특히 북괴 남침용 땅굴 발견에 기여한 공로가 크므로 이에 표창함"


당시는 북한을 '북괴'라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표현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북괴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우리 시대에는 어린 초등학교 때부터 북한은 북한 괴뢰를 의미하는 북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심지어 바른생활 교과서에는 북한 공산당 사람들을 늑대의 얼굴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지금은 지나가버린 추억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일종의 반공교육을 심하게 세뇌를 당한 셈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귀순해 방송에 나온 얼굴을 보면서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문화적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제4땅굴 내부 수색 중 우리 소대의 군견이 지뢰 폭발로 죽었는데 입구 부근에 충견묘가 세워졌다]

그리고 대학 시절은 전두환 군사 독재에 반대해 들불처럼 일어났던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의 한 가운데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그 후 군대에서는 최전선에서 북한이 남한 침공을 목적으로 뚫은 땅굴을 수색해야 했던 굴절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남과 북은 크게 변한 것이 없습니다.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이 되어 가는데, 왜 우리 민족은 같은 동포들끼리 원수처럼 그토록 싸워야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지금도 휴전선 철책은 남북 분단의 아픔을 안고 냉전 이데올로기의 전운이 감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체감온도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겨울철 최전방에서 고생하시는 군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드립니다.)

지금은 일상 속에서 참모총장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 군대 시절 참모총장상을 받은 것을 발견하니 한편으로 소중한 추억의 편린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구촌 마지막 남은 분단 국가라는 것이 서글퍼집니다.

[참고] 제4땅굴 발견에 대해
제4땅굴은
지난 1989년 8월경 21사단 백두산부대 수색대(전초수색) 지하 청음수색병들이 처음 이상 징후(지하에서 땅굴 파는 소리)를 탐지해 지하 시추공 확인 작업을 몇달간에 걸쳐 지속 실시해 결국 수직으로 지하 땅굴을 관통(1989년 12월 24일 새벽 크리스마스 이브 날)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북한 공격시 실전 모의 훈련과 함께 우리 군에서 반대로 지하 역갱도 공사를 거쳐 북한 땅굴을 최종 발굴한 것은 1990년 3월 3일입니다. 또한 지하 군사분계선까지 땅굴 내부 수색 작업을 거쳐 장악한 후 경비부대를 별도 창설했습니다.(바로 경계지점이 12사단입니다.)

강원도 양구 북동쪽 펀치볼(해안마을) 산악지대에서 위치하고 있으며 땅굴 내부는 너비 2m, 높이 2m, 깊이 지하 145m, 길이 약 2.1km에 달하는 암석층 구조물이며 현재는 안보 관광지로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땅굴 내부는 관광용 모노레일 차량이 운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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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21사단 66연대 전초 수색중대 출신 전우님들이면 댓글에 비밀글로 연락처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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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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